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인류의 모든 역사를 서술하려는 시도는 명백하게 불가능하다! 우리는 이러한 역사의 이데올로기적 발전의 가장 중요한 단계에 대한 분석을 요약하는 데에 논의를 제한할 것이다.
인간 발전의 첫 번째 단계, 즉 팔기 위한 생산은커녕 교환을 위한 생산조차 알지 못했던 원시 공동체에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진화와 그들을 둘러싼 자연적 힘들의 진화를 구별하지 못했다. 공동체는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 필요를 충족시켰고, 노동의 분업도 없었고, 음식과 거주와 마찬가지로 도구들도 공동으로 소유했다. 인간은 그러한 공동체 안에서 진화하면서 스스로를 주변 자연 환경들의 통합적인 일부로 생각했다. 각자를 공동체와 자연적 환경에 연결하는 이러한 직접적인 의존성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그 스스로를 마법적인 통일체의 측면에서 표현했다. 이러한 마법적인 통일체의 징후들은 어디서든 볼 수 있었지만, 통일체 그 자체는 이러한 징후들 그 이상이었다.
그러므로 역사의 초기에 등장한 언어는, 인간들과 그들의 공동체, 그리고 자연의 힘을 잇는 마법적인 연결고리가 되었다. 이 의사소통 수단은 실용적 목적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표현이면서, 금기와 금지의 강제를 통해서 자연에 대해 진정한 권력을 가졌다. 특정한 수렵 또는 채취지역은 거명될 수 없었고, 이것을 어길 경우 제어할 수 없는 힘이 풀려졌다.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행사하기 위해서 마법의 주문이 마음속에 간직되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신들과 자신들을 둘러싼 자연 세계 사이에 매우 밀접한 관계를 만들었다.
그러나 비록 존재의 물질적 조건과 공동체 사이의 이러한 조화로운 관계가 사회적 삶과 자연적 리듬 사이, 사회적 존재와 사상 사이, 그리고 구체적인 활동과 언어 사이의 근본적인 통일을 표현한다는 것이 사실일 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생산력이 거의 발전하지 않아서 끔찍한 결핍이 모든 영역을 뒤덮고 있는 사회를 다루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공동체는 지각변동(가뭄, 폭풍, 기아 등)과 같은 자연의 힘에 의해 좌우되었다. 인간이 자신이 의지해 있는 자연에 대해 품은 공포와 경이는 원시적 물신숭배로 이어졌다. 자연현상들(비, 열, 바람, 별 등)은 아직은 신성화되지 않은 채, 독립적인 힘으로 이해되었다. 공경과 공포와 진정의 대상으로서 능동적이고 무시무시한 힘으로 여겨졌다.
인간이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땅에 경작을 시작하고 나서야, 간단한 마법에서 종교적인 의례로의 이행이 이뤄졌다.
“사냥꾼은 그의 사냥 운을 바랄 때, 주술이나 마법에 의지했다. 계절의 규칙적인 변화, 발아에서 성숙 그리고 죽음까지의 일상적인 순환의 규칙을 알고 있는 농민들은, 자연의 힘을 설명하는 또 다른 형태의 사상에 의지해야 했다. 그러므로 여기서 영혼에 대한 생각과 신화가 탄생했다. (…) 농업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생명력은 삶과 죽음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자연 요소들에 놓여 있었다. 서로 어떤 논리적 연관성도 갖지 않는 그러한 요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것들은 하나의 힘의 상이한 측면들로 여겨졌다. 달, 태양, 여자, 물, 뱀 등이 그러했다. 이들의 생명력은 별도로 존재하는, 스스로 존재하고, 본질적으로 실재적인 어떤 것처럼 보였다.”(허버트 쿤(Herbert Kuhn))
자연의 힘에 대한 이러한 원시적 물신주의는 인간이 스스로 세계와 자연적 현상을 설명하려한 최초의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들이 자연에 의해 완전히 지배되고 있음을 깨닫자, 종교를 통해 그러한 자연에서 벗어나거나, 혹은 자연을 통제할 길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현실은 아주 간단한 하나의 신성한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었을까? 라고. 농업(그들이 자연 환경에 영향을 행사하는 첫 번째 형태)은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좀 더 높은 권력이 존재한다는 환상을 사회사상 안으로 통합했다. 그러므로 맑스가 설명한 것처럼 “종교는 자기 자신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거나 이미 다시 잃어버린 그런 인간들의 자의식이자 자존심이다.” (맑스, 『권리에 대한 헤겔 학설 비판 서문 Introduction to the Critique of Hegel's Doctrine of Right』)
그 후 노동의 사회적 분업의 발전, 공동체의 즉각적인 필요를 능가하는 생존 수단의 생산, 잉여의 출현 … 이 모든 것들은 교환 행위를 통해 고대 사회관계를 해체시키고, 원시 공동체를 붕괴시켰다. 공동체들은 그들의 생산에서의 잉여를 서로서로 교환하기 시작했다.
