당 건설에 대한 맑스주의와 기회주의 견해: IBRP와의 논쟁

요즘 우리는 "ICC와 같은 조직은 미래의 당 건설을 위한 활동 방법과 전망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IBRP의 테제에 대한 답변"을 심도 있게 다룬 기사 를 실은 바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옮긴이 첨가) "(우리는) 답변을 위해 조직 문제가 불러일으키는 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점에서 고려해 보았다. 1) 미래의 인터내셔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조직 건설과 혁명가들을 다시 조직하려면 어떤 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와 국제 공산주의 좌파의 전통을 포기한 것은 ICC가 아니라 바로 IBRP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IBRP의 재조직화 정책을 지배하는 선거주의는 제4인터내셔널을 설립할 때 트로츠키가 쓴 정책과 비슷하다. 반면 ICC의 전망은 늘 선명성을 가진 재조직화를 위해 싸우고 중도주의와 우유부단함에서 인자들을 구해낼 수 있게 하는 기반 위에서 투쟁했던 이탈리아 분파의 정책이다."

국제 상황에 대한 결의문

ICC(국제 공산주의 흐름) 제17차 대회(2007년 5월)

1.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자본주의가 해체단계에 들어섰다는 사실이다. 1980년대 말 이래 ICC는 이 해체 단계의 원인과 특징을 지적해왔다. 특히 그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로 요약된다.

  a)해체단계는 1차 세계대전(그 당시 혁명가들의 절대다수가 지적한 것처럼)으로 시작된 자본주의 체제의 쇠퇴의 완전한 부분이다. 이러한 면에서 그것은 유례없는 요소들을 가져온 자본주의 쇠퇴의 주요특징을 담고 있다.

  b)그것은 그전 단계의 모든 파국적 특성을 쌓아왔을 뿐 아니라 우리가 발끝까지 썩은 모든 사회적 구조를 볼 수 있는, 쇠퇴의 마지막 단계를 구성하고 있다.

  c)실천적으로 인간 사회의 모든 국면은 제국주의 갈등과 계급투쟁 같이 인류 생존에 결정적인 해체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국제 상황에서의 현재 순간 주요 국면을 검토하는 시작점으로 해체단계를 사용하고자 한다. 그 주요 국면은 자본주의 체제의 경제적 위기, 특히 제국주의 전쟁터에서의 지배계급 내의 갈등, 그리고 마지막으로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라는 사회의 두 주요 계급 사이의 투쟁이다.

크론슈타트가 남긴 역사적 교훈들

최근에 『국제주의』는 <시카고 혁명가 네트워크>(이하 CHIREVNET)에서부터 「1921년 3월 러시아 크론슈타트의 수병들과 노동자들의 혁명적 봉기」라는 팸플릿 하나를 받았다. 우선 우리는 팸플릿 작가의 노고에 사의를 표하는 바이다. 그는 노동자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교훈을 가지고 있는 사건을 검토하고 있다. 그 사건의 교훈이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 혁명가들이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이다. 이 팸플릿은 최근에 영어로 번역된 우리의 책 『네덜란드ㆍ독일 공산주의 좌파』를 인용하고 있다. 이 책은 크론슈타트 봉기 사건에 대한 평가에서 기인하는 혁명운동의 역사에 관한 저작이다. 그러나 CHIREVNET의 팸플릿은 ICC가 볼셰비키가 반란을 진압한 것을 "어쩔 수 없는 비극"으로 여기는 것 아니냐며 비판한다. 이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면 이 팸플릿은 우리의 크론슈타트 사건에 대한 분석을 완전히 잘못 알고 있고, 오해하고 있으며 잘못 표현하고 있다. 수 년 동안, ICC는 지속적으로 날카롭게 크론슈타트 반란에 대한 무력 진압을 "어쩔 수 없는 비극"이라며 잘못된 시각을 방어하는 정치그룹들을 비판해왔다. 그 비판들은 아래 글이나, 『국제평론』 제103호와 제104호에서 두 부분으로 된 연재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1921년 크론슈타트 이해하기

1917년 러시아에서 노동자 계급이 10월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고 난 뒤 4년째,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인 1921년 3월, 볼셰비키 당은 페트로그라드에서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핀란드 만의 작은 섬 코틀린에 주둔하고 있는 발트 함대의 크론슈타트 수비대가 일으킨 폭동을 무력으로 진압했다.

