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건설에 대한 맑스주의와 기회주의 견해: IBRP와의 논쟁

토론방법의 문제

요즘 우리는 "ICC와 같은 조직은 미래의 당 건설을 위한 활동 방법과 전망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IBRP의 테제에 대한 답변"을 심도 있게 다룬 기사[1]를 실은 바 있다. (이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옮긴이 첨가) "(우리는) 답변을 위해 조직 문제가 불러일으키는 점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점에서 고려해 보았다. 1) 미래의 인터내셔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조직 건설과 혁명가들을 다시 조직하려면 어떤 정책을 추구해야 할 것인가. 두 가지 점에서 우리는 이탈리아와 국제 공산주의 좌파의 전통을 포기한 것은 ICC가 아니라 바로 IBRP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사실상 IBRP의 재조직화 정책을 지배하는 선거주의는 제4인터내셔널을 설립할 때 트로츠키가 쓴 정책과 비슷하다. 반면 ICC의 전망은 늘 선명성을 가진 재조직화를 위해 싸우고 중도주의와 우유부단함에서 인자들을 구해낼 수 있게 하는 기반 위에서 투쟁했던 이탈리아 분파의 정책이다."

7쪽짜리 기사의 끝에 나오는 이러한 결과들은 비합리적이고 심리적 결실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활동방식을 방어하고 우리와 같이 계급 노선의 편에 서있는 정치그룹을 단호하지만 동지적으로 비판하려는 시도의 표현이다. IBRP를 비판하는데서, 우리의 출발점은 늘 IBRP의 텍스트 그 자체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의 텍스트를 우리의 기사에 다시 옮기는 노력을 기울였으며, 우리의 주장은 공산주의 좌파의 공통의 전통과 대조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는 혁명적 전위를 만드는 어려운 작업에서 이러저러한 가설들의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답변에서 IBRP를 이루고 있는 두 정치그룹 가운데 하나인 <공산주의투사>(이하 BC)는 많은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기사[2]를 출판했다. 사실 그 기사는 ICC에 대한 답변이긴 하지만 ICC라는 명의는 그저 꼭 필요할 때에만 언급되었다. 기사는 전체적으로는 피상적이고 우리의 견해를 전혀 따오지도 않았다. 그 대신에 BC는 완전히 그것들의 몇몇 개념을 명백히 혼동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기사를 끼워 맞췄다. (우리는 그게 그들이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또한 공개적으로 그 쟁점의 문제들을 제기하기 보다는 어떤 효과를 내려고 의도적인 헛소리로 기사에 대한 공감을 끌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기사에서 BC는 유일하게 가능한 방식, 즉 우리의 답변하고 있는 역사에 기초한 방식으로 접근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그들은 오히려 즉흥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우며 사실상 결론이 없는 답변만을 하고 있다. 우리 기사가 "불쾌"하다, 그것이 IBRP에 대한 "공격과 중상모략"을 포함하고 있다는 식의 관점은 이러한 태도[3]에 동조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 예전에 IBRP의 기회주의에 대한 우리의 비판이 올바름을 확신시켜준다. 역사적으로 기회주의는 정치에 대한 직시를 하는 것이 기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므로 그것을 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는 독자들이 BC의 이러한 태도가 어느 정도 거짓인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의 예전 기사들을 언급하는 것 이상을 할 수 없다. 사실상 배신[4]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이 기사나 앞으로 나올 기사에 나타난 BC의 왜곡을 따르고 싶지는 않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익하고 끝없는 논쟁에 발목 잡히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와 함께 우리는 혁명가 조직을 건설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관점을 더욱 가다듬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특히 다음의 다음 두 지점을 충분히 고려하도록 하겠다.

a) BC의 기사에 나타난 논점에 대한 답변.

b) 우리를 관념론이라고 보는 IBRP의 비판에 대한 답변. 우리를 관념론이라고 보는 것은 IBRP의 변명이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당 건설에 참여하는 데 상응하는 힘을 기를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더 당 건설에 대하여

BC 기사의 두 번째 부분은 국제당을 건설하는 문제에서 우리의 활동방식과 반대되는 그들의 기회주의적 정책을 옹호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앞서 살펴보았던 근본적인 요소들을 떠올려 보도록 하자. 이것은 국제조직의 국내 지부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IBRP의 비판이다.

