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제이 정유소의 건설노동자 투쟁으로 시발된 비공인파업의 물결은 지난 20년래 영국의 가장 중요한 노동자투쟁들 중의 하나였다. 다른 정유소들과 발전소들의 노동자들 수천명이 연대파업에 들어갔고 대중집회들이 정기적으로 열렸다. 일자리를 잃은 건설-, 철강- 항만노동자들 그리고 여타의 노동자들이 파업대오에 가담해서 여러 발전소와 정유소 밖에서 시위를 벌였다. 노동자들이 파업중인 동료노동자들에게 연대감을, 그리고 부풀어오르는 실업률과 그 대응에 있어서 무능력한 정부에 분노를 드러낼때, 그들은 그것이 불법적 방법이라해서 꺼리지는 않았다. 200명의폴란드인 건설노동자들이 투쟁에 가담하자, 줄곧 그 운동에 그늘을 드리웠던 민족주의가 정면으로 문제시되면서 그 운동은 절정에 이러렀다.
린제이 정유소에서 시간제노동자 300명이 해고되고, 다른 하청업자가 그 위탁을 인수하여 300명의 이탈리아와 포르투갈 출신의 노동자들(더 나쁜 작업조건과 더 낮은 임금을 받는)을 투입되어야 할거라는 제안이 이뤄지고, 이 하청직에는 어떤 영국인 노동자도 투입되지 않을 거라는 점이 알려지자 건설노동자들의 불만의 화약고는 폭발하고 말았다. 이미 수년전부터 점점 더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영국으로 유입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더 낮은 임금과 더 나쁜 작업조건을 가졌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 사이에서 일자리를 놓고 벌이는 경쟁이 치열해지고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작업조건이 악화되었다. 이는 경제위기로 인해 건설부문과 여타 부분들에서 생겨난 해고의 물결과 함께 투쟁태세를 깊히 일깨웠고 이는 이제 이러한 투쟁들에서 나타나고 있다.
처음부터 이 운동은 파업중인 노동자들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노동자계급 전체에 해당되는 하나의 근본적인 질문앞에 서 있었다. 즉, 우리는 스스로를 „영국인 노동자“로 여기고 „외국인 노동자“에게 반감을 가지면서 실업과 여타의 공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가, 그게 아니라 우리는 어느 나라 출신이든간에 모든 다른 노동자들과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는 노동자로서 스스로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라는 물음이 그것이다. 이는 이운동이 짚고 넘어가야할 철저히 정치적인 문제이다.
처음부터 그 투쟁들은 민족주의에 의해 지배당하는 듯 했다.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 노동자에게“와 같은 구호를 담은 직접 만든 프래카드를 든 노동자들의 사진들이 보여졌고, 더 전문적으로 제작된 노조의 프래카드들도 동일한 요구들을 담고 있었다. 공식적인 노조대표자들은 다소 공공연하게 이러한 요구를 했고, 언론들은 외국인 노동자반대투쟁에 대해 떠들면서, 이러한 의견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을 보여주었다. 노동자들이 서로에 대항해서 투쟁하고 대대적으로 민족주의적 요구사항들을 옹호했다면, 얼마되지 않은 일자리를 영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고, 그래서 이탈리아인, 포르투갈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어야한다고 요구했다면, 이 비공인파업 운동은 잠재적으로 민족주의에 의해 익사당한 채 노동자계급에게는 하나의 패배로 끝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노동자계급 전체의 방어투쟁력은 약화되고 지배계급에게는 노동자계급을 더 날카롭게 공격하고 분열시키기가 그 만큼 더 손쉽게 여져졌을 것이다.
언론의 보도를 접하고 (그리고 몇몇 노동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린제이의 요구들이 정말로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 노동자에게“였다고 쉽게 믿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것이었다. 총회에서 토론되고 표결된 요구사항들은 결코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았고, 외국인 노동력에 대한 적대감도 없었다. 언론들이 이점을 „놓친 것“은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들은 고용주가 노동자들 사이를 갈라놓지 못하게 하지만 민족주의를 공공연하게 드러내지는 않는 노조의 역량에 대한 환상을 표현했다. 하지만 언론에 의해 조성된 전반적인 인상으로는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 반대하는 듯 하였다.
