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질문해야 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출현에 대해 말할 때는 어떤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가? 어떻게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정의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탄생을 이해할 수 있는가?’
우리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의 문제를 오랫동안 고민한다면, 명백히 이는 프롤레타리아가 의식화되는 그 현상을 좀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이다. 우리의 탐구가 아직 규명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현재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계급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의식하게 되는 그러한 경향이 전혀 새로운 현상이 아님을 알고 있다. 과거의 다른 혁명적 계급들도 자신들의 세계관을 위해 투쟁했고, 그 전의 도그마와 경직된 생각들에 대항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과거에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투쟁, 생산 양식을 제도화하기 위한 투쟁에 사상끼리의 투쟁, 서로 다른 세계관들 사이의 투쟁이 동반하여 일어났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 발전 과정 전체를 통틀어 언제나 새로운 사회적 관계 설립을 위한 계급투쟁은 동시에, 새로운 보편사상의 승리를 위한 투쟁이었다. 사회가 경제적 수준에서 경화되는 순간부터, 사회의 생산 관계가 사회의 진보와 삶을 제한하는 껍질로 변형되는 그때부터, 과거의 사회진화에 상응하는 모든 이데올로기적 형식들은 뿌리 뽑히고, 내용이 없어졌으며, 공공연하게 사회적 현실에 대립하게 된다. 이데올로기, 철학, 그리고 예술에서 표현되던 낙관주의와 생기는, 일단 사회가 경제 수준에서 노쇠와 데카당스의 시기에 진입하고 나면, 철학적 비관론, 반계몽주의, 그리고 예술 표현과 사회사상의 쇠락으로써 대체된다. 이렇게 증대되는 분열은, 사회를 통제하는 현존 관계와 그 사회가 직면한 새로운 역사적 필요뿐만 아니라, 인간이 사회에 대해 갖는 사상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그런 시기에 정말 진보적일 수 있는 유일한 사상들은 새로운 사회를 선언하는 것들이다. 사회관계의 새로운 유형을 내다볼 수 있는 사상들이 나타나서, 혁명적 사상이 되기 전에 처음에는 비판적이고 유토피아적이며 논쟁적인 형태를 띤다.
계급의식도 같은 맥락에서 전개된다. 쇠퇴하는 자본주의 경제적 모순의 심화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 쇠퇴의 과정은, 노동자계급에게는 역사의식을 발전시키는데 필요한 비옥한 지형을 제공한다. 또 다른 비교점은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발전과, 과거의 혁명 계급들의 투쟁을 특징짓는 이데올로기적 과정들 그 사이에 존재한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은, 이데올로기 일반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사회적인 물질적 조건들의 총체성을 토대로 한다. 그러한 구체적인 토대가 존재한다는 점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전진을 결정짓는다. 그러므로 계급의식의 발전은, 두 사회 계급간의 현실의 경제적인, 그리고 역사적인 대립, 바로 그것을 표현한다. 이러한 본질적으로 실천적인 운동의 과정에서, 계급의식은 그 스스로 정립하고 승리할 수 있다.
“사람들의 대대적인 변화는 반드시 공산주의 의식의 이러한 대대적인 창조 속에서 확인되는데, 왜냐하면 그러한 변화는 단지 하나의 실천적인 운동, 즉 혁명 속에서만 실행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혁명이 필요한 까닭은 혁명이 단지 지배 계급을 전복할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계급을 전복한 계급이 오직 혁명 속에서만 스스로 낡은 체제의 모든 썩은 것들을 쓸어 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 『독일 이데올로기』)
프롤레타리아 의식은, 과거의 혁명 사상과 마찬가지로, 노동 계급의 정치적 사회적 승리의 끝에 이르러서야 정말로 승리할 수 있다.
