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online - 2022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 공동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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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국제 코뮤니스트좌파 그룹 공동 성명

노동자에게 조국은 없다!

모든 제국주의 세력을 타도하라!

자본주의 야만 대신 사회주의!

 

우크라이나 전쟁은 크고 작은 각기 다른 모든 제국주의 열강의 상충하는 이해관계에 따라 싸우고 있는데, 이는 국제적 단결의 계급인 노동계급의 이해관계가 아니다. 이것은 군사, 경제적 지배를 위해 미국, 러시아, 서유럽 국가 기계를 담당하는 전쟁광들이 공공연하고 은밀하게 싸워왔고, 우크라이나 지배계급은 세계 제국주의 체스판에서 결코 무고한 졸로 행동하지 않는 전략적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다.

우크라이나 국가가 아닌 노동계급이 이 전쟁의 진정한 희생자이다. 무방비 상태의 여성과 아이들에 대한 학살에서도, 굶주린 난민 또는 징집된 총알받이로서도, 또는 증가하는 빈곤 속에서 전쟁의 영향이 모든 나라의 노동자에게 가져올 희생이다.

자본가계급과 그들의 부르주아 생산양식은 제국주의 전쟁을 초래하는 경쟁적 국가 분열을 극복할 수 없다. 자본주의 체제는 더 큰 야만으로 빠져드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세계의 노동계급은 임금과 생활 수준의 악화에 맞서 투쟁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1945년 이후 유럽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이번 전쟁은 노동계급 투쟁이 부르주아지의 전복과 노동계급의 정치 권력인 프롤레타리아트의 독재로 대체하지 않을 때의 세계 자본주의 미래에 대해 경고한다.

각기 다른 제국주의 열강의 전쟁 목표와 거짓말

러시아 제국주의는 1989년에 받은 엄청난 좌절을 뒤집고 다시 세계 강대국이 되기를 원한다. 미국은 초강대국 지위와 세계 지도력의 유지를 원한다. 유럽 열강은 러시아의 팽창뿐만 아니라 미국의 압도적인 지배도 두려워한다. 우크라이나는 가장 강력한 제국주의 강자와 동맹을 맺으려 한다.

현실을 직시하자, 미국과 서유럽 열강은 이 전쟁에서 그들의 진짜 목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설득력 있는 거짓말과 가장 큰 언론의 거짓말 기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작은 주권 국가에 대한 러시아의 침공에 대응하고, 크렘린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고, 푸틴의 잔혹함에 직면해 인권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더 강한 제국주의 갱단은 대개 더 나은 전쟁 선전, 더 큰 거짓말을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적(敵)을 자극하고 조종하여 먼저 도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중동, 시리아,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러한 강대국들의 너무나 평화적인 수행을 기억하자. 최근 미 공군이 모술(Mosul)시를 어떻게 평정했는지, 연합군이 사담 후세인이 대량살상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거짓 핑계로 이라크 국민을 학살한 수법을 기억하자. 1960년대 베트남, 1950년대 한국, 2차 세계대전 당시 히로시마, 드레스덴, 함부르크 등 지난 세기 동안 민간인에 대한 이러한 민주주의 국가들의 수많은 범죄를 기억하자. 우크라이나 국민에 대한 러시아의 분노는 본질적으로 같은 제국주의 전략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본주의는 인류를 항구적인 제국주의 전쟁의 시대로 몰아넣었다. 전쟁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환상이다. '평화'는 호전적인 자본주의에서 막간(幕間)일 수 있다.

해결할 수 없는 위기에 빠질수록 자본주의는 증가하는 공해와 전염병의 재앙과 함께 군사적 파괴가 더 커질 것이다. 자본주의는 혁명적 변화를 위해 썩고 무르익었다.

노동계급은 잠자는 거인이다.

자본주의 체제, 점점 더 많은 전쟁 체제와 그 모든 공포는 현재 통치에 대해 이렇다 할 계급적 반대가 없기 때문에 프롤레타리아트는 노동력 착취의 악화를 겪고 제국주의가 전쟁터에서 치러야 할 궁극적인 희생을 요구받고 있다.

혁명적 전위의 필수적인 역할에 의해 자극받은 계급의식만이 아니라 계급 이해관계 방어의 발전은 노동계급의 훨씬 더 큰 잠재력을 숨기는데, 1917년 러시아에서 그랬고 당시 독일과 다른 곳에서 위협했던 것처럼 부르주아지의 정치 기구를 완전히 전복하기 위한 계급적 단결의 능력을 숨긴다. 말하자면, 전쟁으로 이끄는 체제를 전복하는 것이다. 실제로, 10월 혁명과 그것이 다른 제국주의 열강에서 일으킨 봉기는 전쟁에 대한 반대뿐만 아니라 부르주아지 권력에 대한 공격의 빛나는 사례이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그러한 혁명적 시기와는 거리가 멀다. 마찬가지로, 프롤레타리아트 투쟁의 조건은 최초의 제국주의 학살 당시와 다르다. 한편 제국주의 전쟁에 직면하여 동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과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에서 이러한 원칙을 필요에 따라 조류에 맞서 철저히 방어하는 혁명 조직의 의무이다.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국제주의를 위한 투쟁과 꾸준히 이어온 투쟁의 정치적 전통

스위스의 침머발트와 키엔탈 마을은 1차 세계대전 당시 양측 사회주의자들이 만나 도살 행위를 끝내고 사회민주당의 애국적 지도자들을 규탄하기 위한 국제투쟁을 시작한 장소로 유명해졌다. 브레멘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의 지지를 받은 볼셰비키는 바로 이 회의에서 제국주의 전쟁에 맞선 국제주의의 기본 원칙을 제시했는데,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어느 편의 제국주의 진영도 지지하지 않고, 모든 평화주의 환상을 거부하고, 오직 노동계급과 혁명적 투쟁만이 노동력 착취에 기반을 두고 제국주의 전쟁을 영구적으로 일으키는 체제를 끝낼 있다는 인식”

1930년대와 1940년대에 1차 세계대전에서 볼셰비키가 발전시킨 국제주의 원칙을 굳게 고수한 것은 오직 코뮤니스트좌파라고 불리는 정치적 흐름이었다. 이탈리아 좌파와 네덜란드 좌파는 제2차 제국주의 세계대전에서 트로츠키주의를 포함하여 프롤레타리아혁명을 주장한 다른 흐름과 달리 학살에 대한 파시스트와 반(反)파시스트의 정당성을 모두 거부하면서 양측에 적극적으로 반대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들 코뮤니스트좌파는 분쟁에서 스탈린주의 러시아의 제국주의에 대한 어떠한 지원도 거부했다.

