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적인 차원의 분노
자본주의의 위기의 결과들은 세계인구의 절대다수에게 매우 혹독하다. 생활조건들이 악화되고, 실업은 점점 더 큰 양상을 띠고 그 지속기간 또한 길어저서, 최소한의 안정성도 기대할 수 없는 비정규직화가 점점 더 깊이 잠식하고 있다. 극도의 가난과 굶주림이 만연한다…
수백만의 사람들이 „안정적이고 정상적인“ 삶의 가능성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져가는 것을 근심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다. 이는 심각한 분노를 야기했고 수동성을 돌파하고 광장과 거리들을 점거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지난 5년 이래 극도로 첨예화된 위기의 원인들에 관한 문제들을 토론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그러한 분노는 은행가들과 정치가들 그리고 기타의 자본가계급 대표자들이 명백히 드러낸 오만과 소유욕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그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한층 더 격화되었다. 그러나 심각한 사회문제들에 대해 정부들이 보여준 무능력으로 인해서도. 그 정부들의 대책들은 어떤 해답도 제시하지 못한 채 오직 빈곤과 실업만을 심화시키고 있다.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국제적으로 확산되었다. 이는 사회주의적 정부가 최초의 혹독한 긴축정책을 펼치려 안간힘을 쓰던 스페인에서 시작되었다. 그런 다음 부채위기의 상징인 그리스에서, 세계자본주의의 전당인 미국에서, 근동의 가장 극심하고 가장 오랜 제국주의적 충돌의 두 인접국가들인 이집트와 이스라엘에서. 특히 이집트에서는 아랍의 봄이후 운동의 새로운 동력으로 작용했다.
이것이 세계적인 운동이라는 의식은, 민족주의의 파괴적인 무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와 이집트, 그리고 미국에서 국기를 흔들었던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널리 확산되었다. 스페인에서는 그리스 노동자들에 대한 연대가 다음과 같은 슬로건들로 표현되었다. „아테네여 견뎌라, 마드리드가 떨쳐 일어난다!“ 2011년 11월 미국 오클랜드에서 파업노동자들은 „전세계의 점거(Occupy)운동과의 연대“ 를 외쳤다. 이집트에서는 미국의 그 운동에 대한 카이로의 연대선언이 의결되었다. 이스라엘에서는 „네탄야후, 무바라크, 엘 아사드는 모두 똑같은 도당들“이라고 외쳐졌고 팔레스타인의 노동자들과 연락을 취했다.
현재로서는 이 투쟁들의 최절정이 지난 상태이다. 그리고 비록 새로운 투쟁들의 증후들이 스페인과 그리스와 멕시코등에서 있긴 하지만, 많은 이들은 다음과 같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러한 분노의 저항물결이 무슨 소용이 있었는가?“, „우리가 무언가를 얻었는가?“
이 운동의 긍정적인 측면들뿐만 아니라 약점과 한계 또한 알아보기 위해서 대차대조를 통한 결산을 해볼 필요가 있다.
„광장을 점거하자“ – 운동의 공통된 슬로건
그처럼 광범위하고 다양한 주도성들은, 자체의 이해를 모도하며 우리를 통제하는 환상과 혼란을 극복하려는 노력으로서 거리와 광장을 점거하는 것 같은 주도성들은 지난 30여년 이래 처음이었다.
‚패배한, 무관심하고 무기력한‘ 사람들로 표현되었던 이 사람들, 노동자들, 착취당하는 자들, ‚주도성을 발휘하고 무언가를 함께 이뤄내기에는 무능한‘ 그자들이 결집하고 공동으로 주도성을 발휘해서 이 체제의 일상성이 우리에게 부과한 수동성을 깨뜨릴 수 있었다.