민족주의의 지속적인 무게
민족주의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본질적인 일부분이다. 각 민족의 자본계급은 경제적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 그들의 경쟁자들과 경쟁함으로써만 생존할 수 있다. 그들의 문화, 언론, 교육, 오락 및 스포츠산업들은 노동자계급을 민족국가에 묶어 두기 위해서 항상 이러한 독을 퍼뜨린다. 노동자계급은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이 운동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점은 이 운동이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물질적 이해관계를 방어하기 위한 투쟁 속에서 그 문제와 씨름하게 되면서 민족주의의 무게가 도전받고 있음을 보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일자리는 영국인 노동자에게“라는 민족주의적 슬로건은 고든 브라운이 영국민족당(British National Party)로부터 도용한 것으로서 파업노동자들과 계급에게서 많은 불편한 심기를 불러 일으켰다. 많은 파업자들은 자신들이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고 BNP를 지지하지도 않음을 분명히 했다. 노동자들을 주도하기 위해서 투쟁에 개입하려던 BNP의 시도들을 노동자들은 대부분 내쫓아 버렸다.
BNP를 거부하는 한편, 텔레비젼에서 인터뷰를 했던 많은 노동자들은 그들의 투쟁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려 분명하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해 반대하지 않았고, 그 자신들도 외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었지만 이제 실업자거나 자신들의 아이들이 일자리를 얻기를 바랬다. 그래서 일자리는 먼저 ‚영국인’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고 느꼈다. 그러한 시각들은 여전히 ‚영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공동의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 것으로 결국 바라보았고 그래서 민족주의에 사로잡혀 있긴 하지만, 반성의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분명한 징표였다.
다른 한편으로, 다른 노동자들은 결연히 노동자들 사이의 공동의 이해관계를 강조했고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모든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얻을 기회라고 말했다. „나는 2주전에 부두에서 하역인부자리를 잃었다. 커디프와 배리항만에서 11년간 일했는데, 우리가 정부를 뒤흔들 수 있을거라는 희망으로 나는 오늘 여기에 왔다. 모든 영국 산업을 잃고 있는 마당에 온 나라가 파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반감이 없다. 그들이 일거리가 있는 곳으로 찾아간다고 해서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가 없다.“ (가디언 온라인, 2009년 1월 20일). 민족주의가 진정한 위험이라고 주장하는 노동자들도 있었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는 민족적인 분할을 이용하는 고용주들에 대해 건설노동자들의 웹포럼에서 경고했다. „민족주의적 요소들을 휘저어대는 동조적 언론들은 그다음 당신들을 겨냥해서 시위자들을 가능한한 나쁘게 묘사할 것이다 . 게임은 끝이다. 고용주들과 정부가 가장 바라지 않은 것은 영국인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들과 단결하는 것이다. 그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놓고 서로 싸우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 다는 것을 확인하면 그들은 등줄이 서늘해질 것이다. “ 그리고 다른 글에서 그는 이투쟁을 프랑스와 그리스에서의 투쟁들과 연결짓고 노동자들 사이에서의 국제적인 단결의 필요성과 연결지었다. „프랑스와 그리스에서의 대대적인 저항들은 우리가 앞으로 보게될 것들의 전주곡에 불가하다. 당신들은 이러한 노동자들과 접촉해서 연락을 취하고 그렇게 해서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에 대항한 전유럽 차원의 저항을 전개한다는 생각을 한번이라도 해본적이 있는가? 그렇게 하는 것이야 말로, 사실상 문제에 책임이 있는 정당들, 기업가협회, 부패한 노조지도부 그리고 신노동당이 계속해서 노동자들의 약함으로부터 이득을 보도록 내버려두는 것보다는 훨씬 더 나은 길처럼 보인다. “ (Thebearfacts.org). 다른 부문의 노동자들도 민족주의적 슬로건들에 반대하여 이포럼에서 의견을 제시했다.
