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online - 2021

워싱턴 국회의사당에 대한 공격 : 자본주의의 전세계적 해체의 심장부에 놓인 미국

이건 마치 바나나공화국에서 선거결과가 논쟁되는 같다”.  이 선언은 조 바이든의 승리가 확정되는 것을  막기 위해  모여든 수 백명의 도널드 트럼프 파르티잔들이 1월 5일 국회의사당을 침범한 뒤 나온 것이다. 미국 정치 상황에 대한 그렇게 혹독한 판단은 미국에 철저히 적대적인 사람이나 미국의 „좌파주의자“로부터 유래한다고 생각될 지 모른다.  전혀 그렇지 않다: 이것은 트럼프와 같은 당 소속인 조지 부시 전대통령이 한 말이다.  이는 그날 워싱턴에서의 사건의 심각성에 대해 많은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그 몇 시간 전에 백악관 앞에서, 대선에 패배한 대통령은 마치 제 3세계 선동가처럼 자신의 지지자들을 이렇게 부추겼다,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결코 승복하지 않을 것이다나약함으로는 우리 나라를 재정복하지 못할 것이다여기의 모든 사람들이 평화적이고 애국적으로 국회의사당 건물로 행진해 가서 목소리를 높일 것임을 나는 안다.”  살짝 가려진 이 폭동 요청에 부응하며, 복수를 원하는 군중들은 프라우드 보이스와 같은 세미-파시스트 트럼프주의 갱들의 주도하에 국회의사당을 향해 내셔널몰 거리를 걸어 내려 가서,  완전히 압도당한 경비대가 보는 앞에서 그 건물을 공격하기만 하면 되었다.  흑인 삶도 소중하다(BLM) 시위들이 있을 당시 바로 그 건물 앞에 배치된 인상적인 경찰이  통제력을 전혀 잃지 않았음에도 어떻게 국회 의사당으로의 진입을 막을 임무를 띤 경찰들이 공격자들이 그들 옆을 지나가도록 허용했을까? 

이러한 충격적인 이미지는 미국 민주주의의 이 상징물에 대한 공격이“정치적 9 월 11 일”이라는 이론을 뒷받침 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무질서에 직면해 당국은 상당히 신속하게 폭동 진압군을 배치했고  주방위군이 파견되었다. 시위 참가자 한 명이 총에 맞아서 결국에 죽었고 다른 세 사람이 사망했다. 군대가 워싱턴의 거리를 순찰하고 통행금지가 내려졌다.  이 경악스런 이미지들은, 마피아 도당들 사이의 처참한 경쟁들로 분열된 제 3 세계 “바나나 공화국”에서 선거 이후의 밤들과 참으로 닮았다. 그러나 전세계에서 신문 일면을 장식한 이 사건들은 과대망상적 군 장성 몇몇이 초래한 일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이 지구 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 “ 세계 최대 민주주의” 내부에서 발생했다. 

증대하는 무질서의 중심에 있는 세계대강국

셀피 스틱으로 무장된 백인지상주의자들로 구성된 군중에 의해,  광신적인 무장 민병대에 의해, 뿔 달린 털 헬멧을 쓴 음모론들에 의해 자행된 “미국 민주주의 성전에 대한 신성 모독”은 미국 사회를 감염시는 폭력과 비합리성의 명백한 표현이다. 정치 기구 내부에서의 균열들, 트럼프 당선 이래 포퓰리즘의 폭발은 자본주의 사회가 그 발끝에서 썪고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참으로, 우리가 1980년대 말 이래 주장하는 바와 같이1, 제 1차 세계대전과 더불어  쇠퇴기에 돌입한 자본주의 체제는 지난 수 십 년에 걸쳐 이 쇠퇴의 최종 단계인 해체 단계로 가라앉고 있다. 이 상황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 30년 전 동구권의 붕괴였다. 이 주요한 사건은 단순히 이 블록의 나라 정부들의 허약성을 표현할 뿐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전세계 자본주의 체제에 영향을 미치며 그 이래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 역사적 과정을 표현했다.

지금까지 이러한 해체의 가장 분명한 징후들은 이미 아주 허약한 “주변부” 국가들에서 보여지고 있다. 이런 저런 부르주아 파벌의 이익을 위해 총알받이 역할을 하는 성난 군중들, 일상적인 극도의 폭력, 모든 거리 모퉁이에서 발견되는 참담한 가난, 국가들과 전 지역들의 불안정화… 이 모든 것은 “바나나공화국”에서나 일어날 듯하게  보였다.

