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전, 1945년 8월 최초의 원자폭탄 두개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되었다. 두차례의 세계대전 동안 특히 방화폭탄을 포함하여 온갖 종류의 무기들로 이미 자행된 대대적인 파괴에 뒤이은 이러한 핵무기의 사용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위협하는 잠재적 파괴력의 새로운 단계를 열었다.
2017년 9월 9일 북한정권의 창립기념을 계기로 국가가 조직한 거대한 파티에서 김정은이 자국의 수소폭탄을 “우리 인민의 역사상 특별한 성취이자 위대한 사건”이라며 칭송하며 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언론매체를 통해 보여졌다.
북한은 성능에 있어서 그 이전의 어떤 테스트들도 능가하는 핵폭발을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배타적인 세계핵폭탄보유국 클럽에 북한이 속하게 되었다. 부르조아사회의 쇠퇴가 야만주의로 내디딘 최근의 이 한걸음에 관한 소식은 허공에서 그냥 나타난 것이 아니다. 평양의 스탈린주의 정권측의 대량파괴 기술의 무시무시한 승리는 미국과 조선인민민주공화국사이에 몇 개월에 걸쳐 이뤄진 상호간 위협의 절정점이다. 북한은 올해에만 벌써 17차례나 미사일 테스트를 행했는데, 이는 이전에 이뤄진 테스트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큰 수치다. 태평양에 위치한 미국영토인 괌 또는 미국본토의 목표물들에 대한 공격 위협, 일본상공을 지나간 미사일 그리고 미국의 공격이 있을 경우 핵무기로 스스로를 방어하겠다는 위협과 더불어 북한과 미국사이의 맞대결은 새로운 단계에 도달했다. 이에 미국은 국사적, 경제적 및 정치적 무기를 총 동원해서 대응하겠다고 위협한다. 트럼프대통령은 미국이나 미국의 동맹국들 중 어느 하나라도 북한정권에 의해 공격당한다면 “불과 분노(fire and fury)”로 북한을 방문하겠다고 말한다. 핵무기 사용의 위험은 이전보더 훨씬 더 높고, 서울이나 토쿄등 아시아의 몇몇 대도시들을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미국과 그 동맹국들인 남한과 일본이 취한 최근의 군사적인 행보들(특히, 새로운 사드(THAAD)미사일체계의 남한내 배치)은 미국과 중국사이의 대결을 첨예화했고 다른 나라들을 이러한 대 혼란속으로 더욱더 끌어당기고 있다.
한국에서의 이러한 사건들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러한 사건들은 인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북한의 희망은 그 폭탄 덕분에 살아남는 것이다
냉전기 수십년 동안은 주로 강대국들이 핵무기로 무장되어 있었다. 그러나 1989년 이후 수많은 나라들이 핵폭탄에 접근했거나 접근하려 노력중이다. 그래서 상호파괴의 위협은 훨씬 더 예측불가능하게 되었다. 왜 북한같은 “약소국(underdog)”이 핵무기를 통한 위협역량을 개발하고 있는지 이해하려면 여러 다른 요소들을 고려해 보야한다. 이러한 상황전개들은 더 넓은 역사적 국제적 문맥 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제 2차 세계대전 그리고 그 몇년 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인한 황폐화에 뒤이어 북한과 남한은 재건을 위해 그들의 “보호자들”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다.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었는데, 이 두 나라들은 더 발전한 자본주의국가들에 훨씬 뒤 쳐져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없는 스탈린주의 정권들 의 지배 아래에 있었다. 러시아는 나치 독일의 패배후 한 블럭의 지도자가 되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심각한 고갈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군비경쟁에 자원의 대부분을 전용해야만 했다. 민간부문은 군사부문에 비해 몇 세기나 뒤쳐져 있었다. 동서블럭간의 차이는 피폐한 러시아의 경우 동유럽과 중부유럽의 공장들을 해체해야 했던 반면 미국은 서독과 남한 재건에 막대한 돈(마샬플랜)을 쏟아부었던 점으로써 요약될 수 있다.