이는 우리의 기운을 북돋웠고, 우리 자신의 능력들에 대한 자신감을 강화시켰다. 우리는 대중의 공동 행동이 발산하는 권력을 발견했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바꼈다. 공공의 주제들에 대한 정치가와 전문가와 „대지도자“들의 독점이 서서히, 스스로 발언하기를 원하는 수많은 무명인들에 의해 의문시되었다.(2)
확실히 이는 여전히 쉽게 부서져버릴 지 모르는 여린 출발점이다. 환상, 혼란, 기운의 불가피한 기복, 억압, 탄압력들과 자본주의 국가들이 우리를 유인하려는 위험한 함정들 (그 선두에 좌파정당과 노동조합들이 있는)은 반동과 쓰디쓴 패배를 야기할 것이다. 우리는 길고 험난한 길 앞에 서 있다. 난관으로 가득찬 하지만 승리의 보장이 없는. 그러나 우리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이미 첫번째 승리이다.
집회 – 운동의 심장
집회들은 단지 불만들을 표출하는 수동적인 태도에 스스로를 국한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집회들 속에서 조직한다는 능동적인 태도가 발전했다. 다양한 집회들은 1864년의 제 1 인터네셔널(국제노동자연합)의 주요이념, 즉, „노동자계급의 해방은 노동자들 스스로의 일이어야 한다 “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파리콤뮨과 더불어 시작되었고, 1905년과 1917년 러시아에서 그 최고조에 도달했으며 1918년 독일에서 그리고 1919년과 1956년 헝거리에서, 그런 다음 1980년 폴란드로 이어져 온 노동자계급의 이러한 전통이 계속된다.
총회와 노동자평의회는 노동자투쟁의 진정한 조직형식이며 새로운 사회 조직형식의 핵심이다.
총회들을 통해 우리는 대대적으로 결합하고, 우리를 임금노예제에 얽매고 있는 사슬들을 파괴하며, 파편화, 즉 „각자 제 살궁리만 하는 것“을 폐기하고, 제각각의 영역들이나 사회적 범주들의 게토 속으로의 고립을 극복하는 것을 도모할 수 있다.
총회들을 통해 우리는 공동으로 고민하고, 토론하며 결정하는 것을 도모할 수 있다. 이루어진 결정들에 대해 집단적으로 책임을 지며, 결정과 그 실행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다.
총회들을 통해 우리는 투쟁의 추진에 필수 불가결할 뿐만 아니라 미래의 계급과 착취없는 사회의 기둥 역할을 할 상호신뢰와 전반적인 공감과 연대를 만들어갈 수 있다.
2011년에 폭발적인 전정한 연대가 있었는데, 이는 지배계급이 설교하는 위선적이고 이기적인 „연대“와는 전혀 무관하다. 예를 들어, 마드리드에서는 체포된 사람들의 방면을 위하거나 경찰이 난민들을 체포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시위들이 있었다. 또한 스페인과 그리스 그리고 미국에서는 주거장소로부터의 강제이주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회합들이 있었다. 미국 켈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는, „파업집회에서 다른 작업장들로 파업파괴저지원파견이 결정했고, 직원들이나 학생들을 11월 2일의 총파업에 참가했다는 이유로 처벌한 작업장이나 대학을 점거할 것이 결정되었다. “ 또한, 비록 아주 간헐적이고 짧게 지속되긴 했어도, 모두가 같은 생각을 가진 동지들에 의해 지지되고 보호된다는 느낌을 함께 느꼈던 순간들이 있었고, 이는 불안감과 무방비상태와 가망없음이 지배적인 이 사회의 „정상적인 상태“와는 전적으로 정반대였다.
논쟁문화는 미래을 밝히는 능불
수백만의 노동자들이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필수적인 의식은 우리가 계몽된 지도자의 말을 귀기울여 듣거나 그의 지침들을 따른다고 해서 도달될 수 없다. 오히려 대대적인 논쟁에 의해 동반되고 또 그러한 논쟁으로 이끌어지는 투쟁들을 경험함으로써 발생한다. 예전의 투쟁경험이 참작되지만 또한 시선은 앞에 놓인 미래를 향하게 됨으로써 이뤄진다. 이는 스페인에서, „혁명없이는 어떤 미래도 없을 것이다“와 같은 슬로건들로 표현되었다.