오늘날 유럽에서 제국주의 충돌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코뮤니스트좌파의 유산에 기반을 둔 정치조직은 일관된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의 기치를 계속 유지하며, 노동계급 원칙을 옹호하는 이들에게 기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오늘날 소수이고 널리 알려지지 않은 코뮤니스트좌파의 조직과 그룹은 이 공동 성명을 발표하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야만성에 맞서 만들어진 국제주의 원칙을 가능한 한 널리 알리기로 했다.

 

우크라이나의 제국주의 대학살에서 어느 편도 지지하지 않는다.

평화주의에 대한 환상은 없다. 자본주의는 끝없는 전쟁을 통해서만 있다.

오직 노동계급만이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으로 이어지는 착취에 대한 계급투쟁을 통해 제국주의 전쟁을 끝낼 있다.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2022년 4 6

 

국제코뮤니스트흐름(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오노라토 데이먼 연구소(Instituto Onorato Damen)

국제주의자 목소리(Internationalist Voice)

국제주의코뮤니스트전망(Internationalist Communist Perspective)

 

 

우크라이나: 동유럽에서 전쟁긴장의 첨예화

러시아군은 올 1월 이래 우크라이나국경 전역에서 대대적인 “군사훈련”을 통해 그 세력을 과시한다, 거의 미국은 러시아의 침공이 임박했다고 거의 매일 발표한다, 나토는 발틱국가들과 루마니아로 군대를 파병한다,  “평화를 구원하기 위한” 강도 높은 외교적인 춤판이 일어난다, 러시아의 대중매체 켐페인은 서방의 히스테리를 비난하며 러시아 군대가 기지로 복귀했다고 보도하지만, 이는 미국과 나토에 의해 즉각 부인된다, 우크라이나군과 돈바스지역 분리주의자들사이에 충돌이 일어난다. 제국주의적 부르조아지들이 마치 마녀들의 야간 연회처럼 전쟁을 놓고 벌이는 이 무시무시한 소란에서 그 의도들은 다양하고 복잡하며, 상이한 주인공들의 야망과 연결되어 있고 붕괴기의 특징인 비합리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로 인해  상황은 더 위험스럽고 예측불가능하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위기”의 구체적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게 될지언정, 이미 이 위기는 유럽에서 군사화, 전쟁긴장 및 제국주의적 모순들의 뚜렷한 강화를 의미한다.  

1. 미국의 공격태세와 압박을 받고 있는 대통령 

임박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미국의 히스테리적인 비방 그 이전에 미국은  2021년 타이완에 대한 중국의 “임박한 침공” 에 대해 유사한 비방을 연출했었다. 미국의 지도적 역할의 체계적인 퇴락에 직면하여 바이든 정부가 추구하는 제국주의 정책은 트럼트가 도입한 군비강화를 계속 이어가면서 우선적으로는 경제적 정치적 및 군사적 수단을 주요한 적수  중국에 대항해 집중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 러시아의 목표들에 대한 비타협적인 입장은 2021년 가을에 북경으로 보내진 신호를 강화한다. 
두번쩨로,  바이든은 세계의 “분쟁지대”를 만들어냄으로써 긴장강화정책을 전개하는데, 이 정책의 목표는 제각각 따로 놀고 있는 상이한 제국주의 열강들을 설득해서 지배적인 보호자의 보호 아래에 자리잡는 것이 더 낫다는 인식하게 만드려는 것이다. 이 정책은 하지만 붕괴기의 한계들과 충돌했고, 태평양에서 한국과 일본 및 인도와는 거리를 두면서 영어권 ‘백인’ 국가들(미국,영국, 호주)이 결집한 미영호안보조약기구(AUKUS)을 창설함으로써 단지 미온적인 성공을 거두었을 뿐이었다. 오늘날 동일한 종류의  정책이 나토에서 유럽국가들을 미국의 주도 아래 다시 모으기 위해서 러시아에 대해 시행된다. 이때 미국의 선동은 끊임없이 러시아의 침공을 비난하면서 동시에 미국은 냉소적으로 나토내 국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해서는 방어의무가 없기 때문에 군사적으로 개입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한다. 이것은 유럽국가들에 대한 불성실한  메세지이다.  그런데 아시아에서 미국의 충실한 부관 역할을 했던 보리스 존슨외에 마크롱과 숄츠가 모스크바로 향해  연출한 최근의 외교적인 춤사위는 독일과 프랑스의 부르조아지가 그들의 특수한 제국주의적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모든 수단을 다해서 얼마나 애쓰는지를 강조한다.

동시에 조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미군철수와 사회경제적 계획들의 반복된 실패로 인해 크게 훼손된 자신의 이미지가  이러한 대결정책을 통해서 개선되기를 바란다.

  바이든 대통령은 재임 1년이 지난 설문조사에서 전임 도널드 트럼프대통령을 제외한 모든 이제까지 선출된 대통령들 중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을 얻었다(씨엔엔 폴리틱스, 2022년 2월 6일자)  그래서 “자신의 당을  올해 11월에 있을 중간선거에서의 패배를 향해 조종해가고 있다”(라 프레스, 몬트리얼, 2022년 1월 23일자). 요약하자면, 미국이 공격태세를 취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행동범위는  국내에서의 비호감도 때문에, 그리고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의 경험 이후 ‘지상군’를 대대적으로 투입하는 것은 거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도  제한적이다. 우크라이나 국경에서의 미군의 존재는 그래서 상징적인 것으로 머문다.