우리는 다른 대회 결의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원칙적으로 하나의 이미 존재하는 조직 복제물로서 일국 조직들을 만든다는 생각에 반대한다. 이는 심지어 우리 조직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프롤레타리아트 국제당의 일국 조직은 매우 인위적인 방식으로 일국 내에서 다른 곳에서, 더군다나 그 나라 자체의 진정한 정치와 사회의 투쟁 바깥에서 편집된 출판물들을 번역하는 중앙조직을 만듦으로서 건설되어서는 안 된다.(강조는 우리)[5]

이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국제적인 재조직화를 위한 우리의 전략은 물론 그것을 ‘다른 곳에서 편집된 출판물을 번역하는 중앙조직을 만듦'으로 희화화된다. 독자들에게 자동으로 ICC전략에 대한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이다. ...... IBRP에게, 만약 새로운 그룹의 동지들이 나타난다면, 보기를 들어 캐나다에서, 그들이 국제주의자의 태도로 견인되고 있다면, 이 그룹은 비판적이고 동지적인 투고들, 심지어는 반박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그룹은 그들의 나라의 정치 맥락에서 성장하고 발전해야만 한다. 즉 ‘그 나라 자체의 진정한 정치와 사회의 투쟁' 내부에서 말이다. 이것은 IBRP에게는 주어진 나라의 현재 및 지역의 상황이 노동자 운동의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국제적ㆍ역사적 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뜻한다. 반면, 국제적인 수준에서 조직 건설 전략은 무엇인가? 어떤 새로운 나라에 떠오르는 투사들이 한명이 있든 백 명이 있든 간에, "그 나라 자체의 진정한 정치와 사회 투쟁"을 통해서, 그러나 이 새로운 투사들을 즉각 조직의 국제 활동으로 통합하기 위해서, 우리의 전략은 지역적으로 이 동지들이 사는 나라에서 중앙집중화된 개입의 한 측면을 발전시키는 그룹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심지어 우리의 자원이 작다고 할지라도, 우리 조직이 새로운 그룹의 동지들의 책임 하에서 지역 출판물을 즉각 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유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이 한편으로 우리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에 있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직접적으로 혁명가 조직의 건설을 진행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가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인위적인가? 어떤 점에서 ‘하나의 이미 존재하는 조직의 복제품'이라고 이야기하는가? 이것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정말로 놀라운 것은 BC가 그들이 우리 주장의 논리에 최소한의 반대 주장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록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 사실상 이것이 그들의 견해이다.

조직을 더 힘 있고 대표적인 여러 나라로 ‘넓힐'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혁명 정치는 진지한 것이기 때문이다. 너는 한 나라에 있는 몇몇 동지들의 한 분파가 모체 조직보다도 구체적으로 실제 조직의 요소가 될 것이라는 점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왜 못하는가? 우리는 그 이유를 알고 싶다.]

우리는 용기를 갖고 정말로 전국적 수준에서 기능을 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전국적 수준으로 하나의 ‘캠페인'을 공동으로 하는 것이 늘 완벽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수적으로 별로 없다'는 주어진 조직적 조건에서, 출판물의 배포는 투사들의 가망성에서 가장 작은 변화를 반영한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구체적인 조직의 보기를 제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것이 그 문제의 진실이다! BC는 국제 조직의 구성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한다. 그저 일국 수준에서 그 자신의 조직을 통제할 수조차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BC가 그렇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ICC의 존재는 명확하게 이러한 식의 주장이 거짓말임을 보여준다. BC는 일국 수준에서 출판물 배포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보기를 들어, ICC의 영어와 스페인어 출판물(특히 <국제평론>)이 전 세계 약 20개 나라에서 배포되고 있다는 것은 계산에 넣지도 않는다. BC는 또한 필요할 때, 우리 조직이 같은 리플릿을 즉시, 동시에 회원이 존재하는 모든 나라와 또한 다른 나라들에서 배포할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전에도 필요할 때마다 이를 증명해 왔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 게다가 BC는 자신의 눈앞의 사실도 눈여겨보지 않는다. 만약 그들이 자신의 눈을 뜨고 있으려고 노력만 한다면 ICC는 진정으로 단일한 국제조직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이 나라, 저 나라에 있는 지부들의 규모에는 상관없이 말이다.