볼셰비키 당은 러시아와 외국 부르주아지의 반혁명 군대에 맞선 몇 년 동안 피로 물든 내전을 치러온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크론슈타트 수비대의 봉기는 새롭고 달랐다. 이는 소비에트 정권의 노동계급 지지자가 내부로부터 일으킨 봉기였다. 그들은 10월 혁명의 전위였고, 이제 여러 가지 참을 수 없는 왜곡과 새로운 권력의 남용을 바로잡으려는 계급의 요구를 들고 나왔다. 

볼셰비키가 이 투쟁을 무력으로 짓누른 것은 그때 이래 줄곧 혁명적인 프로젝트가 지닌 뜻을 이해하는 데서 하나의 기준점을 제공해왔다. 부르주아지가 노동계급에게 맑스와 레닌을 스탈린과 굴락에 연결하는 끊어질 수 없는 고리가 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게 모든 것을 하고 있는 오늘날, 크론슈타트 사건에 대한 이해는 더욱 더 중요하다.

2006년 10월 한국에서의 „혁명적 맑스주의자 국제대회“

 

한국에서의 그 대회는 그 나라의 노동운동사에서 그리고 진정 동아시아 전체에서 그러한 종류로서는 최초의 대회였다. 그러한 대회가 오늘날에 그것도 50여년 전에 개시된 제국주의전쟁의 결과로 여전히 분할된 채 있는 한 나라에서 개최된 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그것은 제 3인터네셔널의 짧은 경험 이래 최초로 동서양 사이의 노동운동의 국제적인 단합의 발전에 대한 전망을 열어준다. 그런데 겸손하게 보자면 그것은 동양의 프롤레타리아계급의 역사적 단계의 상황을 나타낸다.

데카당트자본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속의 악마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짖누른다. 그리고 살아 있는 세대들이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바로 그러한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노심초사하며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내어 자신에게 봉사케하고, 그들에게서 이름과 전투 구호와 의상을 빌린다…“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 1852,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2, 287, 박종철출판사)

 

계급투쟁이 되살아나고 있는 시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부르조아계급이 고의적으로 직접적이고 공공연하게 만들내는 이데올로기의 무게 뿐만 아니라, 자체의 과거 경험에서 오는 전통의 무게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서 이러한 경험들을 소화 흡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종지부를 찍게 결정적인 대결에 요긴한 무기들을 준비할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과거의 경험과 죽은 전통들을 혼동할 위험도 있기에, 살아 남은 것을, 과거 투쟁들에서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전적으로 과거에 속하는 상황적이고 일시적인 그러한 측면들로부터 구별해내는데 실패할 지도 모른다.

전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선언

전쟁위협에 대항하여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 선언

북한의 핵실험에 관한 소식에 이어, 서울과 울산에서 회합을 갖고 있는 우리들, 공산주의 국제주의자들은:

  1. 또 하나의 자본주의국가의 손 안에서의 새로운 핵무기 개발을 비난한다: 핵폭탄은 제국주의자들 간의 전쟁에서 최종적인 무기이다. 그 유일한 기능은 일반 민간인의 특히 노동자계급의 대량학살이다.

  2. 자본주의국가 북한에 의해 자행된 전쟁으로 향한 이러한 새로운 단계를 전적으로 비난한다. 이때 북한은 자신이 노동자계급이나 공산주의와는 전혀 무관함을 그리고 군사적인 야만주의로 향한 쇠퇴한 자본주의의 전반적 경향의 가장 극단적이자 괴기한 판본에 지나지 않음을 (필요하기라도 한 것처럼 ) 다시 한번 보여주었다.

  3. 그들의 적 북한에 대항한 미국과 그 동맹국들의 위선적인 켐페인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그러한 켐페인은, 오늘의 이라크에서와 같이 노동인민이 결국은 그 주요 희생자가 될 선제공격들의 개시 – 그들이 이렇게 할 능력을 갖고 있다면 –를 위한 그들의 이데올로기적인 준비에 불가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민간인을 절멸했을때의 그 미국이 지금까지 전쟁에서 핵무기를 사용한 유일한 세력임을 우리는 잊지 않고 있다.