그런데 여러 해 동안, 이런 전반적 경향은 점점 더 뚜렸하게  “중심부” 나라들을 강타해 오고 있다. 물론, 모든 국가들이 동일한 방식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해체가 이제 가장 강력한 국가들을 타격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유럽에서 테러리스트 공격들이 배가되고 있고, 트럼프나 보리스 존슨과 같은 무책임한 개인들이 예상치 않게 승리를 거두며, 비합리적인 이데올로기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특히,  해체가 전대미문으로 가속됨을 그 자체로서 표현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팬데믹에 대한 대응은 재앙적이었다. 가장 “문명화된” 부분을 포함해서 자본주의 세계 전체가 야만성과 점점 더 급성 발작을 향해 가차없이 나아가고 있다.

만약 오늘날, 가장 발달한 국가들 중에서 미국이 이러한 부패로부터 가장 많이 영향을 받는다면, 그것은 불안정성의 주요 요소들의 하나를 또한 대표한다.  리얼리티 티브에서 성장한 억만장자 어릿광대가 대통령직에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한 미국 부르주아지의 무능이 이미 미국 정치 기구의 증대하는 무질서를 보여주었다.  그의 임기 동안 트럼프는 능숙한 비지니스맨의 섬세한 작전이라고 자랑스럽게 제시된 모든 종류의 신랄한 선언들과 혼란스런 거래들을 통해서 미국 사회의 분열의 악화, 특히 인종 분열 악화와 전 세계에서 무질서 조장을 멈추지 않았다. 우리는 그가 이란에 폭탄을 투하려는 것을 마지막 순간에 막은  미군사령관과의 충돌을, 또는 트럼프가  단지 몇 주 전에 “로켓맨”이라는 별명을 붙힌 김정은과의 “역사적인 회동”을  환기할 수 있다.

코로나 19 팬데믹이 발생한 후, 몇 십 년 동안 보건체계를 축소한 이후, 모든 국가들은 범죄적인 태만을 드러냈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도널드 트럼프가 이끄는 미국 국가는 국내적인 수준에서 기록적인 사망자 수2와 더불어 그리고 국제 보건기구와 같은 세계 협력제도를 불안정화하면으로써 국제적인 수준에서도  재앙의 선두에 서 있었다. 

광신적인 트럼프주의자 무리들에 의한 국회의사당 공격은 전적으로 사회의 모든 수준에서 이런 무질서 폭발의 일부이다.  이것은 인구의 상이한 부분들(흑인 대 백인, 엘리트 대 민중, 여성 대 남성, 이성애자들 대 동성애자들 등등) 사이의 전적으로 비합리적이고 폭력적인 충돌 증가의 한 표현이었다.  그것의 케리케쳐는 중무장한 인종주의자 민병들과 미칠듯이 열광하는 음모론자들에 의해 나타난다. 

그러나 이러한 “균열들”은 무엇보다도 미국 부르주아지 파벌들 간의 공공연한 대립들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트럼프 주변의 포퓰리즘 추종자들과 다른 한편으로는 국가 자본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에 더 관심을 갖는 이들 사이의 대치의 한 표현인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그리고 공화당 인사들 사이에서 국가와 군사 기구들 안에서, 큰 언론 매체에서 또는 헐리우드-의식들의 무대 위에서 포퓰리스 대통령의 몸짓들에 대항한  야당의 켐페인들은 꾸준했고 가끔은 매우 적의에 차 있었다.

상이한 부르주아 파벌 간의 이러한 충돌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미국과 같은 “민주주의”에서, 그리고 제 3 세계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것에 반대로 그러한 충돌들은 제도들의 틀 안에서 어느 정도 “질서를 존중”하면서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제 그러한 충돌들이 민주주의의 “모델” 국가 내부에서 이러한 폭력적 형태를 띤다는 사실은 지배 계급의 정치 기구 내부에서 무질서의 극적인 악화를 증언하고, 이는 자본주의의 해체로의 미끌어짐에 있어서 중요한 한 걸음을 이룬다.

그의 지지자들을 몰아치면서 트럼프는 여전히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대선 패배에 뒤 이은 그의 “초토화” 정책에서 새로운 선을 넘었다.  미국 자본주의의 입법적인 상징인 국회의사당에 대한 그의 타격은 공화당 내부에 분열을 야기했고,  아브라함 링컨의 당을 구하기 위해서 공화당의  가장 “중도적인” 부분은 트럼프가 민주주의에 대해 자행한 이러한 쿠테타를 비난하고 트럼프와 거리를 둘 수 밖에 없었다.  민주당은 이제 그의 가장 열광적 인 지지자들을 더욱 자극했던 트럼프의 무책임과 범죄 행위를 소리높혀 비판할 수 있었다.