이 모든 것은 "우리는 용기를 가지고 진정으로 기능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BC의 주장이 과학적 기초라기보다는 오히려 단지 오늘날 국제조직을 건설할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는 인상을 받게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더 많은 것들이 있다. BC의 기사에서 혁명조직이 왜 일국에서만 건설되어야 하는가에 관한 다른 불순한 생각이 나타난다.

더욱이 한 나라에 낙하한 작은 분파 한 개로는 그 나라의 정치권 안에 그 자신을 이식할 가능성이 없다. 그 나라의 정치권 그 자체에서 나타난 조직은 비록 작지만 혁명적 입장에 순응하지만 말이다. ...... 정치의 정체성만으로는 혁명가 조직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러한 척 하는 사람은 조직에 대해서 분별력이 없거나 너무 조직 경험이 부족해서 그 주제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 만약 동지가 계급 안에 뿌리 내리고자 하는 근본적인 활동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심지어 오늘날 그러한 활동들이 불행하게도 제한되어 있다고 할지라도 동지는 이러한 임무를 할 만한 자격이 없는 것이다.[6]

이 문단이 지닌 뜻은 솔직히 걱정스럽다. BC의 설명은 "그 나라의 정치권 그 자체에서(즉 지역에서) 나타난, 혁명적 입장에 순응한" 그룹을 만드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초기에 그러한 조직이 얼마나 혼란스러울 것인지 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같은 지역에서 "한 나라에 낙하한 작은 분파 하나"보다는 말이다. 그러나 한 조직의 실제 계급 내에서의 "뿌리"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얼마나 일시적으로 인기 있을 것인가에 달려 있지 않다. 그것은 모든 것을 당면한 인기로 파악하는 것이자 기회주의의 접근법이다. 실제로 뿌리를 내리는 것은 역사적 수준에서 판단해야 한다. (그것은 계급의 과거 경험과 앞으로의 변화와 관련되어 있다) "뿌리를 내리는 것"의 주요 척도는 강령과 분석 수준의 명확함이며, 이는 다음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다.

  • 어떠한 혼란이 노동자들에게 있던지 진정한 공헌을 하는 것
  • 미래에 대비하여 튼튼하게 건설하는 것

이것은 레닌과 멘셰비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의 핵심 지점이었다. 멘셰비키는 당의 문호를 잡다한 머뭇거리는 분자들에게 개방하여 커다란 영향력을 얻고 싶어 했다. 그것은 또한 이탈리아 좌파와 코민테른 다수파 사이에 벌어진 공산당 당헌에 관한 논쟁의 핵심지점이기도 하다.(엄격한 조직인가 아니면 느슨한 조직인가가 코민테른이 가능한 빠르게 노동대중 내에서 "뿌리"를 내리기를 바란 이래로 이 논쟁의 핵심지점이었다.) 이탈리아 좌파는 1930년대 트로츠키주의자들에 반대하여 같은 입장을 주장했다. 혁명가 조직은 결코 자신의 원칙을 청산하고 적당히 처리하여 "뿌리"를 내려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IBRP가 오늘날 망각한 이탈리아 좌파의 투쟁의 위대한 교훈이다. 마치 PCInt가 1945년에 원칙을 잊어버렸던 것처럼 말이다.

BC 주장의 모순은 우리가 앞선 기사에서 제기했던 질문들에 그 그룹이 답변을 거부한 사실의 귀결지점이다. 우리의 질문은 다음과 같다.

a) BC는 노동자 운동이 한층 공들여 만들어낸 조직 문제에 대한 입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왜인가?

b) 그렇지 않다면 레닌과 빌랑의 시대와 관련하여 역사의 시기가 바뀌었으며 따라서 다른 형태의 조직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왜인가?