“현실 세계의 종교적인 반영은, 어떤 경우에서든,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에서 일상적인 삶의 실천적인 관계들이 인간에게 그것들 스스로를 일반적으로 투명하고 합리적인 형태로 드러낼 때 비로소 사라질 수 있다. 자유롭게 연합된 인간들이 생산하고 그러한 물질적 생산이 그들의 의식적이고 계획적인 통제하에 놓여 있을 때에야 비로소 사회적 삶의 과정, 즉 물질적 생산과정의 겉모습으로부터 베일이 벗겨지게 된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사회가 물질적인 기반들, 즉 일련의 물질적 실존 조건들을 소유해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들은 다시, 고통스럽고 오랜 역사 발전의 자연적이고 자생적인 산물이다.”(맑스, 『자본론 1권』)
그래서 과거의 낡은 사상들을 결정적으로 극복한다는 것은 (이것은 언제나 그러한 경우였다) 낡은 경제적 모순들을 물질적으로 극복함을 함의한다.
“종교, 가족, 국가, 법, 윤리, 학문, 예술 등은 생산 양식의 특수한 형태일 뿐이며, 그러므로 그 일반법칙을 따른다. 사적 소유를 긍정적으로 폐지하는 것, 즉 인간적인 삶을 전유하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소외를 긍정적으로 폐지하는 것이자, 인간이 종교, 가족, 국가 등으로부터 자신의 인간적인, 즉 사회적인 실존으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그와 같은 종교적인 소외는, 의식의 영역에서만, 즉 인간의 내적 삶의 영역에서만 일어나지만, 경제적 소외는 실제 삶의 소외이다. 그래서 그것의 폐지는 두 영역 모두를 포괄한다.”(맑스,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그런데, 일정한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거에 대해 말할 때는 이데올로기들을 이야기하고, 프롤레타리아트에 대해 말할 때는 계급의식을 계속 이야기한다. 이것은 단순히 용어상의 차이인가?
실제로, 우리의 관심이 근본적으로 다른 두 과정들을 정밀하게 특징짓는데 있기 때문에, 이러한 두 가지 다른 용어들을 쓴다. 과거의 혁명적 계급들의 이데올로기적 과정과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 발전 사이의 차이는 그들이 일반적으로 공유하는 얼마 되지 않는 요소들에 비해서 훨씬 더 중요하다. 게다가,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바로 그 진정한 본질과 근원이 단순한 이데올로기와 동일시하는 것을 막는다.
이데올로기와 계급의식 사이의 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에 기반을 둔 경제적 하부구조의 존재를 사회사상의 수준에서 표현한다. 이러한 하부구조에서 지배적이며, 경제적 권력, 생산수단과 물리적 힘을 가진 그러한 사회적 계급은 그 지배를 정당화하는데 필수적인 이데올로기적 수단들까지도 마찬가지로 소유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이데올로기적 “반영”을 이야기할 수 있다. 심지어 지배계급의 사상이 현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것들이 실체없는 애매한 개념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것들은 여전히 훨씬 더 결정적인 현실, 즉 경제적인 현실과 그 법칙을 수동적으로 따라야만 한다. 그래서 부르주아지가 봉건제에 맞선 혁명적 투쟁의 과정에 있을 때조차도, 부르주아 사상의 비판적 행동은 그 최종적 분석에 이르기까지도 오직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었다. 실제 혁명적 행동은 더 낮은 곳, 즉 사회의 토대에서 발생했었다.
비록, 계몽기의 철학자들의 저작들 -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저작들, 볼테르, 디데로, 몽테스큐, 칸트, 로크 등등의 저서들 –이 부르주아지의 혁명적 투쟁에 그리고 그것이 정치적 규칙을 강제하는 데에 신뢰성을 주는 한편으로 중세의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심각하게 약화시키는데 공헌한 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그들의 공헌들은 항상 이미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경제적 변혁 과정을 뒤따른 것뿐이라는 점도 진실이다. 부르주아지의 선각자들이었던 모든 천재들(로저 베이컨, 폼포나치,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에라스무스, 토마스 모어 등)은 생산력의 발전 정도와 봉건적 사회관계 사이에 점점 더 극악해지는 모순들을 표현했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그 혁명적 역할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지가 경제적 힘을 획득한 이후로는 일종의 정당화처럼 보였다.