이 단계에서 생산력 발전은 노예제를 통한 노동력의 체계적 이용과 착취를 초래했다. 그러므로 농업은, 땅의 착취와 동물의 가축화를 통해, 이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부의 원천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사회관계의 완전히 새로운 기반이 창조되었다. 더 이상 생산물과 노동 도구들은 공동소유가 아니라, 사적 소유물로 되었다. 분업으로 인해, 인간은 자연스럽게 부의 형태가 된 노동 도구나 먹을거리를 취득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남자들은 식량의 새로운 원천인-가축-의 주인이 되었고 그에 이어 새로운 생산 수단인 노예의 주인이 되었다. 남자의 곁에서 여자는, 그녀들의 고대 모계 사회의 권리를 모두 잃고, 가재도구들의 주인으로만 남게 되었다. 이 거대한 사회적 분업의 발달과 나란히, 사회가 최초로 계급들로 분화되었다. 주인과 노예로, 착취자와 피착취자로의 계급분화가 일어났다.
가축 떼, 노예, 사치품, 생산 수단 등과 같은 형태를 띤 사적 소유가 이렇게 증가함에 따라, 생산자와 생산물 사이가 이렇게 분리됨에 따라, 그리고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가 시작됨에 따라, 인간들은 차츰 자연으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들로부터 분명하게 분리되어 갔다. 공동체는 더 이상 자연 환경의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며, 더 이상 평등하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반대로 특정 사적 소유 관계들에 기초하게 되었다. 개인은 점차적으로 공동체와의 객관적이고 대대로 이어져온 연결고리를 잃어버리고, 그의 생존 수단과의 직접적인 경제적 연결고리를 잃어버린다. 그는 그의 동료들과 경쟁자가 되어버린다.
역사 발전의 이 단계에서 인간 공동체의 사회 조직은 더 이상 그 공동체 전체의 의지에 의해 좌우되지 않았다. 화해 불가능한 사회적 적대와 내적 모순에 의해 분열된 상품 사회는, 그 사회 위에 군림하게 되고 사회질서의 유지를 목적으로 한 일련의 법과 규칙을 채택해야만 했다.
“사회로부터 발생하였으나, 사회 위에서 점점 더 사회에 낯선 것이 되어 가는 이 권력이 바로 국가이다.”(엥겔스. 『가족, 사유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The Origins of the Family, Private Property and the State』)
같은 방식으로, 이러한 정치적이고 법률적인 구조의 등장과 연계되어, 사회사상의 지배적 양식은 착취하는 지배 계급의 이해관계를 정당화하고 대표하는 것이 되었다. 이 사상은 더 이상 실천적 활동의 직접적인 반영도 아니고, 집단적 의지와 이전 같은 친밀한 접촉을 유지하지도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현실과 그 자체 사이에서 추구되는 간격을 특징으로 한다. 원시 공동체에서 실제 삶의 언어의 한 표현이었던 사상은, 상품사회에서는 지배 계급의 사상이 되었다.
그러므로 정치적 상부구조와 동시에 이데올로기적 상부구조가 나타났다. 그래서 지배 계급은 사회가 계급들로 새롭게 분리된 것을 정당화했고 영원한 것이라고 선언했다. 착취의 현실은 은폐되고, 특권층 소수의 특정한 이해관계는 마치 사회 전체의 이해관계인 것처럼, 진보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제시되었다.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분리를 통해서, 이러한 사상을 보호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삼는 전문화된 계층이 나타났다.
그 이후,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현실을 이렇게 정당화하는 것은 계속해서 재확인되고 강화되었다. 그러나 주창되는 정당화가 언제나 같은 것은 아니었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인류가 현실을 이해하는 능력은 더 커졌다, 진보의 행로에서 각각의 단계는, 즉, 자연의 지배에 대한 인류의 승리는 사상과 사회의 이해를 풍부히 하면서 함께 나아갔다.