북한 재건은 스탈린주의 모델을 따랐다. 1945년전까지는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더 발전되었고 지하자원과 에너지원도 더 풍부했었지만, 북한은 군사주의로 질식당하고 스탈린주의 패거리 하나에 의해 운영된 체제들에 전형적인 후진성 때문에 고통받았다. 소련이 세계시장에서 경제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없었고 군사력의 사용 또는 사용위협에 대단히 의존할 수 밖에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도 세계시장에서 경제적으로 경쟁할 수가 없었다. 그 주요 수출품은 무기, 몇몇 지하자원 그리고 최근에는 값싼 직물류와 일부 노동력이다. 북한 정권은 노동력을 다른나라들에 “계약노동자”의 형태로 판다.1
그와 동시에 그 체제의 옹호자들인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는 북한무역의 90%이 중국과 이뤄질 정도로 상승했다. 군대에 대한 단단한 통제력을 유지하는 일당독재 지배로서 어떤 라이벌 부르주아 분파도 제거된 그 체제는 스탈린주의 통제하2의 모든 체제들과 마찬가지로 선천적인 약점들을 갖지만 몇 십년간의 결핍과 기아와 억압를 견뎌냈다. 군사 및 정치 기구들은 국민들, 특히 노동자들의 어떤 봉기도 막을 수 있었다. 다른 후진국들에서의 다른 왕조들의 몇십년에 걸친 지배와 비교해서 북한은 60년이상(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국민들을 억압하며 가장 기괴한 개인숭배3에 머리숙이도록 강요하는 단일한 왕조라는 기록을 갖고 있다.
남한의 민족주의적 야망과 미국의 제국주의적 이해에 직면하여 어떤 경제적 힘에도 의지할 수 없는 이 체제는 내부적으로 극심한 억압 그리고 외부적으로 군사적 협박을 통해서 생존을 위해 투쟁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핵무기시대에 협박은 적들을 막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무시무시해야 한다.
김정은은 핵폭탄을 자신의 생명보험으로 여긴다. 김정은 자신이 공공개적으로 선언했던 것처럼, 그는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와 리비아에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파키스탄에서 일어난 일에서 교훈을 얻었다. 소련이 붕괴된 후 신생 우크라이나는 자국내의 핵무기를 모스크바와 워싱턴으로부터의 대단한 압력아래 러시아에게 인도할 수 밖에 없었다. 리비아는 트리폴리에서 가다피정권의 국제적 고립을 끝내는 대신에 핵폭탄을 얻으려는 시도를 포기하는데 동의했다. 이라크도 비슷한 운명에 처했다. 그곳에서 특히 미국의 위협들4에 뒤이어 사담 후세인 정권은 핵무기프로그램을 포기했다. 반면 파키스탄은 “그 폭탄”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이러한 예들에서 놀라운 점은 핵무기역량을 갖느냐 갖지 않느냐에 따라 그 나라들이 얼마나 다르게 취급되는가이다. 오늘날까지 미국은 파키스탄을 군사적으로 위협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라호르에 있는 그 정권이 여전히 아프가니스탄의 탈리반의 영원한 지지자이고 빈라덴에 피난처를 제공하기도 했으며, 미국의 주요 라이벌인 중국에 점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에도 그렇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빼앗긴 채 러시아에 의해 군사적으로 공격당했고 리비아는 프랑스와 영국(미국을 배후로 하여) 의 공격을 받았다. 교훈은 명백하다: 그 지도자들의 눈에 “폭탄”은 아마도 더 약한 세력들이 너무 심하게 떠밀리거나 심지어는 강자들에 의해 전복당할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일 것이다. 이러한 정책을 물론, 몇십년 동안 핵무기를 보유하며 그 자신들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위해 자신들 스스로 핵무기를 통한 위협을 활용해온 강대국들을 수용불가능한 것으로 간주한다. 냉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모든 핵무기세력들(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은 추산적으로 22000개의 핵폭탄에 해당하는 거대한 핵무기병창고를 유지했다. 그리고 약해지고 세계 도처에서 도전받기는 해도 유일하게 남은 초강대세력인 미국은 오랜 동맹국 이스라엘이나 인도 같은 나라들이 미국에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간주되는 한, 예를 들어 인도의 경우는 중국과 파키스탄에 대항해 미국에게 무게를 실어주는 역할을 하는 한, 핵폭탄을 보유하도록 허용했다. 그래서 미국 자신이 핵무기의 확산에 기여했다. 현존의 핵무기보유국들 사이에서 지금까지는 러시아와 중국의 미사일만이 미국 영토에 도달 할 수 있고, 이란의 미사일은 핵이 장착되었든 그렇지 않았든 그럴 수가 없다. 북한은 아마도 그렇게 할 수 있는 최초의 “깡패”국가가 될 것이다. 이를 미국은 견딜 수 없다.