2. 함정에 빠진 그리고 방어태세에 있는 러시아

지난 10년간 우리가 강조해온 것처럼, 러시아는 경제적으로 난쟁이에 불과하지만 한 때 하나의 제국주의 블록 전체를 이끌었던 시기의 유산인 강력한 전투력과 무기 덕분에 세계에서 “불안선동자”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러시아가 오늘날 전반적으로 공격태세에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반대로,  러시아는 전반적으로  그 국경을 따라 증가하는 압력을 받는 상황에 놓여있다. 

- 탈리반이 카불에서 권력을 쥐고 있는 중앙아시아에서 “스탠스(Stans)” 동맹국들(우스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타지키스탄)에 대한 이슬람의 위협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두번째로, 러시아는 2008년 조지아와의 은폐된 전쟁에서 남오세티아와 압하지아를 점령한 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에 입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2020년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의 전쟁 후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사이의 현상태를 유지하려 노력 중인데,  한편 아제르바이잔을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터어키가 계속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있은 카자흐스탄의 불안정화는 러시아에게 악몽인데, 이 나라는 러시아의 동쪽 요새의 방어에 중심적인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 유럽에서 러시아의 서쪽 요새에서 중심 지역들인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우크라이나국경에서 모스크바까지 45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음)는 최근 몇 년간 강력한 압력을 받고 있다. 러시아는 그곳에서도 친러시아적인 체제를 계속 유지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지만 2014년 키에프에서의 오렌지혁명이 우크라이나를 유럽쪽으로 기울게 만들었고 2020년에는 벨라루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뻔했다.  2014년 크림반도를 점령하고 동우크라이나(도네스크와 루간스크)에서 러시아어권 분리주의자들을 후원함으로써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체에 대한 통제권을 유지하길 바랬다.

원래는 러시아 대통령은 돈바스공화국들이라는 우회로를 거쳐서 우크라이나 청치에 참견권을 확보하기 위해서 2014년의 민스크조약과 2015년의 실행조약에 기대를 걸었다 반대가 발생했다. 민스크협약의 실행은 진전이 없는 상태에 놓여 있다.  2019 4 볼로디미르 셀렌스키의 대통령선출은 모스크바에서 키에프와의 개선된 관계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켰지만 셀렌스키는 전임자가 도입한  ‘러시아 세계와의 결별 정책을 강화했다. 게다가 우크라이나와 나토 사이의 군사적-기술적 협력은 더욱 긴밀해진다. 나토회원국인 터어키는 키에프에게 심지어 전투드론을  공급했고, 그래서 모스크바는 우크라이나가 돈바스의 군사적인 재정복을 시도할끼봐 두려워한다푸틴은 아직 시간이 있을   주도권을 잡으려 한다” (르몽드 디플로마틱, 2022 2월호)

점점 더 중국에 중점을 두는 미국의 경향을 놓고 볼 때, 푸틴은  이 시기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압력을 높히고 그래서 “제국주의의 무대 위에서 자신의 입지를  협상해내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하이브리드 전쟁’ 정책을 추구하는데, 이때 군사적인 긴장, 사이버공격, 경제적 위협(러시아 가스)와 정치적 위협(배신적인 공화국들의 인정)등 여러가지 압력수단들이 동원된다.  그런데 미국의 정치적 매체적 공세가 그를 억제한다. 미국은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점령을 위한 군사작전을 요란스럽게 발표함으로써 러시아의 그 어떤 작은 움직임도 좌절로 이해되도록 만들어서 러시아를 위험하고 아마도 장기적이될  군사작전으로 움직이려 시도한다. 그런데 러시아 국민들도 전쟁에 동원되어 대다수가 “시체”로 되돌아오길 마찬가지로 바라지 않는다.

러시아의 정치학자이자 러시아국제정치전문가인 표도르 루캬노프는 강조하기를, “힘의 과시와 힘의 사용 사이의 선을 넘는 것은 위험과 결과에 있어서 다른 수준으로의  이동이다. 현대사회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들의 지도자들도 이점을 안다.” (드 모르건에서 인용됨, 2022년 02년 11일) 
 

3. 유럽에서의 증가하는 긴장과 군사화

우크라이나 사태는 지금 이미 유럽 상황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두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 첫째로 제국주의적 충돌의 첨예화, 미국의 압력 그리고  ‘각자도생’원칙의 강조는 여러 유럽국가들의 위치에 극도로 강한 압력을 행사한다.  바이든의  비타협적인 발언은 그들로 하여금 입장을 취하도록 강제하고 그들 사이의 틈은 점점 더 커지는데, 이는 나토에게나 유럽연합에 광범위한 결과를 가질 것이다. 한쪽에는 유럽연합 내부 합의의 제약에서 벗어난 영국이 미국의 충실한 부관으로서 위치한다. 영국 외무장관은   타협점을 찾으려는 독-프랑스의 시도를 심지어 ‘두번째 뮌헨’이라고 불른다. 루마니아, 폴란드 또는 발틱국가들과 같은 여러 동유럽 나라들은 나토의 강경한 태도를 요구하며 미국의 보호아래 결연하게 입장을 정한다.

이에 비해 프랑스와 독일은 분명히 더 주춤거리며 그 갈등과 관련해서 그들 자체의 방향을 발전시키려 한는데, 이는 마크롱과 숄츠의 푸틴과의 강렬한 협상들로 강조된다. 이 갈등은 이 나라들의 경제적 그리고 제국주의적 성격의 특별한 이해들이 러시아에 대해 그 자체의 정책을 추구함을 분명하게 보여주었고 바로 이것이 미국이 압력을 행사하는 목적이다.

전반적인 수준에서 우크라이나에서의 대결은 유럽대륙에서 전쟁의 목소리와 경제의 군사화경향에 영향을 미칠 것인데, 그것도 무질서와 각자도생의 문맥 안에서 모순들의 심화를 놓고 볼 때 우리가 1990년대의 전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에서나 2014년 러시아에 의한 크림반도점령에서 보았던 것보다 훨씬 더 심층적인 수준에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각자의 제국주의적 이해를 방어하기 위한 여러 나라들(특히 독일과 프랑스)의 위치는 유럽내의 긴장을 더 첨예화하고 각자도생경향의 발달과 연결된 혼란을 더 한층 강화하고 단기적 그리고 중기적으로 상황의 예측불가능성을 높힐 수 있다.