우리는 아직도 답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를 관념론으로 보는 것에 대하여

BC가 우리를 관념론자라고 비판하고 관념론의 시각을 반영하여 지금 상황을 분석한다고 비난하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요사이 나폴리에서 BC가 연 대중 집회에서 그들은 우리를 관념론이라고 ‘상상'했다. 이에 대해 우리는 BC에 답변을 요청했다. BC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ICC를 관념론이라고 규정하는 데에는 세 가지 점이 있다.

첫째로 데카당스 개념이다. 이것은 우리도 쓰고 있는 개념이다. 그러나 사회학 요소에만 기초하여 데카당스의 경제 개념은 설명할 수 없다. 문제는 데카당스가 이윤율 저하 경향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본주의가 데카당스를 겪고 있다고 말했지만 위기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주기적인 위기는 늘 있었다) 아주 심각한 위기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ICC가 관념주의자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데카당스 개념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제국주의에 대한 분석 때문이다. 소련이 있었을 때, 우리는 제국주의를 두 가지 면으로 보는 것에 익숙했다. 하나는 소련이고 다른 하나는 미국이었다. 제국주의 양국 중 하나가 몰락하면서 나머지 다른 쪽이 군사적, 경제적 지위, 기타 등등에서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상환 내에서 유럽에서는 제국주의적 재편의 시도가 있다. ICC는 단지 혼란에 대해서 말하면서 어떻게 이러한 새로운 국면을 설명할 수 있는가? ICC는 제국주의 무대를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의도와 혼돈을 혼동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의식의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 그리고 그것은 가장 중요하다. 우리는 몇 가지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들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노동계급이 제3차 세계대전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BC가 우리를 관념론이라고 비판해서 우리 조직이 사실의 문제들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공상으로 빠지고 있으며 사실상 관념론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난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오히려 앞으로 논증하려고 하는 바에서처럼, BC의 그 부분에 대한 이러한 비판이 우리의 정치 분석에 대한 게으르고 부정확한 이해에서 만들어졌다고 본다. 그들 자신을 우리 조직가 구분하려는 통제할 수 없는 욕망만이 그러한 몰이해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설령 우리가 명확히 그러한 넓은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룰 수 없다고 하더라도 몇몇 분자들에게 다음과 답변하고자 한다.

자본주의의 데카당스 : ICC의 분석이 BC의 분석과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데카당스의 경제적 개념을" "사회학적 개념에만 기초하여"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은 완전히 거짓이다. BC의 동지들은 그들의 이론적 틀이 이윤율 저하 경향에 기초하고 있는데 반하여, ICC는 여분의 자본주의적 시장의 포화상태에 관한 룩셈부르크의 후기의 이론적 발전[7]을 인용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로자 룩셈부르크의 이론은 그럼에도 변덕스러운 이윤율 저하 경향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론적 틀 또한 경제학적 기초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 기초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쨌든, 두 가지 다른 경제학적 설명에 덧붙여서, 기본적인 관점은 두 개의 분석 모두 같은 상황, 즉 자본주의의 데카당스를 설명하려는 시도이며, 우리는 그것에 대해 완전히 동의한다. 그렇다면 어디에 관념론이 있는가?

제국주의와 혼돈 : 만약 ICC가 진실로 BC가 서술하는 입장을 방어한다면, 그것은 그다지 설득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혼돈의 문제는 그 자체의 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1989년 두 제국주의 블록의 붕괴와 그들이 각각 통제하고 있는 나라들에 가했던 규율이 약화된 결과였다. 냉전 시기에 제국주의 블록 내에서의 규율은 전반적으로 세계대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특수한 "평화조약"을 개별 블록 내부와 국제무대 내에서 보증해주었다. "ICC는 제국주의 무대 지배하고 있는 명백한 의도와 혼돈을 혼동하고 있다?" 전혀!!! 강대국뿐만 아니라 좀 더 약한 나라들의 세계 제국주의 무대를 지배하려는 명백한 의도에서 출발하여, ICC는 현상황에서 점차 확산되는 경향과 다각도의 갈등을 본다. 각국은 나머지 모든 나라들과 갈등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 안에서는 더 이상, 적어도 현재에는, 개별 국가의 제국주의 야망을 결집하고 특정한 방향으로 향하게 만들 새로운 제국주의 블록은 없다. 솔직히, 우리는 단기간에 그 대형의 미래를 예상하는 게 어렵다.[8]

전술한 규율이 약화되는 이 새로운 상황에서 개별 국가들은 점차 다른 나라들과 갈등에 빠져드는 제국주의적 모험을 시작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혼돈이 발생하는 것이다. 혼돈은 즉 과거의 통제와 규율이 없고 그 기본적인 역동성이 매우 명확해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이 정말로 그렇게 멍청한가? 아니면 관념론인가?