논쟁문화, 상호존중과 경청에 기반한 공개토론은 총회 안에서 싹트기 시작할 뿐만 아니라 그 주변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동도서관과 소모임과 회합이 조직되기 시작했다. 많지 않은 기술적인 설비로 수많은 인문적 활동들이 크다란 즉흥적 창의력을 바탕으로 거리와 광장들에서 시작되었다. 총회들에서 그렇듯이 이는 노동자운동의 이전 경험들로의 재연결을 의미한다. „그렇게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지식열이 혁명 속에서 격렬하게 분출되어 나왔다. 스몰리대학으로부터만도 첫 6개월동안 매일 수톤에 달하는 몇 트럭의 책들이 지방으로 보내졌다. 러시아는 뜨거운 모래가 물을 빨아들이 듯이 물릴줄 모르게 모든 읽을 거리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삼키듯 읽힌 책들은 우화집들이 아니었다, 거짓된 역사책도 지루한 종교책도 아니였다, 풍기문란을 유발하는 소설책도 아니였다. 그것은 사회 및 경제 이론들, 철학서들, 톨스토이와 고골과 고리키의 책들이었다…“(존 리드,“ 세계를 뒤흔든 10일“, 제 1장)
„성공모델“을 위해 투쟁하는 듯하지만 자꾸 수백만번 실패하는 이 사회의 문화에 대해서, 지배 이데올로기와 매체가 우리에게 주입시키려드는 소외된 전형들과 위조에 대항해서, 수천의 사람들이 자체의 비판적이고 독립적인 척도를 제시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그들 스스로가 담지하는 전정한 민중문화를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이러면서 위기와 그 뿌리, 은행의 역할 등과 같은 주제들이 다뤄졌다. 마찬가지로 혁명에 대해서 토론되었는데, 이때 이 문제에 대한 모든 가능한 견해들이 출현했는데, 이는 많은 혼란들을 표현했다. 민주주의와 독재에 대해서도 논의되었다. 그렇게 해서 상호보완적인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출현했다. „그들은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지만 그것은 전혀 민주주의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독재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모른다.“ 계략과 거짓과 모호함, 즉 지배계급의 정치를 특징짓는 짓거리들의 세계와는 전혀 무관한, 다수의 진정한 정치가 시작되기 위한 최초의 발걸음이 내디뎌졌다. 이러한 접근법에서, 경제나 정치분야뿐만 아니라 환경파괴나 윤리, 문화, 교육, 건강부문등 우리와 관련된 모든 주제들이 모두 다뤄진다.
미래는 노동자계급의 손에 놓여있다
지금까지 서술된 것과 같은 2011년의 운동의 전개가 이 해를 희망의 시작의 해로 만든다면, 그렇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운동들의 매우 크다란 한계와 약점들을 인식하기 위해 진지하고 혜안적이며 비판적인 시선을 그 운동들에 던질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가 낡은 체계임을 그리고 „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본주의가 극복되어야 함“을 전세계의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인식하는 반면, 많은 이들은 여전히 자본주의를 한줌의 „악“ (가차없음, 금융상어, 비정한 독재자들 )으로 환원시킨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전체적으로 심원하게 변혁되어야만 하는 복잡한 사회관계망이다. 그 다양한 현상들 (금융, 투기, 정치경제계 지도자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혼돈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힘을 허비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모든 구멍들을 통해 휘몰아쳐 나오는 폭력(억압, 테러와 테러리즘, 윤리적 야만)이 마땅이 거부되어야 하지만, 이 체제가 오직 „시민들“의 평화로운 압력만으로 척결될 수 있을거라고 믿어서는 안된다. 소수일 수 밖에 없는 지배계급은 그들의 권력을 순순히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은 4년이나 5년마다 있는 선거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국가의 배후에 있다. 결코 지키지않을 공약을 내세우고 예고하지 않은 일들을 처리해버리는 정당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지배계급의 또 다른 기둥들은 기상을 저하시키기위해 노동자들을 동원하고 지배계급이 서명하라고 내놓는 모든 것에 서명하는 노조이다. 오직 대대적이고 집요하며 끈질긴 투쟁만이, 국가의 존재를 떠받치고 있는 억압수단을 파괴하는데 필수적인 힘을 착취받는 사람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 오직 그렇게만 그들은 스페인에서 항상 다시 등장하는 슬로건, „모든 권력을 총회로“를 실현할 수 있다.