“사회는 발전했고, 근래의 세기동안은, 매우 가파른 속도로 발전했다. 노동의 형식은 변화되었다. 인간들 사이의 관계, 노동에 대한, 자연에 대한 그 자신들을 지배하는 더 고차원의 힘에 대한 그들의 태도, 이 모든 것들 또한 발전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의 삶과 세계에 대한 관점이 진화하는 그 원인이다.”(안톤 판네쿡, 『노동자 평의회(The Workers Councils』)
다른 동물 사회, 심지어 가장 잘 조직된 다른 동물 사회와는 달리, 인류는 그의 생존-활동의 단순하고 무의식적 재생산에 만족하지 않는다.
인간의 사회적 요구는 그것의 만족을 위한 물질적 역량에 따라 증가한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은 즉각적인 만족을 기초로 하거나, 단일한 과정의 무한정한 재생산을 기초로 하여 자신의 요구에 반응할 수는 없다. 그들에게는 매개가 필요하다. 인간은 그들의 생존수단을 생산해야 하지만, 또한 생산의 도구들과 수단들을 점점 더 의식적인 방식으로 이용해야만 한다. 더욱이, 이것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인간은 반드시 서로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하며, 진보에 장해가 되는 조직 형태들을 다소 의식적으로 극복해야 한다.
옛 구조와 생산관계를 물적으로 극복하는 것은, 필수적으로 과거의 낡은 사회사상 형식들과 지배적인 관념들의 극복을 동반한다. 이것은 생산력의 발전이 사회사상의 발전을 가져오기 때문만이 아니라, 혁명적 계급은 자신이 대변하는 이해관계의 사회적 효율성을 - 권력을 가진 계급과는 반대로 - 사회 전체에 증명해 보임으로써만 그 역사적 과업을 효과적으로 완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물질적 하부구조에서 이뤄진 각각의 개선에 대해서 사회사상에서도 그에 따른 유사한 발전과 풍부화가 이뤄진다.
사회가 물질적, 즉 생산적 발달의 관점에서 성숙한 수준에 이르렀을 때마다 언제나 사상, 과학, 예술, 그리고 문학은 모두 번성한다. 사회관계의 발전의 각 진전 단계, 모든 기술적 진보와 사회 변화는 그에 상응하여 일어나는 사상 세계의 혁명에 의해 표시된다. 그러므로 자본주의는 이전에 선행된 아시아적, 중세적, 고대적 사회들에 비해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진보를 나타낸다고 이야기될 수 있다. 자본주의가 기술과 과학의 진보에 부여한 특별한 추진력은, 만약 이 진보가 통합되고 유지되려면, 현실에 대한 합리적이고 유물론적인 분석이라는 체계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생각은 부르주아 경제 발전이 정점에 다다름과 동시에 승리하게 되었다.
부르주아 사회는, 경제적으로는 이미 정복한 사회를 그 원시성과 오래된 믿음들로부터 빨리 해방시키기 위해, 낡은 중세 도그마(dogmas)에 대한 합리적 비판을 시작했다. 부르주아지가 이탈리아 도시들에서 통제권을 획득하고 있었던 르네상스 시대에 이미, 부르주아지의 이데올로기적 대변자들은 영혼의 불멸성과 신의 존재 유무와 같이 봉건주의의 신성한 중세적 가치들에 도전했다. 그러나 설령 부르주아 사상이 종교적인 특성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이자와 폭리에 대한 관념에 더 잘 어울리는 종교인 프로테스탄티즘을 강요하려 노력했다.
어디서든, 부르주아지는 새로운 생산 관계들을 강제했는데, 그 관계들이란 중세 영주에 대한 농노의 경우처럼 직접적인 의존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법적 평등의 개념에, 자신의 노동력을 시장에 팔 수 있는 ‘자유’를 가진 개개인의 존재에 근거한 것이었다. 이것이 바로, 그 당시 과거의 미신… 등을 정복하고 있던, 세계를 정복하게 되는 자본주의 사회 관계의 기초였다.