마지막으로 노동계급이 전쟁을 막는다는 것에 대하여 : 우리가 계급투쟁의 역사적 부활이 부르주아지가 자본주의의 위기, 즉 세계대전을 낳는 것을 막았다고 할 때, 우리는 확실히 노동계급이 전쟁의 위험을 인식하고 있고 그렇게 의식적으로 반대했다는 것이 아니라고 되풀이하여 이야기한다. 만약 그렇다고 이야기한다면 우리는 확실히 혁명직전 시기에 있을 것이다. 증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것은 투쟁의 부활이 194~50년대보다 계급을 더 민감하고 덜 순응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부르주아지가 완전히 프롤레타리아트의 통제와 지지에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은 부르주아지에게 골칫거리를 낳고 그들이 제국주의적 갈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막지 못한다.

사실상, 현 시기, 비록 계급의 전투성과 의식성이 낮은 수준에 있을지라도, 부르주아지는 전쟁이데올로기-민족, 반파시즘, 반제국주의 등 어느 것이든지 간에-하에 선진국 노동자들을 동원할 능력이 없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 노동자들이 전투적이지 않은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이를 위해서는 몇몇 부르주아적 이상에 자신의 목숨을 무릅쓸 준비가 된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IBRP가 현재 매우 현명한 척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과거에도 지금(!)에도 국제 정세를 분석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기를 들어, 동구권이 무너질 때, BC는 처음에 명확한 생각을 가지지 못했다. 그리고 "붕괴"를 고르바초프가 제국주의 블록들 사이에서 카드를 되 섞고 미 제국주의에 맞서서 점수를 올리기 위하여 추진한 과정 탓으로 돌렸다.

폭발하고 있거나 이미 폭발해 버린 것은 얄타협약이다. 카드는 위기에 상황에서 다시 섞이고 있다. 비록 위기가 루블화 지대를 극적으로 파괴하고 있지만, 확실히 위기는 달러지대로 주저하지 않고 이식되어오고 있다.......고르바초프는 유럽과의 테이블에서 그리고 다른 초강대국과의 협상에서 유능하게 활약하고 있다. 동유럽과 서유럽의 친선관계를 향한 진전들은 미국의 조용함에 기인한 현상이 아니다. 그리고 고르바초프도 그것을 알고 있다.(「제국주의 블록들 사이의 카드가 뒤섞이다 : 현존 사회주의 붕괴의 환상」, BC 12호 1989년 12월)[9]

동시에 그들은 동유럽 국가들에 한 모금의 산소를 줄 수도 있는 새로운 시장이 열리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본주의 주변부, 보기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시장의 붕괴가 자본의 지불 불능 문제를 만들어냈다? 동유럽에서 열린 새로운 기회들은 투자 욕구를 위한 안전밸브를 나타낸다? 만약 이러한 동유럽과 서유럽의 협력이라는 커다란 진전이 구체화된다면, 그것은 국제자본을 위한 한 모금의 산소로 작용할 것이다."(「서구 부르주아지가 동구권의 개방에 박수치다」, BC, 1989년 10월)[10] 1990년 초에 루마니아 부르주아지는 인민의 민주주의-부르주아 독재의 최악의 형태이다-에 대한 욕구를 자극하는 믿을 수 없는 드라마를 보여주며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BC는 "사회혁명으로 발전할 수 있는 모든 객관적 조건과 거의 모든 주관적 조건이 있지만 진정한 계급의 힘이 부재한 나라는 부르주아적 생산관계의 유지를 의미하는 그 힘들을 위해 자유로운 영역을 남겨둔다"고 루마니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BC, 제1호, 1990년 1월)