냉전동안 핵무기 사용의 위협은 강대국들에 제한되어 있었다. 1989년 이래 핵확산은 더 많은 나라들이 핵무기에 접근하게 되었거나 그러한 무기들을 재빨리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러한 무기들이 테러리스트 그룹들의 손에 들어갈지도 모르는 위험을 아무도 배제할 수 없다. “양극(bi-polar)”의 핵대학살의 위협이 더 심각한 “다극(multi-polar)”의 핵대학살이라는 악몽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새로운 상황 격화는 북한체제의 특이성과 그 생존투쟁만으로는 설명될 수 없다. 남북한에서 충돌 자체는 그 지정학적 위치때문에, 그리고 미국과 중국의 세계적 제국주의적 경쟁를 격화시킴에 있어 이 국가들에 대한 갖는 한국의 중요성때문에 또 다른 성질을 띤다.
제국주의적 장기판 위의 한국
한국은 늘 그 이웃 나라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표적이 되어왔다. 극동지역에 대한 우리의 국제평론 특별호에서 우리가 썼듯이, “그 이유는 명백하다: 러시아와 중국과 일본에 의해 둘러싸인 지리적 위치때문에 한국은 한 나라가 다른 다라로 팽창하기 위한 발판이 된다. 한국은 일본이라는 섬제국과 러시와와 중국이라는 두개의 대륙제국들 사이의 호두까기기게 안에 헤어날 수 없이 끼여있다. 한국을 통제하게 되면, 동해와 황해와 동지나해라는 3개의 바다를 통제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한국이 다른 나라의 통제하에 있게 된다면, 한국은 다른 나라들의 등뒤의 칼역할을 할 수 있을 터이다. 1890년대 이래 한국은 그 지역의 주요 도적들의 제국주의적 야망의 표적이 되었다. 이 도적들은 처음에는 러시아와 일본과 중국 이렇게 3개국이었고, 이들은 각각 배후에서 활동하는 도적들인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지원과 저항을 받았다. 특히 한국의 북부가 몇몇 중요한 자원들 보유하긴 하지만, 한반도가 그 지역 제국주의에게 중요한 주춧돌 역할을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전략적 위치 때문이다.5”
특히 한반도가 한국전쟁에서 현상태로 분단된 이래, 북한은 중국과 남한, 그래서 중국과 미국사이의 완충지대 역활을 해오고 있다. 만약 북쪽의 체제가 무너진다면, 남한의 군대뿐만 아니라 미국의 군대도 이전에 비해 훨씬더 중국국경에 가깝게 배치될 것이다. 이것은 중국에게는 악몽이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의 국경을 특히 미국에 대항해 방어하기 위해서 북한의 체제를 지원할 수 밖에 없다. 북한 정권이 예측불가능하고 이단자처럼 행동하려 하면 중국은 평양에 대항한 특정 제재에 동참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체제를 완전히 질식사시키는 것에는 반대한다. 중국에게 북한 정권의 공격적 정책은 양날의 칼이다. 한편으로 그것은 미국과 남한과 일본으로부터 더 강력한 군사적 대응을 자극하며 북쪽 지대에서의 중국의 위치를 약화시키지만 남쪽 지대(예를 들어 남지나해)에서 작전에 더 많은 여지를 남길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 정권의 붕괴는 미국과 자신의 숙적 일본에 정대면하여 중국이 더 공격당하기 쉽게 만들 것이다. 북한정권의 붕괴 그리고 중국으로 들어오거나 중국을 통과해 가는 난민 물결의 결과는 베이징으로서는 극도로 위협적일 것이다.