“세계는 하루아침에 거의 10배나 커져 있었다. 이제 서유럽인의 시야에는 반구의 4분의 1이 아니라 지구 전체가 있었다. 그들은 남아있는 모든 구석구석을 차지하기 위해 돌진했다. 그리고 출신 국가라는 낡고 좁은 경계가 무너짐과 동시에, 천년을 내려온 중세적 사고방식의 족쇄도 무너졌다. 인간 육체의 눈에도 마음의 눈에도 훨씬 더 광대한 지평이 열렸다.” (엥겔스, 『가족, 사유 재산 그리고 국가의 기원』)
이러한 정신적 각성, 현실을 이해하려는, 물리적, 자연적, 그리고 인간적 현상을 이해하는 역량의 이러한 증가…이 모든 것의 근원은 부르주아지의 경제적 역량에, 부르주아 사회가 생산수단과 생산 기술에 부여한 추동력에 있다. 과학적 유물론(scientific materialism)은 자연을 ‘정복하고’ 그 법칙을 이해하고 통제하는 역량의 증가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표현이다.
“자연은 인간이 의지하고 있는 ‘필요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인간은 자연의 법칙에 대한 지식이 증가하는 만큼 이러한 의존성을 합리적 방법으로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을 사회화함으로써 이러한 지식을 얻는다. 다시 말해 생산할 때 자연을 인간 자신이 실용적으로 변형함으로써 그러한 지식을 얻는 것이다.”(F.Jakubowski. 『역사적 유물론에서 이데올로기와 상부구조 (Ideology and Superstructure in Historical Materialism』)
그러나 이러한 이해는 다음과 같은 이유로 한계가 있다:
- 생산력의 발전은 인간이 그들의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기에 아직도 불충분했다. 자본주의 아래서,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깨지고, 더럽혀지고 오염되었다. 자본주의는 생산을 사회화시켰으나, 생산의 전유 양식까지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 부르주아지는, 착취 계급으로서 이 착취의 현실을 은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모든 생산양식은 본질적으로 역사적이고 일시적임을 인정할 수 없다. 이러한 환상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침투한다.
“부르주아지는 처음으로 경제를 일련의 통일된 법칙 아래 작동하는 총체적 과정으로서 이해하게 되었다. 바로 자본주의가 이러한 통일을 초래하고, 모든 이전 사회 질서의 특수성과는 반대로 통일성 있는 사회를 창조한 것이다. 그러나 부르주아지에게는 이러한 법칙들이 그 참여자들의 의식과는 상관없는 자연적 법칙으로 보였다. 만약 부르주아지가 이러한 법칙들을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이는 그 자신의 지배를 역사적 한계가 있는 것으로 인식해야 함을 또한 의미할 것이다. 계급의 이해관계와 계급의식이 서로 모순된다.
그러나 이 사실 하나만으로 부르주아지의 사회적 위치에서부터 비롯되는 의식의 이데올로기적 본질을 설명할 수 없다. 사회적 생산과 사적 전유 사이에 좀 더 결정적인 모순이 존재한다. 생산수단은 사회적으로 생산되며 사회를 위해 생산되지만, 개개의 자본가들의 손 안에 떨어진다. ‘자본은 사적이 아니라 사회적인 권력이다 (Capital is not a personal but a social power)’, 그러나 이 권력의 운동은, 자신의 활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전반적인 관점을 갖지 못한 개별적인 자본 소유자의 이해관계에 의해 지배된다. 자본의 법칙과 사회적인 기능은 ‘그들의 머리 위에서, 그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무의식적으로’ 작동한다.(루카치)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는 부르주아지의 위치에서 가능한 유일한 관점이 자본주의자 개개인의 관점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본가 개개인에게는, 노동의 소외로부터 비롯된 법칙이 인간과 독립된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다.”(F. Jakubowski. 『이데올로기와 상부구조』)
그러므로 자본주의적 생산과 상품 생산 일반의 객관적 한계는 부르주아지 사상의 한계에 반영된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함으로써 우리는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의식을 구분할 수 있다. 확실히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는 세계를 의식하려는 시도의 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 의식은 이미 제한되어 있었고 환상을 발전시켰다. 이는 위에서 약술했던 두 가지 이유, 즉 자본주의 생산의 본질, 그리고 자본주의 생산의 일시적인 본질을 부르주아지가 인정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다.
