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들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해관계와 분리되어 별도로 존재하는 어떤 이해관계도 갖지 않는다.”(공산주의 선언)

 

매우 단순해 보이는 이 짧은 어구가, 우리의 관심의 대상인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이 어구는 그 자체 속에, 많은 해답을 갖고 있으며, 우리들에게 혁명가의 역할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이 어구는 우리가 앞에서 살펴본 모든 것들로부터 논리적으로 도출된다. 혁명은 진정 프롤레타리아들 자신의 일이며, 그 안에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 역량이 집중되어 있는 노동자 평의회의 일인 것이다. 그러나 이 단위 권력, 모든 노동자들로 이뤄진 이 조직은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노동자들의 세력은 전투 중에 재편되는 군대와 같다.”(판네쿡)

프롤레타리아트는, 적을 이기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목표를 의식하기 때문에, 자신의 일부를 산출해서 계급의식의 성숙을 가속화할 수밖에 없다. 그 자신의 모순되는 상황 때문에 결국 프롤레타리아트는 이러한 도구인 공산주의 조직을 만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한 공산주의 조직은 “기본적인 계급투쟁에서 역사적으로 등장하며, 변증법적 모순 속에서, 즉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투쟁기간 동안에만 자신의 군대를 소집하고 그 투쟁의 목적을 의식하게 된다는 변증법적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로자 룩셈부르크)

“ ‘(party)’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pars'에서 기원한다. 우리 맑스주의자들은 오늘날 당은 잘 정의된 계급의 일부라고 이야기한다.”(지노비에프) 공산주의 조직은 진정 노동계급의 한 분파를 형성한다는 점을 이해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막 비판했던 이론적, 실천적 오류들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왜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외부적 요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일부인가를 이해하는 것은, 또한 왜 그들의 행동이 모든 노동자들의 행동을 대신할 수 없으며, 그들이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이론적, 실천적 운동을 대체할 수 없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계급의식이 프롤레타리아트 외부에 존재하는 어떤 것의 의식이 아니라, 오히려 프롤레타리아트가 혁명적 계급으로서 스스로에 대해 갖는 의식인 것과 마찬가지로, 혁명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관계는 기원의 차이에 기초하지 않는다.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의 일부로서 살아가며, 그 의식을 동질화하는 데 기여한다.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 전체와 동일한 투쟁에 참여하고, 동일한 전반적인 실천에 참가하며, 동일한 강령을 만들고 풍부히 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이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개인적인 보물로서, 그들의 영특한 두뇌의 성과로서 어떤 이론도 가지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들의 이론적 귀결들은 결코 이러 저러한 자칭 세계 개량가들에 의해 발명되거나 발견된 이념들에, 원리들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 그러한 이론적 귀결들은 다만 실제 계급투쟁으로부터, 우리 눈앞에서 전개되고 있는 역사적 운동으로부터 솟아나는 실제 관계들을 일반적으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공산주의 선언)

 

공산주의 강령을 마치 그것이 10계명의 명판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혁명 강령은 신비스런 기원을 가진 것도 아니요, 변하지 않는 규칙도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계급 자체의 구체적인 산물이며 투쟁의 무기다. 혁명 강령은 사회와 노동자 투쟁의 궁극적 목적을 이론적으로 진술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그들에 선행한 실제 발전에 대한 세세하고 구체적인 분석이자,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상황을 그 물질적인 특성들과 더불어 철저하게 분석한 것이다. 강령은 실현될 목적과 이러한 목적들로부터 결과되고 이러한 목적들의 일부를 이루는 수단들을 한 번에 그리고 동시에 정의하고 있다. 이러한 수단들은 노동자들의 투쟁에서 나오는 실제적인 조건들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 때문에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역사적 필요에 대한 이론적 정련이자 동시에 혁명적 행동의 지침이다. 또한 바로 이 때문에 그것은 프롤레타리아트 전체의 실천의 결실인 것이다

역사적 유물론의 이론이 만들질 수 있게 한 것은, 영국의 노동자계급의 구체적인 상황과 실레지아(Silesian) 노동자들의 경험이 아니었던가? 레닌이 스스로 썼듯이, “이 시기 (프랑스 혁명기간) 영국 노동자들의 운동은, 많은 면에서 미래의 맑스주의를 이미 찬란하게 예기하고 있다.그리고 1871년 빠리꼬뮨 이후에, 맑스와 엥겔스는 혁명적 이론이 변화될 필요를 깨닫지 않았던가?

 

그 문구(Ⅱ절 끝에서 제시된)는 오늘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르게 서술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25년에 걸친 대공업의 엄청난 발전, 그리고 이와 함께 노동자계급의 당 조직이 개선되고 확장된 점을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우선 2월 혁명의 실천적 경험에, 그 다음은 더 나아가 프롤레타리아트가 처음으로 2개월간 정치권력을 장악했던 빠리꼬뮌의 실천적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이 강령의 몇몇 세부사항들은 오늘날 낡은 것이 되어 버렸다. 특히 꼬뮌은, 노동자계급이 기존의 국가 기구를 단순히 장악하여 그것을 자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는 없음을 증명해주었다.” (공산주의 선언』 1872판 서문)

 

이후에, 엥겔스는 『프랑스에서의 계급투쟁』(1895)의 서문에서, 혁명이 임박하다고 보는 생각이 적절치 않음을 깨달았다. 그 기간의 혁명적 사상에서 또 하나의 또 다른 변화였다!