그 지위가 위협당하고 침식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미국은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북한의 위협으로부터 이득을 본다. 왜냐하면 그러한 위협들은 중국 주변에서 미국 자신이나 동맹국들의 군사적 존재성을 강화하는데 환영할 만한 정당화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추측하건데, 만약 북한이 그렇게 도발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새로운 사드 무기체제를 그렇게 쉽게 남한에 설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남한의 설치된 어떤 무기도 손쉽게 중국을 겨냥해 사용될 수 있어서, 남한에게는 “방어용”무기로 제시된 것이 동시에 중국에게는 “공격용”무기인 것이다.
북한과 남한 및 미국 사이의 충돌은 극동에서의 새로운 조합에 의해 악화된다. 1990년대 중국도 경제적 상승과 거의 동시에 다시 제국주의적 야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군대의 현대화와 자국 영토주변과 인도양 및 남동아시아의 바다에“진주목거리(string of Pearls)” 해상기지들의 건설을 우리는 보았다. 이는 적어도 남지나해의 일부에서는 일종의 군사적 점령이었다. 또한 지부티에 군사기지건설,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에서의 증가된 경제적 무게, 발틱해와 지중해 그리고 극동 등에서 러시아와의 합동군사훈련을 목격했다. 미국은 중국을 제한되어야할 제1의 위협으로 지목했다. 그래서 일본의 재무장(심지어 일본이 핵폭탄을 보유하게 허락할지도 모른다)은 남한에서의 증가된 군사적 노력들과 마찬가지로 남한을 보호함과 동시에 중국을 견제하려는 세계적 전략의 일부인 것이다. 물론 이는 미국 군비산업에 부가적인 뒷받침을 제공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함께 남한은 미국군비산업의 가장 중요한 고객들 중 하나가 되었다. 미국의 거대한 군사기구의 재정에 대한 그 기여도는 오늘날 상당하다.
동시에, 북한이 지금 핵공격 역량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제국주의가 이 지역에서 군사적으로 대응공격을 하기는 더 힘들어질 것이고 그래서 다른 분쟁지대에서 중국에 대응하려는 그 결의를 강화시킬 것 같다.
북한과의 어떤 직접적 군사적 대치도 양측에 파괴의 연쇄반응을 개시할 것이다. 남한 인구의 반이 서울지역에 살고 남한에 거주하는 2십5만명의 미국인중 다수가 이 지역에 살고 있다. 이 지역은 모두 북한 미사일의 도달 범위내에 있다. 트럼프의 “불과 분노”위협은 무수한 한국인뿐만 아니라 많은 미국민의 죽음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북한 체제의 타도는 이것이 전세계 제국주의 수준에서 의미하게 될 격화는 말할 것도 없이 남한에서의 거대한 파괴를 댓가로만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주류 언론에서 이러한 전개를 다루는 지배적인 견해는 평양에 미친자가 권력을 쥐고 있다는 사실에서 또는 김정은과 트럼프 양자의 자아도취와 비합리성의 대결에서 오는 결과로 여기는 것이다. 두 사람이 정신분석적 연구에 많은 흥미로운 특성들을 보여주는 것은 사실이고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상황격화에 더 스팩타클하고 거의 히스테리컬한 톤을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자신의 국가 자본을 방어한다는 관점에서 김정은의 핵정책은 상당히 이치에 맞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살펴보았다. 진정한 비합리성은 더 깊은 곳에 놓여있다, 진전해 가는 자본주의 부패의 시기에 국가의 경쟁이라는 비합리성에 놓여있다. 극동에서의 군비경쟁은 군국주의라는 확산되어가는 종양의 한 표현일 뿐이고, 그것은 역사적인 막다른 길에 갇힌 사회체계의 필수적인 산물이다. 그 어떤 정치가도 그 정신적인 프로필과는 무관하게 이 체계의 지독한 논리를 피할 수 없다. 영리하고 언어적 표현에서 분명한 버락 오바마는 중동에서 부시행정부의 재앙적인 관여를 축소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국이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부터 군대를 철수할 때마다 극동에서 그 존재를 더 강화시킬 수 밖에 없었다. 트럼프는“외국 전쟁”, 특히 중동에서의 전쟁에 개입하는 것을 피하지 못한 무능력을 들어서 자신의 전임자들을 비판했지만, 지금 거의 모든 지역에서 미군의 존재를 증대해야 했다. 실상, 오바마와 트럼프 모두는 군국주의의 장악이 정치가 개인들의 선언이나 바램보다 더 강력함을 보여주었다.