“자본주의는 19세기에만, 그러니까 그 역사적 궤적의 끝에서만, 그 투쟁의 역사적 강령을 구체적으로 결정하는 데 성공했다. 바로 그 승리의 전야까지 자본주의의 역사적 지성은, 그것의 경제적 지위가 구 사회 내에서 발전하고 그 지속적 발전을 위한 길을 명확히 하는 그 만큼 점진적으로 실현되었다.” (『 Bilan 』, 5권. 1934년 3월, 우리의 강조)
반면에, 프롤레타리아의 의식은 어떤 경제적 하부구조에도 기반하지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경제적 권력이 전혀 없고, 새로운 착취 형태의 확립을 그들의 목표로 삼을 수 없다. 심지어 사회의 지배 계급으로서 스스로를 확인할 때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 계급이 되지 않을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의 영속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꾸며내도록 강요당할 어떠한 경제적 이해관계도 갖고 있지 않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비록 그들이 원한다 하더라도,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를 창조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계급의식의 정치적 성취물은 그것이 절대적인 사상으로, 이데올로기로 굳어버리는 순간, 그 혁명적 성격을 잃고, 부르주아적 편견의 혼잡한 체계들로 통합되어 버린다.
이러한 상황의 귀결들은 다음과 같다:
1. 과거의 사회사상의 진보와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은 구 사회의 경제적 변혁에 종속되어 있지 않으며, 그것에 수동적으로 따르지도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아무런 경제적 특권도 갖고 있지 않기에, 기존 질서의 물질적 전복으로 나아가기 이전에 처음부터 의식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을 통해서 스스로를 주장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 즉 혁명적 강령은 계속 전진하여, 기존 사회의 전복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자본주의처럼, 프롤레타리아트 역시 계급으로서의 특정한 원칙들에 대해 기반을 설립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러한 기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비롯되는 반대, 동요, 봉기들을 흡수하여, 그것들이 프롤레타리아 독재 확립을 지향하도록 만들 수 있는 것이다. (…) 그러나, 자본주의가 체계적이지 않고, 무질서적이며, 모순적인 형태의 역사적 강령을 정교화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면,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는 혁명 투쟁의 성장에 필수적인 정치적 기반을 먼저 설립해야 한다.”(『Bilan』 5권 1934년 3월)
공산주의 의식은 현실 상태를 반영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반드시 그 스스로를 혁명 과정에서 능동적 요소로 표현해야한다.
2. 이데올로기는 지배적인 사회 질서를 그대로 둔 채, 불변적이라 선언함으로써 보존하려한다. 권력에 있어서도, 착취계급은 신비화와 독단론을 영속화하는데 모든 관심을 쏟는다. 이 때문에 부르주아지는 소외를 기뻐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권력을 인식한다. 현실은 은폐되고, 사회관계의 역사적 성격도 베일에 가려진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의 사회적 상황은 부르주아지의 상황과는 전적으로 다르다. 그 상황은 부르주아지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해’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는 자신의 상황에 반대하여 폭동을 일으키고, 모든 이들로 하여금 자본주의 사회의 영원한 본질을 믿게 만든 자본주의의 자기만족적인 이데올로기적 가면을 찢어버릴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을 변혁하고, 그 착취를 끝내기 위해 필요한 첫 번째 조건들 중 하나는, 자본주의는 잠정적이고 역사적이며 변혁될 수 있다는 특성을 분명하게 인식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착취를 규정하는 경제적 사회적 법칙들이 인간 행동과는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자연법칙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일시적인 현실을 반영하는 법칙임을 부분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그 스스로 착취에 반대하여 정면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인간은, 오직 그렇게 이해함으로써만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분리를 폐지하고, 경제에서 하나의 사물처럼 자신에게 대상화된 그 자신의 힘에 대한 지배력을 획득하여 이러한 현실을 변혁 할 수 있다. 현실로부터 그것의 ‘구체화된’ 겉모습을 분리하고 그 물질적 토대를 분쇄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서 사활이 걸린 문제다.”(F. Jakubowski, 『역사에 대한 유물론적 사고에서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Ideological Superstructures in the Materialist Conception of History』)
다소 추상적인 이러한 말 뒤에는 다음과 같은 생각이 담겨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대항한 투쟁에서 도움이 될 만한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신들의 상황을 변혁하기 위해서 그러한 상황을 신비화의 껍질을 깨고 이해하는 것을 발전시켜야 한다. 계급의식을 통해서 그들은, 당대의 자본과 노동의 관계가 일단 한 번 확립된 뒤 영원히 지속되는 어떤 추상적인 것들 간의 관계가 아니라, 바뀔 수 있고, 바꿔야만 하는 살아있는 사회관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이데올로기들은, 그것이 어떤 경향이든 간에, 절대로 이러한 전반적인 이해에 도달할 수 없다.
