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에 시작된 센카쿠 열도(열도는 대만의 북동쪽 약 200km, 일본 오키나와의 400km 남서쪽, 중국의 동쪽 대략 400km에 있다)를 둘러싼 분쟁은, 극동아시아 최대의 양국 간 적대적 야망과 긴장을 초래했다. 세계 최고의 인구를 갖고 있으면서 세계 2위의 경제력을 지닌 중국, 그리고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가진 일본, 두 나라는 서로 이 제도(諸島)를 둘러싼 긴장을 고조시키고, 자신들의 힘을 보여주기 위해 병력을 동원해왔다. 대만 또한 이 섬을 둘러싸고 일본과 충돌했다. 이것은 일본과 중국,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 전체에 있어서 분명히 심각한 문제다.
이 양 거두(巨頭)뿐만 아니라 대만도 이 제도(諸島)의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센카쿠 열도는 바위투성이로 거주 불가능한 땅임에도, 그 전략적 가치와 잠재적인 유전, 천연 가스원, 풍부한 어장의 존재가 이 제도의 영유권 주장을 결정적으로 강화시키고 있다.
중국 - 신흥 제국주의 대립
중국이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일본과 충돌하고 있는데, 이곳이 이웃 제국주의와 대립하고 있는 유일한 분쟁지대는 아니다. 최근의 경제 성장 이후, 중국은 점점 자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험을 안게 되었다. 자국 선박 수송의 80%가 센카쿠 열도 주변을 통과한다. 아시아에 있어 어떤 해협의 봉쇄도 중국을 심각하게 방해한다. 게다가 중국은 본토를 넘어 바다 건너까지, 특히 남중국해(South-China-Sea)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하려 하고 있다. 주요 경쟁자인 인도와 직면하게 된 중국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에 각각 전초 기지를 설치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다른 나라의 공격을 무릅쓰고 이란과 시리아를 지원해 왔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평화적인 경제발전을 바라는 한편 동시에 군사력 증강에 투자를 계속해 왔다. 유일한 초강대국인 미국은 이미 중국이 아시아에서 최대의 경쟁자라 인식하고, 군사적 중점을 동아시아로 옮기는 것을 결정했다. 미국은 2020년까지 해군력의 60%를 동아시아 지역에 배치할 예정이다.
게다가, 증대하는 자원 수요, 특히 에너지 자원 수요는 중국의 남중국해에서의 자원 탐사 및 채취권 주장을 하게 만들었다. 중국의 지금까지 남중국해에서의 대립과 이번 일본과의 센카쿠 열도를 둘러싼 대립은, 중국이 엄청나게 자원을 갈망할 뿐 아니라, 제국주의 서열(계층)의 재편성에 나선 것을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이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지배적인 역할을 끝내고, 자국 영토를 넘은 지역에서 이익을 방어하기 위한 세력이 되려 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일본, 중국의 대립은 극동아시아에 있어 증대하는 제국주의 국가 간 긴장의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일본: 자기 야심에 집착하는 쇠약해진 제국주의
일본은 지금까지 센카쿠 열도의 영유권을 주장해, 자신의 능력을 예전의 제국주의 역사 속에서 새롭게 찾아내려 하고 있다. 19세기 말에 이미 일본 자본은 대만, 동중국해 섬들 그리고 한국 침략의 야망을 품고 있었다. 현재 일본 정부는 1894년 센카쿠 열도 점령의 역사적 정당화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이 미 제국주의에 패배함에 따라 이 열도는 미국의 관리로 넘어갔지만 1972년 일본에 반환되었다. 물론 일본은 이 땅에 매장된 에너지 자원을 중국에 양도할 생각도 없고, 제국주의 서열을 바꿀 생각도 없다. 이 땅은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한다. 2차 세계대전 패배 후, 일본은 미국의 우산 아래 들어갔다. 격렬한 폭격(히로시마, 나가사키의 원폭 투하와 도쿄 다른 지역까지 공습) 후, 미국의 관리하에 놓였다. 일본은 외국에서의 충돌에 군사력 사용이 허용되지 않는 헌법을 제정할 것을 강요당했다.
