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레타리아 혁명과 공산주의의 근본적인 성격중 하나는, 그들이 노동자계급의 의식적이고 집단적인 창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한다 : ‘계급의식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이전의 혁명을 동반했던 이데올로기적 과정을 똑같이 경험해야만 하는가? 프롤레타리아 의식은 과거 사회의 특징적인 그런 유형의 지적인 과정과 어떤 공통점을 갖는가?

모든 현존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계급의식을 구분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데올로기 일반으로부터 계급의식을 구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공산주의 혁명에 유익하게 될 생산력의 놀라운 발전과, 마찬가지로 사회사상들의 엄청난 발전도 참작해야 한다. 공산주의가 생산력의 발전과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의 심화에 의해 가능하게 되는 것처럼, 프롤레타리아 의식 또한 과거의 사회에서 발전해 온 전체 범위의 사상들에 그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경제적 사회적 위기의 압박 아래에서 이러한 사상들이 극복됨을 나타낸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발전은, 그러므로 이전의 지적 발전 기간 전체에 기초한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사실들의 일관성 없고 ‘자연적인’ 연속이나 사건들의 기계적인 연쇄로 파악하는 것보다 더 진실과 거리가 먼 것은 없다. 이와 같이 인간의 역사가 ‘운명’이라는 저항할 수 없고 맹목적인 힘에 의해 결정된다는 생각은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동물은 그 자신의 활동과 전적으로 동일시되지만, 인간은 그들의 삶의 활동을 의지와 의식의 대상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인간은, 자신의 실천 활동으로 사물의 세계를 창조할 때, 비유기적 자연을 가공할 때 인간이 의식적인 존재라는 것을 증명 한다 … 분명히 동물도 생산을 한다. 꿀벌, 비버, 개미 등등처럼 동물은 둥지, 주거를 짓는다. 그렇지만 동물은 자기나 자신의 새끼들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것만을 생산 한다 ; 동물은 단편적으로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보편적으로 생산 한다 ; 동물은 즉각적인 육체적 필요의 지배하에서만 생산하지만, 반면에 인간은 육체적인 필요가 없어도 생산하고 그 필요로부터 자유로울 때 진정으로 생산한다…그러므로 인간은 또한 미의 법칙들에 부합하는 것들을 만든다.”

(맑스, 1844년의 경제학 철학 초고』)

 

명확히, 인류에 의한 전적으로 자발적이며 명료한 세계 변혁을 이야기하는 것은 또한 거짓일 것이다. 더욱이, 인간은 역사를 추상적이거나 정신적인 방식으로 만들어가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자신의 역사를 만든다. 그러나 자기 마음대로, 즉 자신이 선택한 상황 하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주어진, 물려받은 상황 하에서 만든다.”(맑스, 『브뤼메르의 18일』)

 

행동은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의식은 존재에 의해 결정 된다” 생산력의 발전에서 도달된 순차적 단계는 사회사상의 진보에 반영된다. 인간, 좀 더 정확히 사회 계급이 생존 수단을 생산하고 자연적 사회적 환경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성취한 의식의 상대적 수준은 물질적 환경에 의해 엄격하게 결정된다.

인류의 모든 역사는, 인간들이 자신들에 대해, 다른 것들과의 자신의 관계들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계와 자신들의 관계들에 대해 의식하는 역량의 성장과 더불어 점점 더 생산력이 풍부하게 성장함을 보여준다.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발전과, 그 기반이 되는 물질적 혁명은, 이 유산을 계속 풍부화하고 능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