3.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은 무엇인가?
사유 재산으로서 묶여진 생산수단은 부르주아지에 속한 개개인들을 고립시킨다. 개별 자본가, 국가, 경쟁하는 개인들, 상품의 개별 소유자, 이러한 것들이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의 출발점이다. 이데올로기는, 비록 한 사회 계급의 지배를 매우 잘 보여준다고 할지라도, 진정으로 집단적인 산물이 될 수 없다. 하나의 거울이 조각나서 생긴 수 천 개의 파편들이 모두 같은 이미지를 비추듯이, 이데올로기는 스스로를 모든 개인에게 강제한다. 사회는, 그 자체에 의해 제어되지 않고 외부적 힘처럼 보이는 경제적 상황에 굴복하듯이 마찬가지로 지배 이데올로기에도 굴복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서로 경쟁하는 개인들은 모두 같은 이데올로기적 위협, 같은 환상, 같은 편견과 도그마에 종속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개인은 다른 사람들을 타인으로 그리고 경쟁자로 간주하며, 각자는 그 자신만의 고유한 개성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고 상상한다. 행동과 사상에서 진정한 연대(real solidarity)는 자본주의 사회와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자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생산수단의 집단화와 인간관계의 사회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정말 어쩔 수 없이 혼자이고, 그 모두 부르주아지 지배의 산물인 그의 생각과 그의 삶의 방식은 진정으로 집단적인 운동 속으로 진입할 수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는 생산 과정에서 연합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삶의 조건들로 인해서 연합하여 연대할 수밖에 없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오직 투쟁 속에서 연합함으로써, 노동 과정에서 연합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결실을 통해서만 그 자신들의 공동의 적, 자본을 압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의 역사 전체를 통틀어 자신들의 세력을 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처음에는 개별 노동자들이, 그 다음에는 한 공장의 노동자들이, 또 그 다음에는 한 노동 부문의 노동자들이, 한 지역에서, 그들을 직접 착취하는 개별 부르주아에 대항하여 투쟁한다. (…) 그러나 산업의 발전과 더불어 프롤레타리아트는 단지 수적으로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다, 더 대규모로 집결되고, (…) 개별 노동자와 개별 부르주아 사이의 충돌은 점점 더 두 계급들의 충돌이라는 성격을 띤다.”(『공산주의 선언』)
프롤레타리아트만이 국제적 연대(international solidarity)에 기초한 하나의 계급을 구성할 수 있다. 이러한 연대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존재하게 될 사회관계의 선구체로서, 투쟁에서 자생적으로 분출한다. 이것은 믿기 힘든 현상이다. 노동자들은, 어제는 지옥 같은 노동의 압박으로 말하지도 않고 심지어 때때로 서로 간 경쟁을 느끼다가, 어느 날 갑자기 투쟁의 열기 속에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고, 벽을 허물고 서로를 돕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들의 강고한 연대를 깨려면 노동조합과 경찰 등, 부르주아지의 모든 권력이 필요할 만큼, 노동자들은 그렇게 강하게 연합되어 있음을 느낀다. 이것이야말로 계급의식의 출발점이다!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어서 정치적 성찰의 출발점은 개체로서 개인(the individual as an individual)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일부로서 개인(the individual as a part of a whole), 계급의 부분으로서 개인에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노동자나 저 노동자가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의 계급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 어떤 의식을 가져야 하는가에 있다. 계급의식은 총체(totality)로부터 시작하며, 고도로 집단적인 과정이다.