마지막으로, 우리는 콜롬비아의 동조자들의 기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그런데 BC는 그 기사를 그 첫 번째 페이지에서 그 기사를 한 줄의 언급이나 비평 없이 실었다. 그 기사는 콜롬비아를 거의 봉기 상태에 있다는 식으로 설명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콜롬비아의 사회운동은 ...... 특이한 급진성과 폭넓은 경험을 얻게 되었다. ...... 오늘날 파업들은 폭동으로 전화된다. 도시들은 반란으로 마비된다. 도시대중의 시위는 결국 폭력적인 거리폭동이 된다. 요약하자면, 콜롬비아에서 자본주의적 메커니즘과 두 개의 자본주의 군사전선 사이에서 갈등의 악화와 확장에 의해서 불붙은 봉기의 과정이 나타나고 있다.(BC, 제9호, 2000년 9월)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어디에서 관념론이 발견되는지에 대해서 묻고 싶다. 우리의 기사인가, IBRP의 공상적인 분석들인가?[11]

가장 최근에 나온 데카당스에 관한 오류들

불행하게도 더 많은 것들이 있다. 지금까지 얼마 동안, 그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한 프롤레타리아 정치진영을 경멸함에도 불구하고, 점점 더 그 역사적 시기의 기본 분석에 의문을 품어 온 것은 사실 BC였다. 그들의 현실에 대한 평가는 누가 기사의 초고를 집필하던지 간에, 점차 즉흥적인 해석에 의지한다. 아주 최근에 우리가 현 시기[12] 노동조합의 역할에 대한 심각한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 BC를 비판했다. 그 오류는 BC 자신의 역사적 태도와 반대인 것이었다. 그러나 『프로메테오』 제2호에 실린 같은 기사에서 우리는 그 문제로 퇴보하고-우리는 과거 우리의 반론을 인용하지는 않을 것이다-자본주의 데카당스 개념에 의문을 던지는 일련의 문단들을 발견한다. 데카당스에 대한 승인은 IBRP와 ICC를 이어주는 입장이며 맑스와 엥겔스 이래로, 제3인터내셔널에서부터 로자 룩셈부르크와 레닌-누가 그를 따르든 간에-까지 그리고 1920년대 혁명적 조류의 퇴보 이후 코민테른에서 나온 좌익 공산주의까지 노동자 운동의 유산이다. 사실상 그 기사는 현재 정세를 위기를 수반했지만 일반적으로 발전의 시기였던 과거 역사의 국면과 대조되는 되돌아 갈 수 없는 자본주의 데카당스의 역사적 시기라기보다는 "축적 주기의 상승 국면"이자 축적의 "주기에서 데카당스 국면"이라고 성격 규정한다.

말하자면 자본주의 역사를 두 시대로 구분하는 도식이 있다. 상승기와 하강기. 전자의 시기 동안 공산주의자들에게 유효했던 거의 모든 것이 더 이상 후자의 시기 동안에는 그렇지 않다. 단지 더 이상 성장은커녕 하강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나의 예로 노동조합을 들 수 있다. 노동조합은 과거에는 그 안에 들어가서 활동하고 통제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올바랐지만 그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노동조합의 중재자로서의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역할에 대하여 문헌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이러한 역할과 자본주의 각각의 국면들 사이의 관계나 이윤율과 구매력 사이의 반대되는 역할에 대해 참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 축적주기의 상승 국면에서 노동조합은 ‘변호인'으로서 임금과 노동조건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비록 자본이 즉각 그것을 다시 빼앗아갔지만.) 축적주기의 하강 국면에서 중재를 할 만한 여유는 0으로 줄어들고, 노동조합은 그들의 역사적 기능을 이어가지만 사실상 자신의 보존을 위해 협상하고 노동계급 내에서 자본의 이익을 위한 대리인으로 기능하게 된다.

반면에 ICC는 역사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 노동조합이 노동계급에게 긍정적이었던 때-노동조합이 어떻게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에 대하여 상술하지 않더라도-와 그들이 부정적이 되었을 때이다.

우리는 민족해방전쟁 문제에 대해서도 비슷한 도식을 본다.