중국의 북한과의 불화
역사적으로 중국은 한반도를 놓고 벌어진 투쟁에서 비싼 댓가를 치뤘다. 한국전쟁에서 마오쩌뚱의 군대는 그 최초의 외국침략에 나서 심각한 손실을 입었다.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고 한국전쟁 이로는 더욱더, 미국은 그 지역에서 거대한 군사기지를 유지하는 것을 정당화하는데 중국의 위협을 이용해왔다. 게다가 중국은 일본과 라이벌 관계에 있다. 그러한 문맥에서, 중국이 남한에 대해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불가능한 현재로서, 중국은 경제 카드를 활용해 오고 있다. 남한을 되도록이면 중국 경제에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 그 목적이다. 오늘날 이미 남한 수출의 주요시장은 중국(대략 23%)이지 더이상 미국(12%)이 아니다. 그리고 남한은 중국생산품이 수출되는 네번째로 큰 시장이다. 이러한 정책이 당한 심각한 패배의 상징이 바로 사드미사일방어체제의 남한내 배치이다. 베이징은 즉각 서울에 대한 경제적 제재를 가하겠다는 위협으로 대응할 필요를 느꼈다. 지금까지 베이징의 평양에 대한 정책은 북한이 중국이나 베트남의 예를 따르도록 설득을 시도하는 것이었다. 즉, 스탈린주의 당이 권력을 유지하면서도 국가 소유 공장들을 사유화하고 외국 투자에 개방적으로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김정은은 이러한 생각에 그 아버지보다 더 개방적임이 드러났다. 경제의 30%~50%는 오늘날 사유화된 것으로 말해진다. 이렇게 사유화된 부분은 동유럽 국가들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의 경험으로 볼 때 당에 속하거나 당에 충성적인 무리들 그리고 군대 자체가 주로 소유함을 의미한다. 비록 이러한 사유화가 공식적이지는 않지만(어떤 법적 근거도 없기에 언제라도 번복될 수 있다), 경제의 몇 부문들을 더 효율적이게 만든것 같다. 백만명의 이용자를 가진 자체의 이동통신체계가 (한 이집트회사의 도움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베이징과 평양의 관계는 최근 몇년간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고 전자의 후자에 대한 영향력은 분명하게 약화되어왔다. 주요한 상충영역은 핵무기개발이다. 어느 정도 경제적 발전을 도모하라는 중국의 제안을 수용하는 대신 김정은은 그의 최우선 과제는 경제가 아니라“폭탄”이라고 늘 주장해 왔다. 그에게 폭탄은 정권의 생존을 보장하는 것이다. 일단 이것이 성취되고 나면 경제를 생각해 볼거라고 그는 말한다. 김의 폭탄은 그래서 중국 영향력의 한계의 상징일 뿐만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군사적 이해의 무게가 경제적 이해들보다 얼마나 더 큰지를 또한 보여준다.
