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처음으로 한 사회 계급이 자신들의 운명의 고삐를 쥐게 만들 혁명의 성숙과정에 혁명가들이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들의 역할은 훨씬 더 근본적이다. 인류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떠날 준비가 되었으며,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프롤레타리아트는 기적 같지만 사실은 필수적인 역사적 단계일 뿐인 혁명을 수행하기 위해서 오직 그 조직과 의식으로부터만 충분한 힘을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사회의 지배적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가 그들의 역사적 책무에 대해 의식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것이 혁명가들의 참여와 개입이 지극히 필요한 이유이다. 혁명가들은 그러한 의식의 균질화를 목표로 행동한다. 그리고 혁명가들이 그들 계급 외부의 관찰자, 구경꾼이 아니라 생동하는 계급의 일부로서 진화하는 이유는, 바로 계급의식이 이론과 실천 사이에, 경제투쟁과 정치투쟁 사이에 분리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계급의식은 그 힘을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활력에서 받는다. 그것은 사상의 전문가들, 철학자들, 그리고 그와 비슷한 시늉을 하는 원숭이 같은 사람들을 필요로 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의식적이고 혁명적인 계급으로서 스스로에 대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생동적이고 집단적인 긍정이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좀 더 명확히 하려는 시도에서, 혁명가들의 개입을 프롤레타리아 의식 발전과 공산주의 혁명이라는 전반적인 틀 속에 위치시켰다. 그러나 이러한 개입의 객관적인 토대는 정적인 것이 아니다. 역사적 시기와 그 역동성에는 진화가 있다. 혁명이 언제나 의제(agenda)인 것은 아니고, 계급 간 역량 균형이 항상 사회적 상대자들 중의 하나 또는 다른 하나에 유리하게 되는 것도 아니며, 계급투쟁은 전진과 후퇴를 경험한다. 그러므로 혁명가들은 그것이 어떤 시기이든 간에, 그 역할을 다 하기 위해 언제나 동일한 힘을 들이는 것이 아니며, 계급이 언제나 동일한 반향을 보일 것이라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혁명가들이 그 시기를 분석하는 것은 근본적인 일로서, 이러한 분석을 통해서 그들의 활동 목적들이 정확히 평가될 수 있어야 한다. 계급 내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갖는 공산주의당과, 반혁명 시기로부터 교훈을 뽑아내는 좌익 분파 사이에는 하나의 진화 과정 전체가 놓여 있다. 혁명적 과업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그 순간의 객관적인 조건들과 계급투쟁의 수준이다. 혁명가들은 경험주의적으로 되지 않으면서, 유물론적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자발주의에 빠져들지 않는 한,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속일 수 없다. 혁명가들이 해야 할 일은 나타나는 혁명적 경향들을 가속화시키는 것이며, 권력 쟁취를 위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주관적인 준비를 강화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에 살고 있으며, 지금 혁명가들의 책무는 무엇인가?

이 의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최근 몇 해 동안 일어난 노동자들의 투쟁들에 대해 연구해야만 한다. 그 투쟁들의 생명력과 전투성은 1960년대 말 이래의 변화를 수천마디의 말보다 더 잘 확인해 준다. 재건 시기(the reconstruction period)는 이 기간 동안 막을 내렸다. 위기는 이 자본주의 체제가 부패하고 노쇠한 체제라는 슬픈 현실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상기시킨다. 생존 조건의 점진적인 악화는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내핍을 거부하고, 다시 한 번 투쟁의 길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50여 년 간의 잔혹한 반혁명 이후, 역사의 방향은 다시 한 번 혁명을 향하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다른 전투들은 자본의 전쟁기계의 작동을 가로막는 수많은 장해물들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틀 안에서 우리는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최종의 목표에 대한 의식을 획득하려 시도하면서, 많은 그룹들, 조직들, 써클 등이 출현하는 것을 보았다.

ICC1968년에서 73년 사이의 계급투쟁의 물결의 최절정점에 형성되었다. 그러나 그 물결의 하강 동안에 ICC는 정치적으로 조직적으로 강화되었다. 혁명을 향한 역사적 진행에 있어서, 노동자들의 전투성의 상승 운동은 기계적으로 일직선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계급투쟁은 생동적인 과정으로서, 상승과 하강, 밀물과 썰물을 겪는다. 사회 투쟁이 상대적으로 조용한 1974년에서 78년의 기간 동안, ICC는 두 가지 근본적인 목표를 스스로의 장기적 전망 속에 설정했다.

- 투쟁들과 정치적 환경에 체계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성장에 기여한다.

- 당의 건설을 준비한다.