그러므로 의문의 여지가 없고 상당히 명백하게 공유된 입장들의 형식적인 제안은 만약 멀리하지 않는다면 역사유물론으로부터 상당한 일탈과 객관적인 상황을 조사하는 데 있어서 무능력을 수반하게 된다.[13]

기사의 이러한 부분이 명백하게 ICC에 대한 답변으로 만들어졌지만, 우리는 BC가 정말로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지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이 ICC가 수십 개의 기사에서 그리고 특히 노동조합 문제[14]에 대해 상세히 다룬 팸플릿에서 밝힌 노동조합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를 기억도 못한다면 말이다. 그 팸플릿은 "노동조합의 중재자로서 역사적이고 제도적인 역할에 대하여 문헌"을 "이러한 역할과 자본주의 각각의 국면들 사이의 관계"로까지 확장하고 있다. 우리는 동지들이 우리 팸플릿을 읽고 또 읽어서 BC의 부정확성을 확인해 주시길 바란다.

그러나 우리는 맑스와 엥겔스가 한 세기 반전에 이야기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 도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정 발전 단계에서 사회의 물질적 생산력들은 지금까지 그것이 그 틀 안에서 작동해왔던 현존하는 생산관계들 또는 이것이 비록 법률 용어로 같은 것을 표현할 따름이지만 소유관계들과 갈등을 일으키게 된다. 생산력들이 발전하는 형태들로부터 이러한 관계들은 그들의 족쇄로 변한다. 그리고 나서 사회 혁명의 시기가 시작된다."(맑스, 엥겔스, 『정치경제학비판』서문, 프로그레스 출판사, p.21)

우리는 BC가 단지 펜의 실수를 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그들이 우리의 주장에 답변을 시도하면서 부적절한 용어를 사용했을 뿐이라고 믿고 싶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BC가 이러한 문구들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물어보아야만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후퇴의 시기 다음에 그리고 축적 주기의 회복과 함께 노동계급은 노동조합이 "임금과 노동조건의 양보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다시 믿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일 게다. 만약 BC가 말하려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면, 우리는 BC가 자신의 의견으로 최근 10년 동안 "축적 주기의 상승 국면"이라고 말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 그리고 노동조합 관련 부분에서 말한 "임금과 노동조건의 양보"에 상응하는 것이 노동계급에게 무엇인지를 말해 줬으면 좋겠다.

더욱이, 민족해방 투쟁에 관하여, ICC가 "유사한 도식"이라고 표현한 부분에 대하여 BC의 동지들은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이러한 경우에도 자본 축적 주기가 확실하고 경기후퇴가 없다면 우리는 아라파트나 그와 같은 자들을 지지해야 하는가? 만약 이것이 올바른 해석이 아니라면 BC는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가?

결론

이 기사에서, 우리는 현실에 대해 관념론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은 ICC가 아니라 오히려 이론적 혼란을 겪고 있으며 개입에서 기회주의적으로 접근하는 BC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임무를 다하지 않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온 프롤레타리아 정치진영"에 대한 반론으로 BC가 내놓은 견해가 그 자신의 기회주의로 변화와 강령적 수준에서 일탈을 숨기려는 연막 말고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그것은 우리에게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롤레타리아 정치진영이 자신의 역할을 하지 않았지만 특히 IBRP의 현재 경향이 자신을 "세계에서 오직 하나다"고 여긴다면, 동지들은 보르디가주의자들에 대한 반박으로 썼던 책자들과 수많은 글들로 돌아가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 책자들에서 동지들은 각각의 보르디가주의 그룹이 그 스스로를 당으로 여기고 다른 그룹들을 무의미하다고 반대했던 사실을 올바르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까닭으로 우리는 BC가 우리의 비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터무니없는 분노와 정직하지 못함으로 숨기지 말 것을 권유하는 바이다. 우리 모두 자신의 임무를 다하기 위하여 노력하자.       