중국은 블럭 지도자가 아니어서 북한에 어떤 “징계”도 부과할 수 없고 이점은 부가적인 요소를 첨가해서 여기서“각자 제홀로(every man for himself)”의 경향은 상황을 훨씬 더 예측불가능하게 만든다. 결국, 김정은과 그 군대는 미국이 핵충돌을 피하길 원한다는 판단하에 생존을 위해 폭탄을 가지고 도박을 하고 있고 반면, 그러한 계산은 자본주의 지배자들이 권력 유지를 위해서든 단순한 복수욕구 때문이든 지구의 초토화를 자행하고 결국 자신들 자체의 절멸 위험을 무릅쓰는 것을 막지 못해 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히틀러가 자신의 목숨이 다할 때까지 학살과 처형 명령을 주저했던가? 아사드는 통제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제 나라 대부분의 파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가?
극동에서 우리는 그래서 주요 라이벌들인 미국과 중국사이에 긴장이 첨예화되고 이 두 주도적 열강의 뒤에 러시아와 일본이 무리를 짓는 것을 본다. 그러나 이 주도적 열강들은 그들 뒤에 군사 블럭을 형성하지는 않는다. 일본과 남한은 북한과 중국에 대항해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보호 수준에 걸맞게 미국을 지지하지만 그들은 미국의 하인들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들의 운신의 여지를 찾는다. 남한과 일본도 특정 섬을 놓고 영토분쟁을 해오고 있다. 그동안 국내의 온갖 테러리스트들에 대항한 투쟁에서 미군의 지원에 의존하는 필리핀과 같이 과거에 미국을 지지했던 다른 나라들은 남지나해에서의 충돌에서 중국의 편을 들겠다고 위협했다. 투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서방국가의 무기대신에 러시아와 중국의 무기를 구매할 가능성을 내비쳐 오고 있다. 그리고 남한 내부에서도, 여전히 없어서는 안될 보디가드로 남아 있는 미국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한 지배 분파들의 무조건적 충성에 의지할 수 없다. 이 남한 지배 분파들의 몇몇은 미국의 장기판의 장기말 정도에 지나지 않음을 느끼고 있다.
남한 지배계급의 민족적 이해
남북한 모두 더 큰 라이벌들에 대해 중요한 완충 역할을 하기에 그 지역의 모든 제국주의적 도적들은 한반도의 분단을 유지하려 한다. 이것은 평양 정권에도 해당된다. 그런데 남한 지배계급은 통일을 늘 꿈꿔왔고 주기적으로 목표로 해왔다. 평양과의 협력 확대를 주창하는 소위 “햇볕 정책”은 최종적으로는 통일을 바라며 좀더 장기적 해결을 도모하려는 시도이다.
남한 지배계급 내부의 이러한 꿈은 1990년 독일의 통일 이후 더 강해졌다. 이 사건은 한반도의 통일을 세계정치의 현안에 올려놓으려는 남한의 열망에 힘을 실어주었다. 독일의 예를 따라서 남한 정치인들은 1970년 서독수상 빌리 브란트의 동독정책의 일종의 남한 버젼인 자신들의 “햇볕 정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목적은 남한에 대한 북한의 경제적 “인도적”의존성을 재통일의 준비 수단으로서 확립하는 것이었다. 남북한은 서로를 외교적으로 인정하고 1991년 9월 유엔의 회원국이 되었다. 그 3개월 후 그들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reconciliation, non-aggression, trade and collaboration)”합의를 체결했다. 이 합의서는 비록 평화협정은 아니였지만 남북한 두 나라 사이의 전쟁상태를 종결했다. 그 당시 남한정부가 지적했듯이, 남한이 요구해왔던 평화협정은 북한을 외교적으로 인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미국 때문에 이뤄질 수 없었다. 워싱턴의 이러한 태도는 “햇볕 정책”을 약화시켜서 결국 후임 대통령 김영삼은 당시 미국대통령 빌 클린턴의 도움을 받아 대북강경책으로 전환했다. 이 후자의 정책은 냉전중에 미국이 소련에 대항해 발전시킨 소위 캐넌 독트린(Kennan Doctrine)을 모델로 삼는다. 이는 적의 정권을 굴복시키기 위한 군사적 봉쇄와 경제적 목조르기를 내용으로 한다. 1994년 북한의 핵무기개발 시도에 대응하여 클린턴 미국대통령은 그 정권의 핵발전소시설에 대한 방어적 공격을 고려했다. 1994년 가을 제네바협정에서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북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강화했다. 그 결과로 생겨난 남북간 충돌의 악화는 1995년과 1998년 사이에 북한을 엄습한 심각한 굶주림에 기여했다. 이 재앙은 다시 햇볕 정책 지지자들이 권력에 새로이 도전하는데 이용되었다.