하지만 1950년대 초 냉전 상황에서 일어난 한국 전쟁에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과의 대결 시 지원을 받기 위해, 일본의 재무장을 강요했다. 북한의 정기적인 일본, 미국, 한국에 대한 무력행사 협박과 중국의 증가한 힘 때문에, 일본은 스스로 모순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의 의존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북한과 중국의 군사적 위협에 대해서는 자국을 미국의 군사력의 아래 두고 싶은 것이다. 1989년 이래 일본은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약간의 행보를 시작했다. 자위대는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에서 최초의 ‘해외파병’을 경험했고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미국 주도의 전쟁에서 병참 일부를 담당했다. 일본은 인도, 베트남과 함께 말라카 해협과 남중국해에서의 군사 행동에 참가했다. 앞서 일본은 지부티(아프리카 북동부 아덴만 기슭에 있는 국가의 수도)에서 최초의 군사기지를 설립했다. 이 자위대는 최신 무기를 갖추고 있다. 중국군의 현대화와 확장은 일본에 군사력 투자를 한층 더 재촉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게 중국과 센카쿠 열도는 유일한 분쟁지역이 아니다. 일본은 한국과도, 일본이 1905년 한국으로부터 획득한 타케시마(독도)를 둘러싼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일본은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두려워하고 있고, 장래 일어날 수 있는 남북한 통일을 더욱 큰 위협이라고 느끼고 있다. 그렇다 해도, 일본은 중국 제국주의의 번창이 가장 큰 위협이라고 느끼고 있다. 역사적으로 일본과 중국은 이 지역에서 양대 제국으로서 대립해 왔다. 수년 동안 중국 대부분을 점령하고 수많은 국민을 학살한 처참한 전쟁을 감행한 일본에 대해, 중국의 지배계급은 항상 일본에 대한 복수의 애국주의적 감정을 이용했다. 이에 대해 일본 아베 내각은, 중국에 대해 더욱 공격적인 자세를 취한다고 밝혔다.
일본, 중국 간의 긴장의 고조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갈등에 기름을 붓는 격이며, 양국과 그 동맹국이 대립하고 있는 다른 지역에서의 긴장을 한층 더 발전시킨다. 아시아 양대 강국의 경쟁은 전 세계로 번지게 될 것이다!
민족주의적 견제에 머물지 않는 중국과 일본의 충돌
일부의 경우, 특히 2012년 가을, 중국의 일부 도시에서, 센카쿠 열도에서의 일본 군사력에 대해, 일본계 상점을 불태우거나, 일본계 기업의 공장을 공격하는 등의 항의가 있었다. 중국 정부는 분명히 이러한 시위를 환영하고, 아마도 직접 조직까지 했을 것이다. 다른 정권과 같이 중국 정부도 경제 성장 문제, 환경 오염, 지배 세력의 부정부패에 대한 분노 등 심각한 사회 문제로부터 사람들의 눈을 돌리는 것에 집중했다. 당국이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폭동’의 회수는 지난 몇 년간 증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이러한 항의를 국수주의-애국주의의 틀로 왜곡시키고 있다. 일본과의 충돌은 사람들을 국가에 재결집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중국은 지난 몇 년 동안 세련된 애국 선전을 젊은 세대의 머리에 주입해 왔다. 오랜 세월 불황에 고통받고, 후쿠시마 재해와 쓰나미의 참극에 직면한 일본 정부도 똑같이 사람들을 민족주의로 끌어들여, 국가 아래 단결시키고 싶어했다. 확실히 지배세력이 이러한 항의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지만, 이 대립을 단순히 경제, 사회, 환경 문제로부터 눈을 돌리게 하기 위한 민족주의의 책략이라고 보는 것은 위험하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최대의 양국이 센카쿠 열도를 둘러싸고 충돌해, 미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이 분쟁에서 적과 아군을 정하는 과정에 들어가면, 제국주의 국가 간의 긴장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 전체로 퍼질 것이다.
양국 모두 서로의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상태에서, 앞서 말한 충돌 때문에 교역이 심각하게 감소했는데, 왜 지배자들은 ‘이성적’으로 민족주의 경향을 억제하려 하지 않는 것일까. 그렇다면 원래 지배자들은 ‘이성적’인가? 사실 군국주의는 자본주의의 불치병이다. 자본주의는 일개 국가의 힘보다 훨씬 강력하다. 자본주의는 평화적으로 경제 경쟁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자본주의 시스템은 인류를 점점 야만스럽게 만드는 전쟁으로 끌어들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주요 전장은 유럽이었다. 아시아는 이 시점에 아직 전장에서 약간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아시아의 광대한 지역이 주요 전쟁터가 되어, 몇 천만의 생명을 앗아갔다. 베트남 전쟁에 앞선 한국 전쟁은, 1950년대 가장 처참한 대립의 하나였다. 소련의 붕괴와 미 제국주의의 쇠퇴에 따라, 중국 제국주의가 영향력을 얻어 아시아의 제국주의 경쟁에 도전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아시아에서의 중국의 경쟁자들(일본, 한국, 베트남, 필리핀, 인도 등)은 중국의 세력 확대를 막기 위해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바라고 있다. 중국, 일본의 최근 충돌은 이 지역 전체로 확대되는 일련의 긴장의 가운데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우리는 정부의 민족주의적 정책에 따라 대량 학살에 대비해야 할까? 아니,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민족주의, 국수주의, 애국주의는 프롤레타리아의 무덤이다. 극복할 수 없는 경제위기, 끝없는 전쟁으로 가는 길, 배타주의, 노동자계급의 빈곤화, 지구환경 파괴 등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민족주의로는 해결할 수 없다. 민족주의의 함정에 빠지면 인류는 도태될 것이다. 20세기에만 2억 명이 끝없는 일련의 전쟁 때문에 살해되었다. 이 사회가 현재의 생산양식으로부터 벗어나는 것만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우리를 야만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 계급, 특히 젊은 세대의 노동자 계급이 각 나라의 사회운동에 보내야 할 메시지다. 일본에서는 후쿠시마 참사에 대한 수많은 항의가 있었고, 경제위기의 참상에 대한 분노도 늘어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믿기 어려운 끔찍한 착취와 무서운 환경오염에 대한 수많은 노동자 파업이 일어나고 있다.