4. 그러나 그러한 총체, 즉 프롤레타리아 계급 의식이 그 안에서 비롯되는 바로 그 계급은, 특질 없는 대중이 아니며, 부르주아 사회를 구성하는 그 모든 것들 중의 평범한 한 부분이 아니다. 종파나 수도회 또는 종교 단체들 중에서도 그들의 삶과 사상에서 총체적 공동체를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것들이 있다. 부르주아지도 프롤레타리아트의 공격에 직면하면 자신들끼리 ‘연대’할 수밖에 없고, 농민들도 크고 작은 집단체를 구성해 낼 수 있으며 … 실제로, 이러한 다른 계급들 중 그 어떤 계급이나 종파도 프롤레타리아 연대의 수준에 이를 수 없는데, 이는 단지,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관계의 새로운 유형의 담지자로서 하나의 역사적인 계급을 구성하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부르주아지에 적대적인 하나의 역사적인 계급을 구성하며,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살아있는 부정(the living negation)이다. 계급의식 또한 이러한 역사적 차원을 포함한다. 이것은 단지 주어진 상황의 이데올로기적 반영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단순히 자본주의의 파괴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계급투쟁은 자의적인 상상의 산물일까? 그 반대다! 노동자들이 획득하고, 그들의 투쟁을 앞으로 추진하게 하는 계급의식은, 완벽하게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과정이다. 그것은 매우 정밀하게 물화되는 능동적인 힘으로서, 생존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투쟁의 생생한 경험을 요구한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론적으로는 풀리지 않았던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그 스스로의 실천 속에서 해결해 나가며, 낡고 닳아빠진 사상은 폐기하고 다른 사상을 소생시킨다. 그리고 다시 질적 단계 하나를 통과해 나가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들의 과거 경험에서부터 정치적 이론적 교훈을 끌어내야 한다.
1920년대 혁명적 물결 속에서 계급의식의 뛰어나고, 실천적이고, 생동하는 특질이 확인되었다. 러시아, 독일, 헝가리 혁명 모두에서는 풍요롭게 넘쳐나는 생각들이 계급 안에서 강하게 분출했다. 투쟁이 발전함과 동시에, 모든 장소에서 노동자 평의회(worker’s councils)와 총회(general assemblies)가 나타났고, 모든 곳에서 즉흥적 화합과, 진실한 토론, 생각과 제안들의 무수한 교류가 발생했다. 어제의 노동자들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부과한 심각한 무지 속에 침체되어 있었지만, 오늘의 노동자들은 실천적인 지성과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담함을 보여주는 연설자가 된다. 자본의 지배에 침묵하며 속박되어 있던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별안간 연설하기 시작하여, 모든 곳에서 수많은 생각과 사상들을 교환하고 정보를 모으며, 함께 정치적 토론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주도성과 창의력을 생생하게 증명한다(…) 정치적인 환경은 열정적인 음조를 띠고, 교류와 성찰을 위한 수많은 통로들이 창조된다(…) 계급의식이 집단적이고 실천적으로 살아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의 발전을 확인하기 위해서, 폭동의 시기나 혁명적 시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착취에 대한 일상적인 저항은, 현실 투쟁의 결실이자, 마찬가지로 계급 단결과 계급의식의 확장을 위한 비옥한 지형을 형성한다. 우리는 1920년대 혁명적 시기와 동일한 현상들, 즉 모든 열정적이고 생동하는 생각들, 토론들의 갑작스런 폭발들이, 하지만 좀 더 소규모로 이뤄지는 것을 본다.
이 과정이 기계적이거나 균질적이지 않다는 점을 잘 이해해야 한다. 노동자들의 회합들에 의해, 자본주의에 대한 일상적인 투쟁들을 통해 얻어진 의식 수준으로는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제기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계급투쟁은,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 의식화 과정과 마찬가지로, 변동적인 운동이며, 끊임없이 스스로를 새롭게 하지만 또한 동시에 퇴조할 수도 있는 물결과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힘과 실천은 노동자들이 부르주아지의 사상에 종속된 채 남아있는 한 휴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들의 잠재력을 효과적인 위력으로 바꾸는 것이 바로 계급의식이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실천을 통해서, 자신들이 하나의 계급을, 즉 자본에 의해 착취되는 특정한 계급을 형성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러한 착취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자본에 대항해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자신들의 투쟁을 통해서 경제체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적들과 그 동맹들이 발견될 그 사회를 알게 된다.