“상품 - 구조의 본질은 자주 지적되었다. 그 토대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사물의 특징을 취해서 ‘환영적인 대상성(phantom objectivity)’을 획득한다는 점, 즉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그 근본적인 본질의 어떤 흔적도 감춰버릴 만큼 엄격하게 합리적이고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그러한 자치를 손에 넣는다는 점이다.”(루카치. 『역사와 계급 의식(History and Class Consciousness』)
마찬가지로, 계급 사이의 사회관계는 사물 사이의 자연적인 관계처럼 보인다. 더욱이, 생산자들은 자신들의 노동 성과물과 분리된 채 그들의 사회적 활동을 마치 자신들과 독립적인 것처럼, 자신들의 통제 밖에 있는 것처럼 바라보게 된다.
“이 모든 귀결들은 노동자가 마치 낯선 대상에게처럼 그의 노동 생산물에 관계되어 있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이러한 전제에 따른다면 다음의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 노동자가 힘을 들여 노동하면 할수록, 그가 창조한 낯선 대상들의 세계는 더욱더 강력하게 노동자 자신을 넘어서 그에게 대립하게 되며, 그 자신 - 그의 내적 세계 - 은 더욱더 빈약해진다. 이는 종교에서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신에게 더 많은 것을 부여할수록, 그가 자신 속에 지니는 것은 더욱더 적어지게 된다. 노동자는 대상 속에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는데, 그 생명은 이제 더 이상 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게 귀속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활동이 더 크면 클수록 노동자에게는 대상의 결핍이 더욱 더 심해진다. 그의 노동 생산물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자신은 아니다. 따라서 이 생산물이 커질수록 그 자신은 더욱더 작아진다. 노동자가 그의 생산물 속에서 소외된다는 것은, 그의 노동이 하나의 대상, 하나의 외부적 실존으로 된다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노동이 그의 외부에, 그로부터 독립되어, 그에게 낯설게 실존하며, 그에게 대립하는 자립적 힘으로 된다는 것, 즉 그가 대상에게 부여했던 생명이 그에게 적대적이고 낯설게 대립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국민경제학은 노동자(노동)와 생산 사이의 직접적 관계를 고찰하지 않음으로써 노동의 본질 내부의 소외를 은폐한다.”(맑스, 『188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
이 소외는 사회사상의 수준에 필연적으로 반영될 수밖에 없다. 사실 “사상의 발전은 현실의 발전이 인간 두뇌 속에서 이동되고 전치된 채 단순히 반영되는 것에 불과하다.”(맑스, 자본론 1권) 그렇기 때문에, 생산의 사회적 조건들의 체화 (다시 말해, 그들이 대상 또는 사물로 나타나는)를 암시하는 상품 생산이 가진 물질적 한계는 사회사상에서 그에 상응하는 한계에 반영된다. 자본주의적 소외가 사회적 차원에서 반영되어 다음과 같은 것이 결과된다:
․ 사상과 학문(thought and science)은 본질적으로 심사숙고의 활동인 것처럼 나타난다. 이때 사상은 현실에 ‘맞도록’ 만들어진 ‘장갑’이나, 현실에 따라 형을 뜬 거푸집과 같은 것이지, 현실을 변형시키지는 않는다.
․ 사회관계는 초역사적 법칙을 따르는 현상으로서 연구된다.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는 이러한 법칙을 바꾸거나, 인간 그 자체를 변형시키는 인간 활동의 여지가 전혀 없다.
․ 자연과학은 관찰대상으로부터 분리되어 현실을 관조하고 ‘사실’의 경험주의적 평가를 통해 결론을 도출하는데 그칠 뿐인 ‘정확한 학문(exact science)’의 원형이었다.
․ 사상은 각각의 법칙을 가진 서로 독립적인 많은 ‘전문적 연구 분야’로 파편화된다. 총체(totality)는 이러한 개개의 사실들의 단순한 합처럼 여겨진다.
이 모든 것들은 이데올로기가 현실을 이해할 능력이 없거나 일관적인 방법으로 현실의 발전을 이해할 능력이 없음을 함축하고 있다. 사회적 삶의 상이한 측면들은 마치 서로 전혀 연관성이 없는 특이한 요소 또는 특수한 상황들처럼 보여진다. 그것들은 인간의 발전과는 독립적인 고정된 실체들인 것처럼 나타난다. 현실은 마치 하나의 대상처럼 나타나지, 인간 활동의 산물이자 인지될 수 있고 구체적인 어떤 것처럼은 나타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엥겔스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이데올로기는 소위 사상가가 확실히 의식적으로 하지만 잘못된 의식으로써 성취하는 어떤 과정입니다.” (엥겔스. 『「철학연구」에서 메링에게 보낸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