민족주의적 슬로건들의 문제에 대해 파업참가자들과 계급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러한 토론들은, 폴란드 출신의 노동자 200명이 플리무스의 랭기지 발전소 건설현장에서 린제이노동자들을 지지하기 위한 400명의 다른 노동자들의 비공인파업에 동참함으로써 절정에 달했다. 언론은 국제적인 연대의 이 발걸음을 은폐하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지역의 BBC 스튜디오는 그 파업을 전혀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전국적인 차원에서도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이러한 폴란드노동자들의 연대는 그들이 지난해 그 비슷한 투쟁에 참여했었기 때문에 특히 중요했다. 그당시 18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되었고, 폴란드인 노동자들을 포함한 다른 노동자들은 연대감에서 일손을 놓았다. 당시에 노조는 그 투쟁을 외국인노동자들의 존재에 반대하는 저항으로 탈바꿈시키려 노력했지만 폴란드인 노동자들이 파업에 참여함으로써 이러한 계획은 무산되었다.
랭기지의 노동자들은 노조가 어떻게 민족주의를 이용해서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했는가를 분명하게 의식하고 이 투쟁을 시작했다. 조업중단 하루 뒤 린제이의 한 총집회에서 „랭기지발전소 – 폴란드인 노동자 공동 파업:연대“라는 직접 제작된 현판 하나가 높이 내걸렸다. 이것은 폴란드인 노동자들 한명 또는 여러명이 7시간 걸리는 거리를 달려서 그곳까지 갔거나 또는 린제이의 한 노동자가 이 행동을 조명하고 싶어했음을 의미했다.
동시에 린제이 피켓에 이탈리아인 노동자들의 파업 참여를 호소하는 기치가 등장했다. 그것은 영어와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었고, 몇몇 노동자들이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라는 포스터를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졌다(가디언, 2009년 2월 5일).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추진하려는 몇몇 노동자들의 의식적인 노력의 시작을 보고 있었다. 계급내에서 훨씬 더 많은 반성과 토론을 불러일으키게 될 한 걸음을.
이 모든 것은 투쟁이 새로운 차원에 도달해서, 그 투쟁을 일종의 민족주의적인 반발로 묘사하려는 켐페인에 정면으로 도전할 것을 요구했다. 폴란드인 노동자들의 예는, 동런던의 올림피아드건설현장과 같은 영국에서 가장 큰 건설현장들에서의 투쟁에 외국인 노동자들이 동참할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언론이 국제주의적 슬로건들을 은폐할 수 없을 위험도 있었다. 그렇게 해서, 지배계급이 투쟁노동자들과 계급 사이에 가로놓은 민족주의적 장해물들이 극복되었을 터이다. 그 충돌이 그렇게 재빨리 해결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24시간 만에 노조와 기업주와 정부는 파업을 해결하는데 몇일이고 몇주고 걸릴거라고 말하던 처음의 논조를 바꾸어서, „영국인“ 노동자들이 지원할 수 있는 일자리 102개를 부가적으로 약속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다. 이 해결책으로 대부분의 파업자들은 만족하는 것 같았는데, 이는 이탈리아인 그리고 포르투갈인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게 됨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파업자는 „왜 우리는 일을 얻기 위해서만 파업을 해야 하는가?“라고 말했다.
한 주 동안 우리는 지난 10년이래 가장 확산된 비공인파업을 보았고, 노동자들이 대중집회를 갖는 것을 그리고 조금도 주저없이 불법적인 연대행동을 취하는 것을 보았다. 민족주의에 익사했을 지도 모를 투쟁이 이 독약을 문제시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민족주의의 위험이 사라졌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지속적인 위험이지만 이 운동은 미래의 투쟁들에게 중요한 교훈을 제공했다. 추측대로는 민족주의적인 피켓라인 위에 „전세계 노동자들이여 단결하라!“를 주장하는 기치가 보이는 것은 지배계급으로 하여금 앞으로 다가올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 것이다.
Phil. 2009년 2월 7일, ICC 영국 간행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