“대중의 진정한 교육은 대중 스스로의 독립적이고 정치적이며 특히 혁명적인 투쟁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오직 투쟁만이 착취받는 계급을 교육한다. 오직 투쟁만이 그 고유한 힘의 정도를 드러내고, 그 지평을 넓히며, 능력들을 높이고, 정신을 명확히 하며, 그 의지를 단련시킨다.”(레닌, 『1905년 혁명에 대한 강연』 1917년 1월 22일, 1905년 혁명으로 재판)
5. 계급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 자신들의 투쟁에서 시작한다. ‘경제적인’ 것과 ‘사회회적’ 인 것, ‘정치적인’ 것들 사이에 분리가 있다고 가정하는 이데올로기와 대조적으로, 계급의식은 경제적 정치적 투쟁이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다.
“정치적, 경제적 파업, 대대적 파업과 부분 파업, 시위적 파업과 전투적 파업, 각 산업 부문의 총파업과 개개 도시의 총파업, 평화적 임금 투쟁과 거리의 대량 학살, 바이케이트 투쟁 –이 모든 행동들은 이것에서 저것으로 넘나들며, 나란히 발생하기도 하고, 또 순환하여 일어나기도 한다 - 이것은 현상들의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바다이다.”(로자 룩셈부르크,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 (Massenstreik, Partei und Gewerkschaften』)
부분적이든 전면화된 투쟁이든 간에, 오직 경제 파업과 정치 파업 사이의 밀접한 연계를 통해서만 이후의 투쟁의 발전, 국제적 일반화, 그리고 계급의식의 풍부화가 가능하다.
“두드러진 특징은 혁명의 시기에 경제 파업이 정치 파업과 결합하는 방식이었다. 이 두 가지 형식의 파업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그 거대한 힘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착취 받는 광범위한 대중들은, 어떻게 다양한 산업 부문들의 임금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조건들을 자본가들이 개선하도록 강제하였는지를 경험하지 못했다면, 혁명적 운동에 휩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투쟁이 러시아 대중들을 새로운 정신으로 물들였다.”(레닌, 윗글)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 조건들의 악화에 저항함으로써 자신의 힘에 대한 감각과 의식을 획득한다. 그 투쟁과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들의 사회적 획득물들이 부르주아지에 의해 다시 강탈되는 것을 지켜볼 때 확장된다. 자본주의의 위기가 죽음의 위기라는 것, 이러한 곪아가는 체계는 노동자계급에게 어떤 것도 줄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자본주의는 이미 진보적 체계가 아니라는 것을 차츰 주목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들을 진정으로 의식하게 되는 것은, 더더욱 급진적인 방법으로 투쟁하고, 내핍과 전쟁을 부추기는 자본주의의 추동력을 거부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가 엄격하게 경제 투쟁에만 머물러 있는 한 그 투쟁은 부분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 투쟁에서 만들어진 요구 수준에서 일련의 ‘패배’들(즉, 부르주아지가 오늘은 허용하지만 내일은 다시 빼앗아가는 것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과 정치적 통일의 수준에서는 점차 승리로 변화되어 간다. 투쟁의 운동은 조금씩 조금씩 사회 전체에 대한 정치적이고 혁명적 문제제기로 향한다.
계급의식이 본질적으로 계급의 경험의 산물이자 실천적 투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은, 진실로 계급 전체의 행동이 대체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혁명 의식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정치적 해방과 마찬가지로, 노동자들 자신들의 일이다. 이것은 경직된 생각들, 계급 외부에서 이미 만들어진 처방들을 수집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 이와 유사하게도,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자신의 상황에 대해 갖는 의식은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에 대한 깨달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자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의식이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은 계급으로서 자신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인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매우 단순히,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 과정에서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의식할 때 그들은 자본주의 체계의 복잡성과 야만성의 본질에 대한 모든 것을 의식하게 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계급의식의 이러한 발전은 항상 계급투쟁과 동의어다. 계급의식은,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계급으로서, 의식적인 존재로서 스스로의 본질을 확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