4. 어떤 전망이 있는가?

의심의 여지없이 그 주역들 중 누구도 전면전을 펼치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동맹들은 증가하는 각자도생 경향 때문에 신뢰할 만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특히 관련국들 어디에서도 부르조아지가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은 여전히 주요한 적수인 중국에 집중하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편 그의 전임자 트럼프와 마찬가지로 ‘지상군’ 파병을 어떻게든 피하고(비교, 러시아는 ‘아프가니스탄신드롬’에서 보듯이 경제와 군사적 강세를 약화시킬 장기적이고 대대적인 전쟁을 두려워한다), ‘더러운 임무’는 사적인 회사들(러시아의 경우 비그너 그룹같은)이 해결하게 만들면서 정규군을 너무 많이 투입하는 것을 마찬가지로 피한다. 러시아 국민들은 백신접종률을 높히는데 있어서 계속되는 어려움에서도  보여지듯이 국가를 깊히 불신한다. 유럽에게는 결국 전쟁은 경제적인 자살일 것이고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이다.

전면적이고 대대적인 전쟁의 부재는 교전 행위가 일어나지 않음을 결코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행위들은 우크라이나에서 지금 이미 차르코프와 루간스크에서 분리주의자 민병들과의 ‘강도가 낮은’ 전쟁을 통해 일어나고 있다. 붕괴기와 연결된 ‘각자도생’의 증가와 비합리성과 결합된 상이한 제국주의들의 제국주의적 야망들은  돌이킬 수 없이 유럽 자체에서, 점점 더 혼란스럽고 잔인한 형태를 띨 수 있는 갈등들의 배가라는 전망을 의미한다.  ‘하이브리드’ 갈등 (군사적, 경제적 및 정치적 압력의 조합)의 배가, 뿐만 아니라 미국(푸틴에 대한 트럼프의 ‘호감’을 참조)과 예를 들어 독일에서처럼 유럽에서의 부르조아지 내부에서의 긴장들, 그리고 그들의 정치기구에 대한 부르조아지의 점증하는 통제력상실(대중추수주의의 물결)  등.

민족주의의 증오에 찬 비방에 대항해 좌파 코뮤니스트는 러시아든 미국이든 독일이든 프랑스든 아니면 우크라이나든, 상이한 부르조아지들의 이해에만 봉사하며 노동자들을 야만적인 충돌에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측면에서부터의 제국주의적 거짓말을 비난한다. 노동자계급에겐 조국이 없고, 자본주의의 착취에 대항한 노동자투쟁은 국제적이며, 성별이나 인종 또는 민족 등을 근거로 하는 그 어떤 분열도 거부한다.   제국주의적 상어들의 사이에서 대결들의 심화에 대항해 노동자들이  투쟁으로서 대응하지 않으면 각자도생, 군사화 및 비합리성이 증가하는 맥락에서 이러한 대결들은 모든  층위들에서 증대할 것임을 노동자계급은 의식해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노동자투쟁의 전개는, 특히 자본주의 핵심국가들에서 투쟁의 전개는  또한  전쟁의 야만의 확산에 대항하는 근본적인 무기이다. 

2022년 2월 18일 R.Havanais

 

우크라이나에서의 제국주의 충돌 자본주의는 전쟁이다, 자본주의에 전쟁을!

유럽이 전쟁에 돌입했다. 이것은 1939-45의 제 2차 세계대학살이래 처음이 아니다.  1990년대 초 옛유로슬라비아를 전쟁이 휩쓸어 14만명이 사망했고, 1995년 7월 스레브레니카에서는 “인종청소”라는 명목으로 민간인의 대량학살이 이뤄져 청소년을 포함해 8천명의 인명이 냉혹하게 살해되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군의 공격으로 이제 막 발발한 전쟁은 지금은 그렇게 많은 사망자를 내지는 않았지만 결국에 얼마나 많은 희생자를 내게 될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이것은  옛유고슬라비아에서의 전쟁보다 그 규모가 훨씬 더 크다. 오늘날 대적해서 싸우고 있는 것은 민병들이나 작은 국가들이 아니다. 현재의 전쟁은 각각 1억 5천만명과 4천5백만명의 인구를 갖는 가장 큰 유럽국가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고 러시아에서 70만 그리고 우크라이나에서 25만명 등 거대한 군대들이 동원되어 있다.  

게다가 옛유고슬라비아에서의 대결에서 강대국들이 이미 관여되어 있었다면 그것은 간접적인 방식으로, 또는  유엔 휘하의 “개입군”에 참여함으로써 이뤄졌다. 오늘 러시아와 맞서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뿐만이 아니라 나토에 집결한 모든 서방국가들이다. 하지만 비록 그들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관여하지 않지만 우크라이나에 군대를 보내기 시작함과 동시에 이 나라에 대한 중대한 경제제제를 가했다.

그래서 지금 막 시작된 전쟁은 무엇보다도 특히 유럽에게 하지만 전 세계에게도 매우 중요한 극적인 사건이다. 이 전쟁으로 이미 수천명의 양측의 군인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수십만의 피난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그것은 추위와 굶주림을 증가시키게 될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더욱 상승하도록 만들 것인데,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착취당하고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이미 인플레이션에 직면해  생활조건들의 붕괴를 겪고 있다. 늘 그렇듯이 세계의 주인들의 전쟁행동들에 가장 큰 값을 치르게 되는 것은 사회적 부의 대부분을 생산하는 바로 그 계급, 노동자계급이다. 

이 전쟁, 이 비극은 지난 2년간의 전세계적 상황, 즉 팬데믹, 경제위기의 심화, 환경재앙의 배가 등등과 분리될 수 없다. 이것은 세계가 야만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명백한 표시이다.