아랍의 봄, 스페인, 미국, 그리스, 방글라데시 등, 높은 실업률, 빈민화와 직장에서 증가하는 중압에 시달리는 노동자 계급이 많은 나라에서는, 국가 아래 단결하는 민족주의가 아니라 계급투쟁이 해결책이다. 우리는 이 위기와 야만을, ‘외국의 경쟁 상대’가 소유한 상점이나 공장을 불태우거나, 외국 경쟁사들의 상품 불매를 호소하거나 구매를 제한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없다.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계급 대 계급으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우리의 슬로건은 언제나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이다!
제1차 대전이라는 대살육을 노동자 계급이 끝낼 수 있던 것은 이러한 입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 노동자의 단결을 호소한- 레닌, 리프크네히트, 룩셈부르크와 주위의 혁명가들은 국제주의의 입장을 지켰다. 공장과 전선에 있는 노동자들을 고무시키고, 마침내 혁명적 봉기로 제1차 세계 대전을 종결로 이끈 것은, 강고한 국제주의 입장이었다. 1937년의 중일 전쟁 당시 소규모 좌익 공산주의 그룹 <빌랑(Bilan)>의 국제주의자들은 이러한 입장을 지켜냈다.
“이 전선의 양측에는 노동자를 학살하는 것이 목적인 탐욕스러운 지배적 부르주아가 있다. 이 전선의 양측에는 대학살을 한 노동자들이 있다. 이것은 잘못이다. 노동자들이 혁명투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먼저 제국주의 일본을 타도해야 한다는 생각에, 중국의 노동자와 잠시라도 함께 ‘싸우는’ 부르주아가 있다고 믿는 것은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 제국주의는 어느 장소든지 확장하며 중국은 다른 제국주의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는다. 혁명적 투쟁을 위해서는 중국과 일본의 노동자들이 계급 단결을 가져올 수 있는 계급투쟁에 돌아와야 한다. 그들의 동맹은, 착취자들에 대한 동시적 공격을 공고히 할 것이다. ( … ) 국제 공산주의 좌익분파만이 수많은 배신자, 기회주의자에 대항하여 혁명투쟁의 깃발을 높게 내걸 수 있다. 이러한 세력만이 아시아에서 아비규환을 가져온 제국주의 전쟁에서 착취자에 대한 노동자의 인민 전쟁 - 중국과 일본 노동자의 단결, ‘국가전쟁’의 전선 파괴, 국민당에 대한 투쟁,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투쟁, 노동자를 제국주의 전쟁으로 동원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투쟁 - 으로 전환할 수 있다.” (이탈리아의 좌파 잡지 <빌랑 (Bilan)> 제44호, October 1937, p1415)
우리는 이러한 국제주의자의 전통을 이어 민족주의의 감옥으로부터 빠져나가야 한다. 오늘날 노동자들이 서로 소통하고, 국제주의자들 사이에 연계를 놓고, 세계 곳곳에서 국제주의자들의 공통 입장을 지키기 위한 필요조건이 창출되고 있다. 지배자들이 검열, 인터넷 검열, 탄압, 국경 폐쇄 등의 어떠한 수단을 이용한다 해도- 우리는 노동자의 단결을 위해 계속 나아갈 것이다.
중국, 일본의 지배자들이 특히 젊은 세대를 민족주의 유혹에 빠트리려 하는 가운데, 우리는 확고한 우리의 대안- 계급투쟁- 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지배자들 간에 매일 협박하고, 똑같이 전쟁 선전을 부추기는 북한과 한국의 노동자와 전 세계 노동자계급에 중요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