 

계급의식의 발전에의 공헌

 

“1968년부터, 계급투쟁은 다양한 시기에, 특히 이탈리아, 폴란드, 스페인에서 높은 수준의 전투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투쟁들은 그들의 계획을 부르주아지가 너무 쉽게 방해하고, 쟁점을 흐리고, 결국 패배시키는데 성공한 것으로도 주목할 만 했다. 어떤 때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좌파에 직접적으로 대결하기도 했지만 (1969년 이탈리아, 1974년 포르투갈), 지난 몇 년 동안의 계급투쟁의 진화에서 더 충격적인 것은, 자본주의가 초반에 잃었던 영역을 재정복해나가는 그 거대한 역량이다. 이러한 상황은, 자본주의의 심화되는 위기의 영향에 대항한 노동자들의 방어적 투쟁을 발전시킴으로써만 극복될 수 있다. 바로 이런 과정 속에서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투쟁의 무기를 연마하는 만큼 부르주아지의 권력은 점차적으로 약해지게 될 것이다. 현재 경제적 위기의 심화에 대한 반응으로서 존재하는, 계급의식 발전에 있어서의 지연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임무가 숙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음을 선고하는 것이 아니다. 전반적인 전망으로 남아있는 것은 계급 전쟁이지, 제국주의 전쟁이 아니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트 내의 의식의 현재 수준을, 혁명적 시기에 프롤레타리아트가 이해할 필요가 있게 될 그 수준과 비교해 보면, 최종적인 혁명적 대결을 향한 길 위에서 노동자들이 아직 얼마나 먼 거리를 더 가야만 하는지를 보게 된다.”(C.G. ‘혁명가의 책무’, WR18)

 

이것이 혁명가들이 현재 그들의 개입을 그려볼 수 있는 전반적인 틀이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성장에 참여하는 것은 오늘날 주요한 과업으로 되었다. 1978년에서 79년부터 노동자계급은 그들의 적을 정면으로 대항할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더더욱 그러하다. 충돌은 매우 폭력적인 것이 될 것이다. 그것이 부르주아지의 권력을 전복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계급들 사이에서 첫 대결의 시기에 있다), 그 충돌은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최근 북부 프랑스의 파업과 폭력적인 시위, 영국, 미국, 폴란드, 독일, 볼리비아, 모로코 등의 파업은, 1974년에서 78년까지 썰물의 끝과 노동자들의 전투성의 새로운 폭발을 보여주는 좋은 지표이다.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정치적 위기의 심화, 좌파 정당과 노동조합의 영향력의 부식은 투쟁의 부활을 위한 매우 환영할 만한 토대이다.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사회적 토대, 그리고 그 가치와 이데올로기적 거짓말들은 뿌리까지 썩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의 눈먼 법칙들과는 대조적으로, 노동자들의 투쟁은 그 진화를 의식적으로 도달하려는 경향이 있다. 위기가 노동자들의 분노를 날카롭게 하고, 노동자들을 자극하여 비참함, 내핍, 실업의 증가를 거부하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위기의 심화와 계급투쟁 사이의 연결은 기계적이지 않다. 현재의 파업 운동은 새로운 퇴조를 볼지도 모른다. 노동자들은, 그들의 앞에 아무런 전망도 볼 수 없기에 낙심하게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 순간부터 부르주아지는 반격에 들어가서, 노동자들의 저항을 격퇴하고, 투쟁을 무장 해제시켜, 종국에는 모든 형태의 저항들을 부숴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면 아마도 그 진로는 위험하게도 제국주의 전쟁을 향하여 전환될지도 모른다.

혁명가들의 개입이 과소평가되고 지연돼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과거의 경험들로부터 교훈들을 얻어낼 수 있어야 한다. 미래 투쟁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전반적인 정치적 전망을 설정해야 한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스스로 혁명적 조직으로 무장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책무를 수행하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지연된다면 계급 대결을 향한 현재의 진로를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 현재 노동자 투쟁의 부활과, 위기와 계급의식의 수준 사이의 지속된 틈은, 혁명가들이 점점 더 직접적으로 계급의 전투에 참여하는 것을 요구한다.

 

당의 건설을 위한 준비

 

지금, 공산주의 그룹의 본질적인 목표 중 하나는 일반적으로 정치 투쟁의 첫 단계의 특징, 즉 활동과 조직의 ‘수공업적’ 수준을 극복하는 것이어야만 한다. 출판, 배포, 토론, 다른 그룹들과 개인들과의 교류와 같은 임무들을 꾸준하게 수행하는 것이 그 관심사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 말은, 조직이 분산된 세포들의 단순한 합으로서가 아니라 마치 균형 잡힌 물질대사를 이루는 단일한 실체로서 행동할 수 있도록 해 주는 특별한 기관과 운영 규칙들이 필요함을 의미한다. (…) 그러나 혁명가들의 조직화를 강화하는 데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측면은 현재 세계에 존재하는 취약한 공산주의 세력을 재편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그들은 중대한 계급 대결을 뿔뿔이 흩어져 분산된 채 직면하지 않을 수 있게 된다.”

