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1월, 로자 룩셈부르크는 이미 1917년의 혁명 운동에서 교훈을 하나 얻었다 :
“혁명의 동기가 진보하려면, 프롤레타리아트와 사회주의의 승리가 꿈이 아니려면, 혁명적 노동자들은 그들의 전투적인 에너지를 활용하고 안내할 수 있는 선도적 유기체들을 만들어야 한다.”(로자 룩셈부르크,『붉은 깃발(Die Rote Fahne)』, 1918년 1월 14일)
이 교훈은, 안타깝게도 그 시기에는 실천으로 옮겨지지 못했지만,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유용하다. 우리는 이 교훈을 통해서, 오늘날 혁명가들의 선결과제는 명확한 정치적 지향을 제안하는 것이고, 또 모든 예비적 선전 작업을 통해서 그것을 준비하는 것임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독일 혁명가들이 스스로를 별도로 조직하는 것을 망설였던 것이 그들의 정치적 전망의 부족과 함께 했음을 보았다. 1919년 1월의 혁명가들은, 무장한 프롤레타리아들이 그들로부터 어떤 구체적인 제안을 기다리는 동안, 비공개 회의에서 끊임없이 토론했지만, 신속하게 즉각적인 전망을 결정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운동이 취해야 하는 전반적인 지향에 대해서 그들 스스로 혼란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이랬기 때문에, 그들은 운동의 최종 목표와 그 목표를 달성할 실천적인 수단들을 지속적으로 주장한다는 공산주의 전위의 본질적인 책임들 중 하나를 완수하지 못했다.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노동자계급당과 다음과 같은 지점에서만 구분된다.
1. 여러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의 다양한 국내 투쟁들에 있어서 국적에 상관없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적해내고 전면에 내세운다는 점에서,
2.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지 사이의 투쟁이 경과하는 다양한 발전 단계들에 있어서 항상 운동 전체의 이해를 대변한다는 점에서” (공산주의 선언)
공산주의자들에게, 프롤레타리아 운동을 혁명의 길로 안내한다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이고 국제적인 이해관계와 운동의 최종적 목표를 지속적으로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간단해 보이고, 사실 단순하지만, 실천에 옮기기 매우 어렵다.
그러나 어떤 혁명가들은 이 단순함을 불쾌한 속임수를 숨기는 것처럼 보인다며 불신한다. 그들의 눈에는 그러한 단순함은 손쉬운 탈출구가 될 뿐이며, 당의 고결한 책무에 대한 무지와 과소평가로 비춰질 뿐이다. 이 ‘단순함’에 좀 더 빛을 비추기 위해서, 그리고 당이 그 충만한 영광으로 둘러싸이게 하기 위해서, 그들은 당에 ‘지도자’ 또는 사령관의 역할을 주어야만 한다고 느낀다.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그들의 취향에는 너무 수동적인 책무인 것이다. 그들은 좀 더 멋지고, 좀 더 생동적인 어떤 것을 원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지향하도록(orientating)’하거나 ‘방향을 제시 한다’는 생각들과 거리가 먼, 혁명가들의 역할에 대한 잘못된 정치적 해석에 빠져버린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에서 명령하거나 지시한다는 의미에서 ‘지도하는 것(leading)’으로의 간단한 도약을 통해, 그들은 당의 활동들에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실제로는, 그들은 그런 종류의 것들을 전혀 하지 않는다.
혁명가 자신들을 마치 프롤레타리아 ‘군대’가 수동적으로 복종하고 추종해야 하는 장군처럼 만들어 버리게 되는 그런 책무를 혁명가들에게 부여하는 것은, 과거 혁명들의 오랜 도식들을 공산주의 혁명 속에 가져오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접근해서는 혁명가들은 어떤 실제적인 영향력도 가질 수 없게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앞서 보았듯이, 노동자들이 수동적으로 명령 (그들이 어떤 진영에 있든 간에)에 따르는 한, 이는 그들이 권력에 대한 준비가 되어있지 않고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대해 충분히 의식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계 자본주의는 우둔하고 복종적인 군대에 의해서가 아니라, 강력하고 단결된 계급에 의해, 신중하고 자신감 있는 계급에 의해 전복될 것이다. 혁명가들은 바로 이것을 위해 일해야 하지, 자신들을 영웅으로서 그리고 뛰어난 연설가로서 숭배되도록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의 역사적 기능은, 계급이 마치 군대인 것처럼 그리고 군대식으로 지휘하지만 그 최종 목표에 대해서도, 그 작전의 당면 목표들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전술의 종합적인 운동에 대해서도 무지한 참모본부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회주의 혁명은 군사 행동과 비교될 만한 것이 아니다. 그 실현은 노동자들이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함에 따라 그 자신들의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므로 당은 계급을 대신해서 행동하지 않는다. 당은, 그 단어의 부르주아적 의미에서의 ‘신임’- 즉, 사회의 운명을 결정하도록 위임받는 것- 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당의 유일한 역사적 기능은, 계급 스스로가 그 책무와 그 혁명적 행동의 기반이 되는 목적과 수단을 의식하게 되도록 활동하는 것이다.”(‘당의 본질과 기능에 대하여(on the Nature and Function of the Party)’, 『국제주의( Internationalisme)』, 38권, 1948년. 연구토론 회보 (Bulletin d'etude at de discussion) 6권에서 재판, 우리의 강조)
프롤레타리아 운동에 정치적 방향을 제시한다는 것은, 계급이 역사적으로 맡게 될 혁명적 지향을 의식하게 되도록 활동함을 의미한다. 이 책무를 수행하면서, 혁명가들은 결코 그 자신들의 중요성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이것이야말로 그들에게 진정한 근본적 중요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혁명의 승리를 유일하게 보장하는 것은 엄밀히 전체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를 의식하고 스스로를 조직하는 정확히 바로 그 역량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의 생생한 예가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무엇인가?