남한의 대기업 현대의 창업자 정주영은 1998년 소 천마리를 북한에 상징적으로 기증함으로써 남한정부의 북한경제 목조르기정책에 의문을 제기했다고 한다. 가장 열렬한 햇볕 정책 신봉자이고 이것을 기반으로 대선에 승리한 김대중은 2000년대 초 북한의 상대자 김정일(김정은의 아버지)을 만났다. 이 “역사적 정상회담”은 그 참여하기를 북한이 처음에는 꺼렸음에도 현대가 제공한 1억 8천 6백만 달러의 힘으로 그리고 남한 비밀 정보부의 도움으로 성사되었다. 이에 2004년 중요한 경제적 모험이 뒤따랐다. 중국을 모델로 하여 북한의 개성에 경제특구가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남한 기업들은 투자를 하고 북한 노동력을 값싸게 착취할 수 있었다. 그의 햇볕 정책으로 김대중은 노벨상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은 그와 그의 후임 노문현에게 남한의 라이벌과 미국의 반대를 초래했다.
북한은 남한에서 햇볕 정책이 늑의양양하게 귀환한 것에 분노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독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살펴보기만 하면 된다. 그곳에서 스탈린주의자들의 지배하에 있던 동독은 1990년 모조리 삼켜졌다. 그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스탈린주의자들은 동베를린에서 일어난 것처럼 자신들의 권력을 잃을 위험을 감수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들의 생명을 거는 것이었다. 서울의 좀 더 화해적인 접근도 그것이 곧 북한의 종말의 시작일 것임을 느끼는 평양의 스탈린주의자들의 두려움을 쓸어내버릴 수는 없었다. 북한 정권이 “협력을 통한 변화(transformation through cooperation)라는 남한측 정책을 지지할 것이라는 남한 햇볕 정책 주창자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햇볕 정책은 워싱턴으로부터 어떤 지지도 받지 않았다.
그러는 중간에 북한에 대해 더 강경한 노선을 택한 박근혜의 탄핵이 있은 후 현재 문재인이 2017이 정권을 넘겨받았다6. 문재인은 북한과의 대치보다는 대화와 협력을 원칙으로 하는“햇볕 정책”의 확고한 옹호자로서 권력에 도달했다. 그는 북한과 미국사이의 새로운 격화에 격분했다고 전해진다. 그는 적어도 초기에는 미국의 사드 미사일방어시스템을 남한에 배치한다는 도달드 트럼프의 결정(문 정부와 상의없이 이뤄진것이 분명한)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 결정은 탄핵된 전임 대통령인 박근혜 집권 당시 이미 계획된 단계였다. 현재의 충돌에서 도날드 트럼프의 편을 드는 대신에 서울의 정부는 처음에는 양측 모두에게 자제할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가장 최근의 핵무기 테스트와 위협들이 있은 뒤 문재인은 갑자기 미국 핵무기의 전개를 요구하고 사드와 같은 새로운 미사일 시스템의 남한내 배치를 관철했다. 또한 (지금까지 800km로 거리가 제한되어 있던)남한 미사일의 반경과 500kg의 운반용량은 상당히 증가될 예정이다. 이 모든 것은 그의 햇볕 정책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결론짓기는 어렵지만 그 정책을 확실히 위태롭게 한다.