비록 미국의 점거(occupy)운동에서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슬로건 „우리가 99%(상위의 소수 1%에 대비해서)“을 통해, 사람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깊은 계급격차들을 서서히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긴 할지라도, 그 저항운동 참가자 대부분은 스스로를 „자유롭고 평등한 시민들“이 사는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원하는 „ 아래로부터의 시민“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회는 계급들로 나누어져 있다. 한 편에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아무 것도 생산하지 않는 자본가계급이, 다른 한편에는 모든 것을 생산하지만 점점 더 빈곤해져가는 착취받는 계급, 노동자계급이 존재한다. 사회발전의 동력은 „대다수 시민의 결정“이라는 민주주의 놀음 (이 놀음은 오히려 지배계급의 독재를 은폐하고 정당화하는 가면에 다름 아님)이 아니다, 그것은 계급투쟁이다.
사회운동은 가장 중요한 착취받는 계급, 즉 노동자계급의 투쟁을 그 참조점으로 하여 수행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계급은 다 함께 사회의 주요한 부를 생산하고, 공장, 병원, 학교와 유치원, 대학들, 사무실, 항구, 건설산업, 운송 및 우편등 사회생활이 기능하도록 담보한다. 2011년의 몇몇 운동들에서 그 힘이 싹틈을 예감할 수 있었다. 이집트에서 분출해서 무바라크의 퇴진을 결과시킨 투쟁물결. 미국 켈리포니아의 오클랜드에서 점거자들은 총파업을 외쳤고, 항만이 마비되었으며 항구의 종사자들과 화물차운전자들에게 능동적인 지원이 요구되었다. 런던에서는 파업중의 전기기사들과 세인트 폴 성당의 점거자들이 공동의 행동을 위해 함께 모였다. 스페인에서는 광장 집회들에서 투쟁중인 특정 영역들을 단합시키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현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과 자본주의사회의 억압에 고통받는 사회계층들의 근본적 욕구들사이에는 어떤 대립도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은 결코 이기적인 운동이 아니라, 오히려 „엄청난 다수의 이해를 위한 엄청난 다수의 자립적인 운동“의 기초이다. (공산주의 선언, MEW, 제 4권, 472쪽)
현재의 운동은 2백년간의 노동자투쟁의 경험들을 비판적으로 평가하여 교훈을 얻음으로써 이전의 투쟁들과 해방시도들로부터 배울 수 있다. 그 길은 기나 길고 장해물로 가득차 있다. 그로부터 스페인에서 항상 다시 들리는 슬로건이 생겨났다. 즉, „우리가 천천히 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갈 길이 먼 것이다(No es que vamos despacio, es que vamos muy lejos)“ 우리는 집요하게 새로운 운동을 준비하기 위해서 어떤 염려나 두려움 없이 가능한한 광범위하고 깊이 있게 논쟁해야 한다. 오직 그렇게만이 자본주의와는 다른 새로운 사회를 위한 기초가 세워질 수 있다.
2012년 3월 12일
ICC
(1) 인터네셔널리뷰 148호의 글, „경제위기는 끝없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한 체계의 종말을 그리고 세로운 세계를 위한 토쟁을 고시한다“ 참조. 체계의 세계적 위기와 연관되어 후쿠시마사태는 인류가 직면한 거대한 위험들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2) 시사잡지 타임(The Times)이 „2011년의 인물“로 „분노한 자들“운동의 참가자들을 선택한 것은 시사하는 점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