전쟁 선동의 거짓말들

모든 전쟁에는 대대적인 거짓 켐페인들이 함께 한다.  국민들, 특히 착취당하는 계급이 그들에게 요구되는 끔찍한 희생들을, 즉 전선에 보내진 군인들에게는 그들의 생명이라는 희생, 애도하는 그들의 어머니들, 그들의 파트너들 그들의 아이들, 민간인들의 공포, 박탈과 착취의 심화를 받아들이도록 만들기 위해서 그들의 머리를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로 채우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푸틴의 거짓말들은 조야하고 정치경찰과 스파이조직인 KGB의 장교로서 그가 경력을 시작한 소련체제의 그것들을 반영한다. 그는 “대량학살”의 희생자들인 돈바스의 민중들을 돕기위한 “특별군사작전”을 수행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제제를 가하겠다면서 대중매체에게 “전쟁”이라는 단어의 사용을 금지한다. 그에 따르면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배하는 “나치 정권”으로부터 우크라이나를 해방시키길 원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의 러시아어권 민중들이 종종 나치정권에 향수를 느끼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민병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있지만 대량학살은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서방 정부들과 매체들의 거짓말들은 보통 더   교묘하다.  늘 그렇지는 않은 것이,  미국과 "민주적"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고... 우크라이나(!)를 포함한 많은 그 동맹국들은 2003년 이라크에의 개입을 사담 후세인의 손에 든 “대량살상무기”라는 완전히 꾸며낸 위협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팔았다. 그 개입으로 수십만 명의 사망자와 2백만명의 이라크인 난민이 발생했으며 수만명의 연합군 사망자가 발생했다.

오늘날, "민주적" 지도자들과 서구 언론은 우리에게  ‘악의적이고 불쾌한’푸틴과 ‘착한 작은 소년’ 젤렌스키 사이의 싸움이라는 동화를 전한다. 푸틴이 냉소적인 범죄자라는 걸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그것에 걸맞은 외양을 갖고 있다.  젤렌스키는 푸틴과 같은 전과가 없고 정치에 입문하기 전에 인기있는 희극배우(결과적으로 탈세천국에 큰 재산을 소유하는)이었다는 이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 코미디 재능으로 군사령관이라는 새로운 역할에 활기차게 몰입해 있다.  그래서 18세에서 60세 사이의 남성이 가족과 함께 해외로 피난을 떠나는 것을 금지하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조국’을 위해, 즉 우크라이나 부르주아지와 과두체제를 위해서 죽을 것을 요청한다. 왜냐하면 집권 정당들의 색깔이 무엇이든 간에 그들의 연설의 음색이 무엇이든 간에, 모든 국가는 착취되는 자들에 대항해 그리고 다른 민족부르주아지들로부터의 경쟁에 대항해 무엇보다도 착취자 계급의, 민족 부르주아지의 이익을 옹호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모든 전쟁 선전에서, 각 국가는 ‘침략자’에 대항하여 스스로를 방어해야 하는‘침략의 피해자’라고 자신을 나타낸다. 그러나 모든 국가가 사실상 강도들이기 때문에 어떤 강도가 먼저 발사했는지를 묻는 것은 결산에 의미가 없다.  오늘은 푸틴과 러시아가 먼저 발사했지만 과거에는 나토가 미국의 후견아래 그자체의 진영으로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전에 러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여러 나라들을 통합해왔다. 전쟁을 시작함으로써 날강도 푸틴은 특히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저지함으로써 자신의 나라의 과거의 파워를 어느 정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사실, 20세기 초반부터 그것이 초래하는 모든 끔찍한 고통을 수반하는 영구적인 전쟁은 자본주의 체제와는 분리불가능하게 되었다. 회사들 사이에서 그리고 국가들 사이에서 경쟁에 기반한 이 체제에서 상업전쟁은 무장된 전쟁을 초래하고 그 경제적 모순들과 위기의 악화는 훨씬 더 많은 전쟁같은 충돌들을 일으키고 있다. 이윤과 생산자들의 극심한 착취에 기반한 이 체제에서 노동자들은 땀으로뿐만 아니라 피로도 댓가를 지불하도록 강제된다.

2015년 이후 세계 군사 지출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다. 이 전쟁은 이 과정을 노골적으로 가속했다. 이러한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한 상징으로서 독일은 2차대전 이후 역사상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유럽연합은 우크라이나의 무기구입과 조달에 자금을 지원한다. 그리고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자신의 결단과 파괴력을 증명하기 위해서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전쟁을 어떻게 끝낼 있는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보다 훨씬 더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을 지라도 아무도 현재의 전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할 수 없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그리고 러시아 자체에서도 러시아의 개입에 반대해서 많은 시위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적대행위들을 끝내게 될 것은 이러한 시위들이 아니다. 역사는 자본주의 전쟁을 끝장낼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착취받는 계급, 부르주아계급의 직접적인 적인 프롤레타리아트뿐임을 보여주었다. 러시아의 노동자들이 1917년 10월에 부르주아 국가를 전복했을 때 그리고 독일의 노동자와 군인들이 1918년 11월에 반란을 일으켜 그들의 정부로 하여금 정전협정에 서명하도록 강요했을 때가 이런 경우였다.  만약 푸틴이 수백 수천명의 군인을 보내서 죽게 만들 수 있다면, 만약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오늘날 ‘조국의 수호’를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다면 그것은 주로 세계의 이 부분에서 노동자 계급이 특히 약하기 때문이다.  1989년 ‘사회주의’ 또는 ‘노동자계급’이라 주장했던 체제들의 붕괴는 세계 노동자 계급에 잔인한 타격을 입혔다. 이 타격은 프랑스, 이태리 그리고 영국같은 나라들에서 1968년부터 1970년대 동안 열심히 싸워왔던 노동자들에 영향을 끼쳤고 1980년 8월에 대대적으로 그리고 대단한 결의로 투쟁해서 정부가 억압을 포기하고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도록 강제했던 폴란드의 노동자들처럼 소위 ‘사회주의’ 나라들에서의 노동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끼쳤다.