전 세계 부르주아지의 경악에 직면하여 미국의 이미지를 복원하고 "자유와 민주주의의 땅"에서 혼돈의 폭발을 억제하려는 시도에서 조 바이든과 그의 일행은 즉시 트럼프와의 필사적인 싸움에 더욱 몰두했다. 신임 대통령 취임 직전에 더 이상 그의 재직을 허락하기 어려운 행동을 한 이 문제적인 국가 원수의 무책임한 행동을 비난했고, 그를 권력으로부터 제거할 것을 요구했다.

공화당 내각 장관들의 일련의 사임, 트럼프의 사임 또는 탄핵 촉구, 그리고 그가 핵 버튼을 누르지 않도록 그의 행동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도록 국방부에 권고하는 것은 정치 행위에서 현직 대통령을 제거하려는 의지를 보여 준다. 국회 의사당에 대한 공격 이후, 그 정치적 위기로 인해 트럼프를 지지했던 유권자의 절반은 트럼프에게서 거리를 둔 반면 나머지 절반은 민주주의의 신성한 사원에 대한 공격을 계속 지지하고 정당화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 경력이 매우 위협당한 것 같다. 그가 선출될 자격을 박탈하고 2024 년 선거에서 더 이상 출마가 불가능하도록 모든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한 이 대통령은 이제 단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있다. 그가 반란을 요구한 것에 대한 법적 조치에 직면해 제 살길을 찾는 것이다.

국회의사당 공격 당일 저녁 트럼프는 공격자들의 행동을 비판하길 거부하면서 그들에게 “ 평화적으로 집으로 돌아가길” 요청했다. 그 이틀 후 그는 더 한 발 뒤로 물러서면,  공격을 “혐오스러운 것”이라  부르며 그는  “ 폭력, 불법, 신체 상해에 분노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잠잠하다가 그는 자신의 선거 패배를 조용히 인정하고 바이든을 위해 왕좌를 내 놓겠지만 1월 20일 신임 대통령 취임식에는 불참할 것을 선언했다.

트럼프를 정치 무대에서 단번에 제거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지만,  포퓰리즘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이 반동적이고 모호한 이데올로기는 오직 사회적인 해체의 악화와 보조를 맞추며 입지를 넓힐 수 있는데, 오늘날 미국은 이러한 악화의 진원지이다.  미국 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더 분열되고 찢겨져 있다. 폭력은 국민 내부에서의 대립 (무장충돌을 포함)의 영구적인 위험과 함께 증가할 것이다. 미국 국민에 대한 바이든의 '화해'수사법은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 주지만, 이것이 부분적으로 또는 일시적으로는 성공할 지언정 이 세계 열강 내부에서의 사회적 혼란으로의 근본적인 경향을 막을 수는 없다.

미국에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가장 큰 위험은 부르주아지의 상이한 파벌들 간의 대결에 휘둘려 들어가는 것이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대부분은 '엘리트'를 거부하고 '운명의 사람'을 찾는 노동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트럼프는 산업을 재건하겠다는 약속 덕분에 “녹슨 지대”에서 많은 실업자 프롤레타리아를 집결 할 수 있었다. 트럼프 지지 노동자와 바이든 지지 노동자 사이에 대립구도가 세워지는 위험이 있다. 더욱이 해체로의 추락으로 인해서, 미국 고유의 인종적 분열도 심화되어 정체성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고 백인 대 흑인의 대결구도가 설정될 위협이 있다.

민주주의 수호를 내건 거대한 켐페인은 노동자계급에게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직에 접근할 수 있게 되면서 보았듯이, 정치게임에 대한  부르주아지의 통제력 상실 경향은 노동 계급이 자본주의의 해체를 이용할 수 있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반대로 지배 계급은 이러한 해체의 영향을 노동 계급에 대항해 돌리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이미 1989 년, 동구권의 붕괴가 자본주의의 해체를 눈부시게 표현했던 그 때, 주요 국가의 부르주아지는 이 사건을 이용하여 스탈린주의 정권의 야만성이 곧 진정한  코뮤니스트 사회인 것인 마냥 등호를 그리는 것을 목표로 하는 거대한 민주주의 캠페인을 전개했다.  “혁명적 전망의 죽음”과 “노동자 계급의 소멸”에 대한 거짓말은 프롤레타리아트의 방향성을 잃게 만들었고, 그 결과 그 의식과 전투성에 심각한 역류를 불러 일으켰다. 오늘날 부르주아지는 국회 의사당 사건을  도구화해서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영광을 위한 새로운 국제 캠페인을 개시하려 한다.