러시아 혁명은,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에게 외부에서 가져온 정치적 지도력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하사관 정도의 가치밖에 없는 자발적인 태도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들의 진행을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가 스스로의 역사적 이해관계를 의식하도록 만들기 위해 일했을 뿐임을 보여주었다. 혁명가들을 1917년의 ‘폭동분자들’이나 무자비한 독재자들로 묘사하는 부르주아 선전의 주장과는 대조적으로, 볼셰비키들은 권력 쟁취의 책무를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절대로 넘겨받지 않았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트를 대신해서 행동하도록 노동자들로부터 위임되지 않았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투표하라, 그러면 나머지는 우리가 처리하겠다!”와 같이 부르주아의 의미에서 노동자들의 신임을 얻지도 않았다. 볼셰비키들은 그들의 계급 속에서 물속의 물고기들처럼 살고 활동했다. 그들은 몇 개월, 아니 심지어 몇 년간 끈기 있게 설명하고 선전하고 선동하는 활동을 하고 투쟁의 마지막 목표를 끊임없이 주장 후에 이러한 일치단결을 벼려냈다. 이러한 일치단결은, 프롤레타리아트 내에 존재하는 요구와 구체적인 경향들에 대해 당이 더 일반적인 정치적 표현을 제공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리고 이러한 명확한 표현이 혁명의 과정을 결정했다.
이 경우에, 혁명 이론은 실천적인 힘이 될 수 있었고, 노동자들 전체를 설득할 수 있었다. 이것은 당이 제공하는 신비하고 마법 같은 어떤 조미료 덕분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명백하고 보편적인 용어로 노동자들의 실제 필요를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이론이 러시아의 프롤레타리아 사이에서 그러한 반향을 얻고, 볼셰비키 혁명가들이 자연스럽게 전투의 ‘선두’에 서게 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볼셰비키 혁명가들은 노동자들이 무엇을 혼란스러워하는지를 명료하게 표현했을 뿐이었다.
“선원 코린(Khorrin)은 그의 회고록에서, 스스로를 사회 혁명당 당원들(Social Revolutionaries)로 생각하는 뱃사람들이 어떻게 현실에서 볼셰비키 강령을 방어하려했는지 이야기한다. 이것은 어디서나 목격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지만, 어떻게 이름 붙여야 할 지 몰랐다.
어떻게 이러한 허약한 기구와 미미하게 배포된 당 출판물로, 볼셰비키의 생각과 슬로건이 사람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는가? 설명은 매우 간단하다 : 계급과 시대의 예리한 요구에 상응하는 이러한 슬로건들은 그들 자신을 향한 수천의 채널들을 만들어낸다. 붉게 달아오른 혁명적 매체는 사상의 뛰어난 전도체이다. 볼셰비키 신문들은 큰 소리로 읽혔고, 세세한 부분까지 읽혔다. 가장 중요한 기사는 외워졌고, 인용되고, 다시 복사 되었으며, 가능한 곳에선 어디든 다시 인쇄되었다. (…) 볼셰비즘의 성공에 대한 일상의 설명은 대중들의 욕구와 맞아떨어지는 ‘슬로건의 단순함’이란 표현으로 요약 설명되었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에서 그들의 요구뿐만 아니라, 그들의 필요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의 경험에 의해 인도되었다. 볼셰비즘은 대중의 독립적 경험에 대한 귀족주의적 냉소에 절대 오염되지 않았다. 반대로, 볼셰비키들은 이러한 경험을 그들의 출발점으로 삼고, 토대로 삼았다. 그것이 그들의 탁월함을 엿볼 수 있는 뛰어난 지점 중 하나였다.” (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2권)
그들 계급에 존재하는 필요를 명백하고 간단하게 표현하고, 투쟁들 경험에서 시작하며, 프롤레타리아트의 보편적이고 역사적인 열망을 참작하고, 운동에 방향을 제시하며 혁명적 경향들을 가속시킨다. 이런 일들이 바로, 혁명가들이 그들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이용하는 ‘신비스러운’ 수단들이다! 사실은 전혀 불가사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책무의 단순함은, 공산주의자는 계급의 의식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것 외의 다른 목적을 갖지 않는다는 점으로써 쉽게 설명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