우리가 전쟁의 희생자들, 민간인들 그리고 포탄받이로 되어버린 군복입은 프롤레타리아들인 양측의 군인들에게 진정한 연대를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평화를 위한" 시위가 아니다, 다른 나라에 대항하여 한 나라를 지지하기로 선택함으로써가 아니다. 유일한 연대는 모든 자본주의 국가, 이런 저런 국기 아래  모일것을 요청하는 모든 정당, 국민들 사이의 ‘좋은 관계들’과 평화 라는 환상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모든 사람들  을 비난하는 것이다.  그리고 진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연대는 전세계의 각지에서 대대적이고 의식적인 노동자 투쟁들의 전개이다. 그리고 특히 이러한 투쟁들은 점점 더 인류를 위협하는 모든 야만과 전쟁들에 책임이 있는 그 체제, 즉 자본주의 체제의 전복을 위한 준비라는 사실을 의식하게 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노동자 운동의 오랜 슬로건, 1848년 코뮤니스트선언에 나타났던 그 슬로건이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중요한 현안이다. 노동자들에게 조국은 없다모든 나라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국제 프롤레타리아트의 계급투쟁의 발전을 위하여!

 

국제 코뮤니스트 흐름(ICC) 2022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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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급은 전쟁의 제단 위에 희생을 요구한다.

만약 당신이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수십만 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피난하려는 18 세에서 60 세 사이의 남성이라면 당신은 아내, 자녀 및 노부모님과 강제로 분리될 것이다. 당신은 전진하는 러시아 군대와 싸우기 위해 지금 징집된다. 당신이 도시에 머무르면, 군사 목표물을 겨냥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부수적 인 피해"를 항상 야기하는 포격과 미사일공격을 받게 될 것인데, 이러한 피해에 대해 우리는 1991 년 서구의 영광스러운 걸프전에서 처음 들었다. 그렇게 주택가, 학교 및 병원이 파괴되고 수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게 된다. 당신이 러시아 군인이라면,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당신을 해방자로 환영 할 것이라고 들었을 지 모르지만, 그 거짓말을 믿는 댓가를 피로 치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제국주의 전쟁의 현실이며, 그것이 오래 지속될수록 죽음과 파괴의 피해는 더 커질 것이다. 러시아 군대는 체첸과 시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이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크라이나로 쏟아져 들어오는 서방군은 전쟁의 참상을 확대시킬 것이다.

암흑의 시대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한 최근 기사 중 하나에서 우익 영국 신문 데일리 텔레그래프는 세계가 빈곤, 비합리성 전쟁의 새로운 암흑기로 접어 들고 있다라고 헤드 라인을 달았다.

다시 말해서, 자체 해체로 빠져드는 세계적인 시스템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사실은 점점 더 감추기 어려워지고 있다. 그것이 전 세계적인 코로나 유행병의 영향이든, 지구가 직면하고 있는 생태학적 재앙에 대한 최근의 부정적인 예측이든, 경제 위기로 인한 빈곤의 증가든,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 심화로 인한 매우 명백한 위협이든, 또는 한때 지엽적인 종말론적인 전설과 음모론에 의해 촉발된 정치적, 종교적 세력의 출현이든 상관없이, 비록 그들의 의견을 쓰는 작가들이 자본주의의 모순 속에서 이 모든 것의 뿌리를 찾기는 힘들다할 지라도 텔레그래프의 그 헤드라인은 현실의 묘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1989-91년 동구권과 소련의 붕괴 이후, 우리는 20세기 초부터 이미 낡은 것이 되어버린 세계 사회 시스템이 쇠퇴의 새로운 마지막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우리는  ‘냉전’의 종식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세계 질서를 가져올 것이라는 약속과는 반대로 이 새로운 단계가 무질서의 증가와 군사주의의 확대로 표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90년대 초 발칸반도의 전쟁, 1991년 걸프전,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리비아의 침공, 시리아의 분쇄, 아프리카 대륙에서의 무수한 전쟁, 세계 강국으로서의 중국의 부상, 러시아 제국주의의 부활 등이 모두 이러한 예측을 확인시켜 주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과정에서 내딛은 새로운 한 발을 표시한다. 구 블록 체제의 종말로 인해 이전에는 종속적이던 또는 약화된 세력들이 제국주의 질서에 자신들의 새로운 입장을 주장하고 있는 곳에서 각자가 모두에 대항해 광적인 투쟁을 일으켜 오고 있는 이 과정에서  말이다.

유럽에서의 이 새로운 전쟁의 심각성

유럽 대륙에서 공공연한 전쟁의 이 새로운 라운드의 중요성은 무시 될 수가 없다. 발칸 전쟁은 이미 제국주의적 혼돈이 주변 지역에서 체제의 심장부로 되돌아가는 경향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은 주요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대립 수준이 훨씬 덜 직접적이었던 붕괴되어가는 한 국가의  ‘내부’ 전쟁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국가들 의 유럽 전쟁 그리고  러시아와 서방 경쟁국들 간의 훨씬 더 공공연한 대립을 목격하고 있다. 전염병이 여러 수준 (사회, 건강, 생태 등)에서 자본주의 해체의 가속화를 표시한다면,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이 쇠퇴기 자본주의의 삶의 방식이 되었음을 그리고 군사적 긴장과 갈등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되고 있음을 강력하게 상기시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진군의 신속성에 많은 정통한 전문가들을 놀라워 했고, 우리 자신도 그것이 그렇게 빠르고 대규모로 이루어질지 확신할 수 없었다1  우리는 이것이 우리의 기본적인 분석틀의 결함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그것은 이 분석틀을 완전히 적용하는 데 주저함에서 비롯되었다. 이 틀은 이미 90년대 초 특정 핵심 텍스트2 에서 정교화되었는데, 여기서 우리는 퇴쇠의 이 새로운 단계가 점점 더 혼란스럽고 잔인하며 비이성적인 군사적 충돌로 특징지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비합리적인, 즉 자본주의 자체의 관점에서조차도3 . 자본주의 상승 국면에서 전쟁은 무엇보다도 식민지 확장의 길을 닦은 모든 전쟁은 승리자들에게 분명한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지만, 자본주의 쇠퇴기에 전쟁은 점점 더 파괴적인 역동성을 가정하고 다소 영구적인 전쟁 경제의 발전은 자본의 생산성과 이익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오고 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까지만 하더라도, 그 충돌의 끝에는 ‘승리자들’, 특히 미국과 소련이 있었다. 하지만 현 단계에서는 심지어 세계의 '최정상국가'들이 일으킨 전쟁마저도 군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실패로 판명되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굴욕적인 철수는 이것을 명백히 보여준다.