  4. 중국과 같은 다른 제국주의 갱스터들의 비호 아래 출현할 수 밖에 없는 소위 „평화발의 peace initiative“들을 가차없이 비난한다. 이것들은 이 지역에서의 평화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자본주의적 이해관계의 옹호에 관심을 가질 것이다. 노동자들은 어느 자본주의 국가의 어떤 „평화적인 의도들“도 믿을 수 없다.

  5. 국가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옹호라는 미명아래 남한 부르조아계급이, 국제주의적 원칙을 방어하는 노동계급에 또는 그 활동가들에 대항하여 억압적 조치들을 취하려는 모든 시도들 가차없이 비난한다.

  6. 발생하게 될 군사행동으로 인해 제일 먼저 고통당할, 남북한의, 중국의, 일본의 그리고 러시아의 노동자들과의 우리의 전적인 연대를 선언한다.

  7. 자본주의 아래의 인류를 엄습하는 야만주의의의, 제국주의 전쟁의, 그리고 핵파괴의 위협을 영원히 종결할 수 있는 것은 오직노동자들의 전세계적인 투쟁임을 선언한다.

 

노동자들에게 있어 수호해야할 국가는 없다!

전 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

좌파공산주의와 맑스주의의 연속성

프롤레타리아 트리뷴(러시아)에 실린 글

1. 1920년대 중반 국제적 혁명물결이 패배한 이래, 사회주의, 공산주의 및 맑스주의라는 용어보다 더 왜곡되고 남용된 예도 없을 것이다. 이전의 동구권의 스탈린주의적 체제들 또는 현재의 중국, 쿠바 및 북한과 같은 나라들이 공산주의나 맑스주의의 표현들이라는 생각은, 극우에서 극좌에 이르는 지배계급의 모든 정파들에 의해 영구적으로 보존된, 20세기의 진정 가장 크다란 허위이다. 1935년에서 45년까지의 제국주의 세계대전동안, "반파시즘" 및 "민주주의의 수호"와 함께 "사회주의조국의 수호"라는 신화가 인류역사상 가장 크다란 살육을 위해 노동자들을 동원하는데 러시아 안팎에서 이용되었다.

제국주의 전쟁에 대항하여 ! 평화주의 환상들에 대항하여!

다시 한번 더 중동이 공포에 빠져 있다. 1991년의 그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조지 W. 부시는 우리에게 깨끗한 전쟁을 약속하고 있다. 우리는 그러한 약속이 얼마나 위선적이고 냉소적인가를 알고 있다. 다시 한번 더 폭탄세례가 이라크를 엄습하고 있다. 한편에서 '문명화된' 세력들이 이미 굶주릴 대로 굶주린 한 나라의 국민들에게 죽음과 비참함을 부과하고 있을 때, 세계의 나머지 나라들에서는 이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이에 대한 어떤 진정한 대항도 혼란시키고 파괴하기 위해서 거짓말들이 쇄도하고 있다.

제국주의 전쟁의 유일한 해답 : 국제적인 계급투쟁!

아프가니스탄전쟁

민간인 6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지난 9월 11일의 끔찍한 전쟁범죄에 대해 새로운 그리고 마찬가지로 끔찍한 전쟁범죄들이 미국과 그 '연합국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다.

황폐화된 아프가니스탄에 최초의 공격이 개시되기 이전 이미 수 만 명의 아프간 난민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인한 죽음에 선고되어 있었다. 군사적인 공격이 시작된 현재, 그 사망자 목록은 극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폭탄과 미사일은 굶주린 사람들에 대한 식량공급을 방해할 뿐이며, 이 점에 있어서 미국이 비행기로 투하하는 극소량의 식량 공급이라는 선전용 곡예로는 아무 것도 변화될 수 없다. 우리는 '정확한 공습'에 관한 소문의 모든 진상을 이미 1991년 이라크전과 1999년 사라예보전의 예에서 들어왔다. 이 두 나라의 주민들은 아직도 그러한 '인도주의적인' 폭탄세례의 비참한 결과와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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