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불황, 전쟁, 사회적 붕괴- 계급투쟁만이 출구를 제공한다.

올 여름 경제위기의 극적인 첨예화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한계에 다달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채위기“는 문자그대로 은행의 파산일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들의 파산을 백일하에 드러냈고, 게다가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이 경제가 허약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유로지역의 주요국가들, 특히 세계경제최강대국 미국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위기는 전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간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빚더미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에 이미 나타난 경제위기를 자본주의가 연체하거나 은폐하려한 시도들의 결과일 뿐이다. 또한 오늘의 “침체”가 진정한 불황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이것이 실상, 1930년대에 생산 마비시켰고 그당시 세계를 제국주의전쟁으로, 즉 제 2차세계대전으로 몰아갔던 위기과 같은 심각한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적으로 진부해졌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불황과 1930년대의 불황사이의 차이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1930년대에 지배계급은 그 위기에 대항한 그들 자체의 야만적인 해법, 즉 제국주의 전쟁에 전 사회를 동원하고 세계를 새롭게 분활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재조직화는 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었던 재건의 기적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 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세계대전이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의 자기파괴를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전후에 새로운 제국주의 종주국의 출현 여지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옵션이었는데, 이는 그 이전에 노동자계급이 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혁명을 시도했었고 그러면서 스탈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로 인해 그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배패를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대전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의미에서만 하나의 옵션이다. 사실상 전세계적인 제국주의전쟁으로의 길은 자본주의가 옛 양대 블록 구도의 붕괴 후 그 어떤 안정적인 제국주의적 연합도 이뤄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막혀있다. 그 길은 또한 자본주의 주요국가들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 대다수를 이 체제는 그 수호를 위해 투쟁하고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단합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 않는다는 점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로막혀 있다. 이 두가지 요소들은 더 심층적인 어떤 것과 연결되어있는데, 노동자계급은 오늘날 패배당하지 않았고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항해 그들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위험


이는 혁명으로의 그 어떤 자동적 현상이 존재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도대체가 결코 “자동적 현상”이 될 수 없는데, 이 혁명은 과거의 그어떤 혁명보다도 더 높은 의식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연대원칙이 중심에 서 있는 그러한 한 사회에서 그들 자신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콘트롤을 넘겨받는 바로 그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혁명은 점점 더 대대적으로 되어가는 일련의 투쟁들에 의해서만 준비될 수 있고, 그러한 투쟁은 다시 더 깊고 더 넓은 계급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60년대 말 위기의 최근 시기가 시작된 이래, 노동자계급의 많은 주요한 투쟁들이 있었다. 685월 프랑스에서의 사건들이 유발했던 국제적인 투쟁물결에서부터 1980년 폴란드에서의 대중파업들과 1980년대 영국 광산노동자파업에 이르기까지. 비록1990년대에 계급투쟁의 오랜 역류가 있었지만, 지난 몇년동안에, 그들에게 그 어떤 미래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현 사회질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스페인어 개념대로 말하자면)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튀니지,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이스라엘 등등에서의 투쟁들에서 “혁명” 의 생각은 진지한 토론주제가 되었다. 1968년 파리, 1969년 밀라노의 거리들에서 그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당장 이 생각은 아직 매우 혼란스럽고 막연하다. '혁명', 가장 분명하게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에서, 또 지금 리비아가 그런 것처럼 지배계급의 일부분으로부터 그 다른 한 부분으로의 권력의 단순한 이동정도로 이해되기 쉽다. 그리고 최근의 운동들에서, 지배체제에 대항한 투쟁은 계급투쟁임을, 즉 지배계급 전체에 대항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임을 분명히해야 함을파악한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40여년간의 위기 이후 특히 자본주의의 주요국가 노동자계급은 1960년대말과 같은 모습을 더이상 띠지 않는다. 거대한 산업기지들과 강력한 계급투쟁의 집중지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다. 전 세대가 지속적인 불안정과 실업의 원자화의 영향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의 가장 절망적인 층들은 범죄와 허무주의 또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길고 점점 더 첨예해지는 붕괴과정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은 계급정체성을 재획득하고 사회의 지도력을 넘겨받아 그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는 능력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는, 체제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이며 부패한 본질에 대항한 무수한 분노의 반응들이 있을 지언정,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몇몇 반응들은 올여름 영국의 예에서처럼, 폭동, 봉기 및 수많은 약탈의 형태를 띨 지도 모른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정당한 분노의 분출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인도되어, 리비아에서 보여지듯이 제국주의의 한 진영에 대항해 다른 한 진영을 지지하는 용도로 투입될 수도 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피착취자들의 투쟁이 무의미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들로 분산되어버리고, 이때 노동자계급 전체가 너무 원자화되고 너무나 분열되어버려서 하나의 진정한 사회적 힘으로 출현할 수 없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아무것도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를 심연에 빠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전쟁의 전개가 없이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새세대 노동자들은 경제적 붕괴, 제국주의적 충돌, 환경파괴라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수동적으로 그리고 아무 저항없이 이용당할 용의가 전혀 없다는 많은 암시들이 존재하고, 이 새세대가 노동자계급의 더 나이든 세대들과, 자본주의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는 모든 이들을 자신들 주변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증후들이 존재한다.


세계혁명, 201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