우리의 이전 기사에서 우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이나 점령은 1980 년대에  아프가니스탄에서 그것이 직면했던 그리고  소련 자체의 몰락에 강력한 한 요인이되었던 그 수렁의 새로운 버전으로 러시아를 몰아 넣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것이 우크라이나 침공이 직면하고 있는 전망이라는 징후들이 이미 있다. 이 침공은 상당한 무력 저항에 부딪히고 있고 지배계급 자체의 일부를 포함한 러시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인기가 없으며 러시아 국민 대다수가 직면한 물질적 궁핍을 확실히 더 심화시킬 러시아의 주요라이벌에 의한 일련의 보복제제를 유발했다. 동시에, 서방 강대국들은 이념적으로나 무기 공급과 군사적 조언을 통해 우크라이나 군대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 가능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침략 이전 러시아 제국주의에 대한 압력은 우크라이나 주변의 군대 동원이 단순한 무력 쇼에서 멈출 가능성을 날마다 줄이고 있었다. 특히, 나토가 우크라이나로의 궁극적 확장의 배제를 거부하는 것을 푸틴 정권은 용인할 수 없었고, 그 침략은 우크라이나의 군사 인프라의 상당 부분을 파괴하고 친 러시아 정부를 설치하려는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다. 오래된 러시아 제국을 복원하려는 거의 메시아적인 비전과 관련된 전체 프로젝트의 비합리성, 그것이 조만간 새로운 실패로 이어질 확실한 가능성은 푸틴과 그 주변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것을 결코 막을 수 없었다.

우리는 새로운 제국주의 블럭들의 형성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표면상으로 러시아는 이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의 '연합전선' 그리고 새롭게 활기찬 NATO에 직면해 있는데, 나토 안에서 미국이 분명하게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이길 수 없는 전쟁과 러시아 팽창주의의 공통된 위협에 직면한 나토의 응집력 증가로 인해 수렁에 빠지면 미국은 주요 수혜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응집력은 깨지기 쉽다. 침략 직전까지 프랑스와 독일은 외교적 해결책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푸틴 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추구하면서 자신의 게임을 하려고 했다. 적대 행위가 시작됨으로써 그들은 미국경제보다  훨씬 더 직접적으로 그들의 경제를 해칠지라도 제재 이행에 동의하면서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독일이 절실히 필요로하는 러시아 에너지 공급을 중단 한 사례). 그러나 유럽연합이 자체의 군대를 개발하려는 방향으로  움직임도 있으며, 무기 예산을 크게 늘리 겠다는 독일의 결정도 이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 또한 미국 부르주아지 자체가 러시아의 세력에 대한 태도를 놓고 주요한 분열에 직면하고 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는데, 바이든과 민주당의 경우는 전통적으로 러시아에 대해 적대적인 접근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지만, 공화당의 상당 부분은 매우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다. 특히 트럼프 전대통령은 침략이 시작되자 푸틴의 '천재성'에 대한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만약 새로운 미국 블록이 형성되는 것이 머나먼 일이라면, 러시아의 모험 또한 러시아-중국 블록의 구축을 향한 한 걸음을 나타낸 것이 아니었다.  중국은 최근에는 합동 군사 훈련에 참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리아와 같은 문제를 놓고 러시아에 대해 이전에 지지를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에는 러시아와의 거리를 두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러시아를 비난하는 투표를 기권하며 적대 행위의 중단을 요구하는 '정직한 중개인'으로 자신을 제시했다. 그리고 우리는 러시아와 중국이 미국에 반대하는 공통의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히 중국의 ‘새로운 실크로드’ 프로젝트에 관해서 그들만의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차이의 이면에는 러시아가 자신이 중국의 팽창주의 야망에 종속되는 것을 경계하는 데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안정의 다른 요인들도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터키가 맡고 있는 역할이 그것이다. 터키는 세계적인 위상을 높이려는 노력 속에서 어느 정도 러시아에 구애하고 있지만, 동시에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 리비아의 전쟁을 놓고 러시아와 갈등을 빚고 있다. 터키는 현재 다르다넬스 해협을 통해 흑해에 접근하는 러시아 군함을 차단하겠다고 위협했지만, 여기서 다시 이 조치는 전적으로 터키의 국익에 근거하여 계산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24 ICC 총회에서 국제 상황에 관한 결의안에 썼듯이, 국제 제국주의 관계가 여전히 원심분리적인 경향에 의해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은최후의 핵대결전의 위협에 시달리던 냉전 시대보다   안전한 시대에 우리가 살고 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만약 해체 단계가 부르주아지에 의한 통제력의 증대하는 상실 특징으로 한다면, 이것은 또한 , 재래식, 생물학적 화학적인 방대한 파괴수단들에도 적용된다. 이것들은 지배계급에 의해 축적되어 왔고, 이전 시대보다 훨씬 많은 수의 국가들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 우리는 훈련된 군사 블록 주도하는 전쟁을 향한 통제 행진을 보고있지는 않지만, 일방적  군사적 도발이나  야만적 사고의 위험을 배제 수는 없다” .4

러시아를 고립시키려는 귀청이 터질듯한  국제적인 캠페인과 우크라이나에서의 러시아의 전략을 저지하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들에 직면하여 푸틴은 핵 방어에 비상이 걸렸다. 이것은 현재로서는 얄팍하게 가려진 위협뿐일지 모르지만, 세계의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지배계급의 어떤 부분에 대해서도 그 궁극적인 합리성을 신뢰할 여유가 없다.