옮긴이: 김정호


[1]「당 건설 정책에 있어서 맑스주의와 기회주의의 관점」, 『국제평론』제103호, 2000년 4분기 

[2]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당일 것이다」, 『프로메테오』제2호, 2000년 12월

[3] 우리는 노동자 운동에서 "비방", "분노", 기타 등등의 비난들이 전형적으로 중도주의자들과 기회주의자들이 그들에 대한 좌익조류들의 비판에 대해서 사용되었다는 점을 이야기해야만 한다.(레닌이 멘셰비키에 맞서서 투쟁에 돌입했을 때 그의 말은 "사악한 비방"으로 알려졌으며,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그녀가 베른슈타인과 나중에는 카우츠키에 맞서서 대중파업 문제에 대해서 투쟁했을 때, "신경질적"이라고 비난당했다.) 이러한 비난을 하기보다는 IBRP는 왜 우리의 비판이 거짓이고 심지어 "비방"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야만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반면에 IBRP는 이러한 종류의 비난을 우리에게 잘못 맞추고 있다. 그들이 그들 자신이 그러한 묘사를 하는 것에는 망설이지 않는데도 말이다. 특히, 어떤 증거 없이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진영의 일부가 아니라는 주장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않고 남의 눈의 티끌만을 보는 것이다.

[4] BC의 동지들이 "기회주의자"라는 표현을 "반혁명적"이라는 표현과 동일시하면서 우리의 처음 답변에 대하여 특별히 증오심을 가지고 반응했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자운동의 역사를 아는 어느 누구라도 이러한 동일시가 오류이며 사실 무근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기회주의는 언제나 노동자 운동 내에 존재하는 혁명적 입장의 퇴보로 이해되어져 왔다. 보르디가주의와 BC가 기회주의적인 정치 형태,즉 다양한 스탈린주의 공산당들처럼 이미 반혁명의 편으로 넘어간 것으로 나타나게 만들어 온 것은 단지 그들의 모호함과 명확함의 부족이었다. 그 결과 기회주의는 반혁명과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5] IBRP, 「새로운 인터내셔널을 향하여」

[6]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당일 것이다」, 같은 책, p.10

[7]특히 이러한 이론적 발전이 나타난 로자 룩셈부르크의 다음 두 저작을 보시오. 『자본축적과 자본축적에 대한 반 비판』, 먼슬리 리뷰 출판사 

[8] 제국주의 블록의 재구성이 오늘날의 의제가 아닌 주요한 이유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미국에 도전할 수 있는 나라가 조금도 없기  때문이다. 독일 같은 나라는 믿을만한 군사적 잠재력을 가지려면 (확실히 12년 이상의)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9] 이러한 "탈선"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보려면 우리의 기사 「동유럽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리고 혁명가들의 대응」을 보시오.(『국제평론』 제61호)

[10] 같은 글

[11] 우리는 다시 한번 더, 1980년 8월 폴란드에서 파업이 일어났을 때, CWO가 "지금 혁명을"이라는 슬로건을 그들의 신문에 실었던 것을 언급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사실상 한 명의 혁명가도 없었다. CWO 동지들은 우리에게 이것은 사고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제목과 기사는 한 투상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그는 다른 회원들의 동의를 얻지 못했고 그 신문은 배포되었다가 즉각 회수되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 설명을 받아들이지만 그럼에도 한 명의 회원이 그러한 멍청한 짓을 했던지, 조직이 출판을 막지 못했던지 간에 그 당시에 정치적·조직적 명확성이 없었음을 BC는 인정해야한다. 그 관련 투사는 아마도 CWO가 조직이나 출판위원회에 의해 사전에 통제되지 않은 신문을 출판할 권한을 주었던 사람은 결코 아니었을 것이다. 이러한 류의 심각한 개인의 실책이 가능한 것은 아나키스트 서클들이거나 1914-15년 이탈리아 사회당에서일 것이다. 그 당시 무솔리니는 사전에 어느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아반띠에 전쟁 참여를 촉구하는 기사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무솔리니는 적어도 신문의 감독자였다. (그리고 비밀리에 카쉥이 프랑스 정부에서 받은 돈을 전달해 주었다.) 어쨌든 CWO의 국제조직은 그 당시에 유감스러운 점이 많았다. 우리는 그 이래로 개선되었기를 바란다.

[12] 『국제혁명』 제116호에 실린 「I sindacati hanno cambiato ruolo con la decadenza del capitalismo?」를 보시오

[13] 새로운 인터내셔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당일 것이다」, p.8~9

[14] 「노동계급에 반하는 노동조합들」, 현재 모든 주요 유럽어로 출판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