“반란자들”이 여전히 국회 의사당을 점령하고 있을 때 바이든은 즉시 선언하기를, “다른 많은 미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는 오랫 동안 민주주의에 대한 빛과 희망의 등대였던 우리 나라가 ...그렇게 어두운 순간에 왔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충격을 받고 슬펐다. 지금의 임무와 향후 4 년의 임무는 민주주의의 회복이어야 한다.” 그 후 공화당 내부를 포함하여 일련의 선언이 동일한 방향으로 진행되며 이어졌다. 특히 주요 서유럽 국가의 지도자들이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이미지들은 나를 화나게 하고 슬프게 했다. 그러나 나는 미국 민주주의가 침략자들과 폭도들보다 강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안겔라 메르켈은은 선언했다. 엠마누엘 마크롱은“ 우리는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사람들의 폭력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보리스 존슨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습니다.“ 평생 동안 미국은 가지 매우 중요한 것들을 옹호했다. 자유에 대한 이상, 민주주의에 대한 이상”.

기록적인 참여를 보인 대통령 선거를 중심으로 한 동원과  보다 더 "정의로운" 그리고 "깨끗한" 경찰을 요구하는 흑인 삶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세계 부르주아지의 많은 부분이 포퓰리즘에 반대해 민주 국가 수호라는 구호 뒤에 프롤레타리아트를 동원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독재자" 트럼프에 맞서 "민주당"파벌 뒤에 줄을 서도록 요청 받고 있다. 이 잘못된 선택은 순수한 신비화이자, 노동자 계급에게는 함정이다!

트럼프가 부추긴 국제적 혼란의 여명 속에서  민주당 바이든은 보다 공정한 세계 질서를 수립 할 것인가? 확실히 그렇지 않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 버락 오바마와 그의 부통령 조 바이든은 8 년 동안 끊임없는 전쟁을 겪었다. 중국, 러시아,이란 및 다른 모든 제국주의 ㄱ상어떼들과의 긴장은 기적적으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이든은 이민자들에게 더 인간적인 미래를 제공할까? 우리는 그 모든“위대한 민주주의자들”처럼 그의 모든 전임자들이 이러한“ 바람직하지 못한”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처리했는지 살펴보기 만하면 된다. 바이든이 부통령직에 있던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8 년 동안에 조지 W 부시 대통령 치하 8 년 동안보다 더 많은 수의  이민자들이 추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오바마 행정부의 이민자 대책은 트럼프 치하의 이민자 반대라는 심각화로의 문을 열었을 뿐이다.

노동 계급에 대한 경제적 공격이“민주주의로의 복귀”와 더불어 끝날 것인가? 확실히 그렇지 않다! 그 어떤 해결책도 없이 위기에 빠져든 그리고 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더욱 악화 된 세계 경제는 “민주적인” 정부들이 이끄는 모든 중심부 국가들에서 실업과 빈곤, 그리고 착취당한 사람들의 생활과 노동 조건에 대한 공격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조 바이든이 경찰을 "정리정돈"할 수 있다면, 모든 국가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민주주의 국가의 억압적 세력은 여전히, 생활 조건과 최소한의 기본적인 필요의 방어를 위한  노동자 계급의 그 어떤 움직임에 대항해 방출될 것이다.

미국이 “민주주의로의 회귀”를 이룬다고 해서 바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노동자  계급은 부르주아 국가의 민주적 파벌들의 자장가에 잠들거나 갇혀버려서는 안된다. 지배 계급이 대부분 좌파와 인민 전선의 지도 아래 수천만 명의 프롤레타리아들을 제 2 차 세계 대전에 동원하는 데 성공한 것은 파시즘에 대항하는 민주주의의 수호라는 바로 그 명목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자본 독재의 숨겨진 위선적 인 얼굴 일 뿐이다!

국회 의사당에 대한 공격은 인류를 함께 지옥으로 점진적으로 끌어들이는 죽어가는 시스템의 새로운 증상이다. 썩어 가는 부르주아 사회의 현실에 직면해서 오직 세계 노동자 계급만이 경제 위기의 영향에 대항해 자신의 계급 지형에서 투쟁을 발전시킴으로써 자본주의를 전복시키고 지구와 인류가 파괴될 위협을 종식시킬 수 있다.

ICC , 2021년 1월 10일

 

1영문판 국제평론 107호 “해체에 대한 테제(Theses on decomposition)” 와 국제평론 164호 “오늘날 해체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decomposition today)” 참조

2이글 작성 당시, 공식적인 미국의 코로나사망자는 363,581명이고 확진자는 거의 2천2백만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