노동자계급에 대한 이념적 공격

지배 계급은 민중을, 무엇보다도 노동자계급을 전쟁에 동원하기 위해 폭탄과 포탄과 함께 이념적 공격을 개시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푸틴이 우크라이나를 운영하는 “나치와 마약 중독자”에 관한 조잡한 거짓말에 주로 의존해 왔으며, 전쟁을 둘러싼 국민적 합의를 구축하는데 크게 투자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계산 착오로 판명 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지배 그룹들 내부에서,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리고 사회의 더 넓은 계층들 사이에서 불화의 소문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거리 시위가 있었고 약 6,000 명의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여 체포되었다. 또한 우크라이나에 파견된 군대의 일부 사이에서 사기가 저하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나 수십 년간의 스탈린주의로 인해 혁명적 전통과 단절된 러시아의 노동자 계급에 근거한 전쟁 반대 움직임의 징후는 지금까지 거의 없다. 우크라이나 자체에서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상황은 더욱 어둡다. 러시아 침략의 공포에 직면하여 지배 계급은 “고국”의 방위를 위해 국민들을 동원하는 데 크게 성공했으며, 수십만 명이 그들 손에 잡히는 어떤 무기라도 들고서 침략자들에게 저항하려고 자원하고 있다. 수십만 명이 또한 전투 지역으로부터 피난하는 것을 선택했지만 민주주의와 민족국가라는 부르주아의 이상을 위해 싸우라는 요청에 계급분할의 현실이 잊혀진 곳에서 우크라이나 ‘인민’으로 흡수되어버린 프롤레타리아트의 분파들이 확실히 응답하고 있음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 우크라이나 무정부주의자들의 대다수는 이 대중 전선의 극좌파를 제공하고 있는 것 같다5.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배계급이 노동자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능력은 국제 노동자 계급이 동질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황은 서방 국가들에서는 다르다. 부르주아지는 그곳에서 노동자계급이 그 모든 어려움과 좌절에도 불구하고 제국주의 전쟁의 제단에 스스로를 희생하는 것을 못마땅해하는 태도에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직면해 왔다. 러시아의 점점 더 호전적인 입장에 직면한 서방 지배계급은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과 직접적인 군사력으로 크렘린의 모험에 맞서는 것을 조심스럽게 피해왔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의 통치자들이 수동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우리는 수십 년 동안 볼 수 있는 가장 조화로운 이데올로기적 친전쟁적 캠페인, 즉 “러시아 침략에 대항한 우크라이나와의 연대” 캠페인을 목격하고 있다. 언론은 좌우를 막론하고 친우크라이나 시위를 홍보하고 지지하며, 현재 크렘린의 미치광이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서방의 민주적 이상의 표준적인 담지자로서 '우크라이나의  저항'을 추켜 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희생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고 있다 - 러시아 에너지 공급에 대한 제재가 사람들이 집의 난방을 이미 어렵게 만들고 있는 인플레이션의 압력을 가중시키기 때문 뿐만이 아니라 , 우리가 듣기로, 우리가 "민주주의"를 방어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방위"지출을 강화해야 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언론지 옵서버의 수석 정치 평론가인 앤드류 론슬리는 이번 주에 다음과 같이 썼다.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그에 따른 군축 이후, 영국과 이웃 국가들은 노령화 인구에게 그들이 누렸던 것보다 나은 건강 관리와 연금을 제공하는  "평화 배당금" 주로 소비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점점 호전적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어에 많은 돈을 쓰기를 꺼리는 것은 계속되었다.나토의 30 회원국 3분의 1만이 현재 GDP 2% 자국 군대에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다.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은 목표치에 매우 미친다.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은 냉전시대에 보여준 것처럼 폭정에 맞서 자신들의 가치를 방어하겠다는 결의를 재발견할 필요가 시급하다. 모스크바와 베이징의 독재자들은 서구가 분열되고 퇴폐적이며 쇠퇴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에 대한 모든 미사여구는 패배하기 전의 소음일 뿐이다.6히틀러가 말했듯이, 총을 가질 수도 있고 버터를 가질 수도 있지만 둘 다 가질 수는 없음은 너무나 자명하다.

여러 나라의 노동자계급이 자신의 생활과 노동 조건을 방어하려는 새로운 의지를 보이고 있었던 것처럼7 , 지배계급에 의한 이 대대적인 이데올로기적 공세, 즉 민주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이러한 희생의 요구는 계급의식의 발전 가능성에 대한 큰 타격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전쟁에 의해 살아간다는 증거가 늘어나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동쪽이 든 서쪽이든 이 전체 시스템가 정말로 "퇴폐적이고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의 출현에, 자본주의 사회적 관계는 지구로부터 뿌리째 뽑혀야 한다는 인식의 출현에 한 요인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우크라이나에서 목격하고 있는 공포에 대한 분노가 제국주의 전쟁에의 지지로 향하도록 탈선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공격에 직면하여  노동자 계급의 국제주의적 소수의 임무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 시작은 지배 계급의 모든 거짓말에 대응하면서 자본주의와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과는 전혀 거리가 멀게 노동자 계급은 자신의 노동 및 생활 조건을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러한 방어적 투쟁들의 전개를 통해서, 그리고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경험을 가능한 한 널리 반영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은 과거의 혁명투쟁들, 특히 부르주아지를 강제해 제1차 세계대전을 종식시켰던 1917-18년의 모든 투쟁들과의 연결들을 새롭게 할 수 있음을 지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제국주의 전쟁에 맞서 싸우고 인류에게 전쟁의 근원인 세계 자본주의 질서를 제거하는 길을 준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모스

 

3 미래가 없는 사회 시스템의 이러한 근본적인 비합리성은 물론 이데올로기와 심리학 수준에서 증가하는 비합리성을 동반한다. 현재 푸틴의 정신 상태에 대한 히스테리는 반쪽짜리 진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왜냐하면 푸틴은 자본주의의 해체와 포퓰리즘의 성장으로 배출된 지도자들의 한 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언론은 이미 도널드 트럼프 사건을 잊었는가?

5  예를 들어서 크라임스이엔씨: 우크라이나 침략에 대한 러시아 아나키스트들: 업데이크와 분석 CrimethInc. : Russian Anarchists on the Invasion of Ukraine : Updates and Analysis.

6 자유민주주의는 그들의 가치를 방어해야 하고 서방이 약하지 않음을 푸틴에게 보여주어야 한다|앤드류 론슬리| 가디언 Liberal democracies must defend their values and show Putin that the west isn’t weak | Andrew Rawnsley | The Guardian

7 미국, 이란, 이태리, 한국에서의 투쟁들… 팬데믹도 경제위기도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성을 꺾지 않았다!| Struggles in the United States, in Iran, in Italy, in Korea... Neither the pandemic nor the economic crisis have broken the combativity of the proletariat! | International Communist Current (internationalis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