노동자계급의 핵심역할
모든 나라들에서 지배계급은 노동자계급을 민족주의 영역에 묶어두려 애쓴다. 그러나 노동자계급은 그러한 함정으로 유혹당하기를 거부해야 한다. 진정, 북한의 노동자계급의 투쟁성과 의식을 가늠하기는 어렵다. 일상적인 감시과 테러에 직면해서 그 어떤 저항도 대대적이야만 할 것이고 국가와 군대 그리고 정치기구에 적접적으로 맞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현재 있을법 하지 않다. 게다가, 유엔 제재의 효과는 북한 정권을 질식시키지 않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을 강타할 것이다. 권력자들이 성공적인 미사일 테스트들을 환영할 때마다 노동자들과 농부들은 새로운 제재가 다가오고 있음을 그리고 그 댓가를 자신들이 치뤄야함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굶주림의 위험에 대해 권력자들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많은 무게가 남한과 중국의 노동자계급의 어깨에 놓여있다. 비록 수 십년간의 “반공산주의 캠페인”때문에 많은 노동자들의 공산주의에 대한 시각이 왜곡되어 있지만, 남한과 중국 노동자들은 지난 몇 십년 동안 전투적이고 대대적인 많은 투쟁들에 참여해 왔고, 이것은 자신들의 착취자들의 제국주의적 전쟁에 순순히 희생양이 되지는 않겠다는 한 표현이다. 그리고 노동자계급내의 저항이 그 어느 정도일 지언정 전쟁 몰이에 맞서려면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라는 노동자계급의 가장 오래된 원칙이자 슬로건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한국의 국제코뮤니스트전망(International Communist Perspective) 동지들이 쓰고 우리가 여기에 공개하는 국제주의자의 성명서를 지지한다.
우리는 이 성명서에 약간 비판적이다. 특히 사드 배치에 그 중점이 놓여있기에 자칫하면 이것은 단일한 사안 캠패인들이 마치 전쟁 기계의 요구들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이해를 방어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동등하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의식을 발전시길 수 있는 것은 이런 저런 무기체계에 대항한 캠패인에 의해서가 아니다. 혁명가들의 임무는 “민족적 단일성(national unity)”이라는 환상을 깨고 다른 나라의 노동자들과 진정한 연대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급의 요구들을 위한 투쟁들에 참여하면서 체제 전체의 난국을 폭로하는 것이다. 그런데 상이한 관점들은 국제주의자들 사이에서 논쟁되어야지 그들이 공유하는 원칙의 방어를 위해 협력하는 것을 막아서는 안될 것이다. 우리는 제 1차 대전 발발후 레닌과 로자 룩셈부르크가 제국주의 충돌에 대항해 함께 싸웠지만 민족문제에 대해서는 열띤 논쟁을 펼쳤음을 환기한다. 그래서 우리는 ICP 동지들과 이 지역에서 진정한 국제주의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과의 진정한 연대에 참여한다.
2017년 9월 18일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1노동자들은 한달에 이틀 쉬고 노예처럼 일해서 120-150달러정도를 받는다.
2“동구권 나라들에서 경제적 정체적 위기에 대한 테제“,"Theses on the economic and political crisis in the eastern countries" 을 참조
3지도자의 타이들 목록은 끝이 없다. "김정일의 호칭 목록" 을 참조
4파월 미국외무장관과 블레어영국수상 모두는 사담 후세인이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다고 경고했다. 그것은 “허위 뉴스”로 판명되지만 2003년 당시 이라크 침공의 빌미가 되었다.
6박근혜의 탄핵 이유들은 다층적이었다. 한편으로 그것은 “햇볕 정책파”와 “강경노선파”사이의 권력투쟁이었고 우리는 박근혜에 반대한 큰 시위물결의 배후에서 “햇볕정책파”도 어느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동시에 엄청난 부정부패에 관한 국민의 분노도 그녀의 종말에 기여했다. 어쨌든 이 모든 것은 민주주의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데 이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