(C.G. ‘혁명가의 책무’ 『WR19)

 

1968년 투쟁의 부활은 공산주의 사상들에 대한 새로워진 관심과, 혁명 그룹, 요소들, 조직들의 출현을 특징으로 한다. 이들 인자들의 분산과 혼란에 직면하여, 가장 명확한 조직들의 역할은, 일관된 국제적인 재조직의 기둥을 구축하는 것, 혁명적 에너지의 재규합을 위한 중심을 강화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다른 공산주의 그룹과 조직 간의 공개적이고 우애적 토론을 견지하는 맥락이다.

국제대회의 조직은 이러한 견지에 부합한다. 오늘날 우리는 국제적인 당을 건설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부터 이미 우리는 이러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혁명가들이 계급에 더욱 더 체계적으로 개입하고, 세계 공산주의당을 건설할 준비를 할 객관적인 필요성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맑스가 이야기했듯이, “인류는 오직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과제만을 설정하며,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그 과제의 실현을 위한 물질적인 조건들이 완전히 형성되어 있거나 형성되고 있는 중인 곳에서 그러한 과제들이 출현함을 본다.” 오늘날, 공산주의 혁명의 객관적인 조건은 다시 한 번 성숙했다. 1차 세계 대전은 공산주의 혁명을 위한 역사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1968년 이래, 혁명을 위한 객관적인 조건들이 제기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전쟁이냐 혁명이냐’, ‘사회주의냐 야만주의의 심화냐’의 양자택일로 불가피하게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화의 과정에서 운명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사회주의가 역사적인 필요성(necessity)임에도 불구하고, 부르주아 사회의 쇠퇴 때문에, 사회주의 혁명은 모든 순간에 구체적인 가능성(possibility)인 것은 아니다. 오랜 기간의 반혁명 동안, 프롤레타리아트는 패배했으며, 그 의식과 조직화는 그것이 사회에서 자체적인 세력이 되기에 너무 약했다.

한편 오늘날은 역사의 과정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부흥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나 시간의 압박을 받으며, 역사에 숙명이란 없다. 역사적 과정은 결코 모든 시기에 대해 고정된 ‘정적인’ 것이 아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으로의 길은 하나의 열린 가능성이며, 계급 대결로 이끄는 조건의 성숙이다. 그러나 만약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전투성을 발전시키지 않는다면, 그리고 자신들의 투쟁 속에서 그리고 혁명가들의 계급 내에서의 공헌을 통해 연마된 의식으로써 스스로 무장하지 않는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성숙에 대해 그 자신의 창조적이고 혁명적인 활동으로써 응답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프롤레타리아가 패배한다면, 분쇄되어 다시 수동성으로 빠져버리고 만다면, 역사는 역전되어, 보편화된 전쟁(generalized war)의 항상적 잠재성이 실현될 것이다.

오늘날, 역사의 진로는 계급투쟁의 발전을 향하고 있다. 왜냐하면 노동자계급은 패배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전 세계에서 생존 조건의 악화에 저항하고 있기 때문이고, 국제 경제 위기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를 그리고 그것이 계급에 대해 가진 영향을 마멸시키고 있기 때문이며, 노동자계급은 유혈적인 반혁명의 ‘죽음은 계속 된다’라는 외침에 저항하는 생명의 힘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이유들에서, 우리는 자본주의 쇠퇴기에서 두 번째로 역사의 문을 연 위기에게 인사를 한다.”

(J.A. ‘역사의 진로(The course of History)’, IR15)

 

이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혁명가들이 세계적 수준에서 개입하고 재규합될 것을 주장한다. 우리는 거대한 책임을 갖고 있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서, 헛된 분쟁이나 종파주의자의 저주에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일이 없이, 토론을 자극해야 한다. 남은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으며, 부르주아지의 무기는 날카로워지고 있다. 노동조합의 감옥, 지역주의, 민족주의 (…) 피해야 할 수많은 함정들이 있으며, 찢어버려야 할 수많은 신비화의 껍데기가 있다.

오직 혁명가들의 국제적인 개입만이, 오늘날부터 신비화의 껍질을 벗기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으며, 노동자 투쟁의 명확한 전망을 밝힐 수 있다. 오직 공산주의 세력의 재편만이 공산주의 혁명의 성공의 필수적인 기구인 혁명적 프롤레타리아 당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동지들, 우리는 우리가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는 지점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맑스로 되돌아왔으며, 그의 깃발 아래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강령에서 선언 합니다 : 프롤레타리아에게 사회주의를 진실로, 사실로 만들며, 자본주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파괴하는 것 외에 더욱 긴급한 일은 없습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더 이상 자본주의가 제공하는 조건 아래서 살 수 없기 때문만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계급적 의무를 수행하지 않거나, 사회주의를 실현하지 못하면 소멸한다는 위협을 받아왔기 때문에, 사회주의는 필수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로자 룩셈부르크, 『우리의 강령과 정치적 상황』 KPD(LS) 창립대회, 1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