그러나 일단 사회 혁명의 시대가 실제로 시작되자, 투쟁의 새로운 조건들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혁명의 이론을 풍부화하고, 노동자들의 실천에서 교훈들을 끌어내며, 오래되고 낡아빠진 생각들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강령에 어떤 변화가 있어야 하는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할 필요가 있었다. 사회민주주의의 혁명적 좌파들과 레닌은 새롭게 열리는 시대에 직면해서 제2 인터내셔널의 테제들은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음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첫 번째 사람들이었다.

우파 멘셰비키인 수카노프(Sukanov)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불가능함을 선언하기 위해서 사회민주주의의 강령을 기반하여 쓴 책을 인용하면서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카우츠키에 의해 쓰여진 그 매뉴얼이 그 당시에 매우 유용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매뉴얼이 물질적 역사 발전의 모든 형식들을 예견했다고 보는 생각은 버릴 때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을 천치라 묘사할 수밖에 없다.”(레닌, 『우리의 혁명』, 1923)

 

이미 1903, <러시아의 노동자 사회민주주의당(WSDPR)> 대회는 생산력 발전과 자본주의적 사회관계 사이에 증대되는 양립불가능성과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 관점은 여전히 추상적인 채로 남아있다. 그러므로 WSDPR의 멘셰비키 경향은 러시아의 경제적 낙후성을 이유로 러시아에서 예비적인 부르주아 혁명이라는 생각을 지지했다. 프롤레타리아트는 1905년이 되어서야, 그 투쟁과 평의회 조직의 실천을 통해 사회주의 혁명의 필요성과 객관적 가능성을 증명했다.

1905년의 사건들과 소비에트 창설에 의해 처음에는 완전히 압도당했던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가 그들에게 준 굉장한 교훈들을 재빨리 인식했다. 『사회민주주의의 두 가지 전술』에서 레닌은 이론적 형식으로, 이시기에 러시아를 포함한 세계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스스로에게 부과해야 할 최종 목표, 즉 사회주의 혁명의 수행이라는 목표를 설계한다. 프롤레타리아트의 경험에서 진정한 교훈을 뽑아낼 수 없었던 멘셰비키가 자신들의 잘못되고 실천적으로 증명하지 않은 신념을 강화해서 점점 부르주아 진영으로 빠져 들어가는 동안, 볼셰비키들은 반대로, 자신들의 계급을 계속 주시하며, 그들의 혁명적 역량을 증명했다.

19172월을 통해서 그들은, 비록 모든 것들이 전적으로 명확한 것이 아니었을 지라도(무엇보다 소비에트 // 국가 관계에 대해서는), 혁명에서 소비에트의 역할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더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가 실천에서, 레닌의 말처럼, “당보다 100배 더 좌파적”임을 보여주는 보기들은 충분히 많이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혁명가들이, 그들의 계급의 경험에 무관심하거나 자신들의 절대적인 무오류성 뒤로 은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천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에 항상 관심을 기울여왔음을 보여준다.

이 이후에는, 오직 맹목적인 사람이나 변하지 않는 강령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리를 모래에 쳐 박고 있는 사람만이 프롤레타리아 투쟁 그 자체를 통해 엄청나게 풍부해진 강령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맹목은 단순한 이론적 왜곡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맑스주의는 변하지 않는다라고 보르디가주의자들처럼 주장하는 것은 계급투쟁의 현실을 얼려버리고, 공산주의 이론에서 혁명적 내용을 제거하며 운동에서 비켜서 있는 것을 결과시키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강령의 “불변성”이라는 미명아래, 반세기 동안 반혁명적이었던 입장들을 자본의 좌익과 공유하는 것으로 끝날 수 있는 것이다

맑스주의의 입장에서 이야기될 때, 이론은 물질적 힘, 사회적 변혁의 힘을 부여받는다. 이제, “이론은, 그 자체가 대중들의 필요를 구현하는 만큼 대중들 속에서 실현될 뿐이다.(…) 사상이 스스로를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현실이 그 자체 안으로 사상을 일체화하려는 경향이 있어야 한다.”(맑스) 혁명 계급의 필요를 구현하기 위해서, 혁명 이론은 사회 진화 자체로부터 비롯되는 모든 요소들을 정확히 일체화해야 한다. 만약 혁명 이론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정밀화되고 세분화된 객관적 필요들을 통합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것은 경직되고 빈 껍질처럼 말라비틀어져, 더 이상 현재와 미래의 필요에 조응할 수 없는 죽은 문자가 된다. 왜냐하면, 혁명의 객관적 조건들이 더욱 더 명확해 질수록, 프롤레타리아트는 실천 속에서 그 조직적 도구들을 새롭게 하고 개선해 나가기 때문이다.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투쟁의 도구들과 그 실천들을 자신들의 역사적 필요와 그 운동의 객관적 가능성들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강령은, 프롤레타리아트가 그것을 유용하게 이용하고 완전히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실제적인 역사적 필요에 완벽하게 부응해야 하며, 단단한 현실로부터 그 풍부함을 끌어내야 한다. 강령은, 사회적 격변의 필요들에 순응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담지하는 계급의 교훈들을 흡수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기회주의와는 정반대이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혁명에 반대한 것은 맑스주의의 정통과 무오류성의 이름을 내건 가장 해악적 형태의 기회주의자들이었다. 반면에 혁명가들은 그들 계급이 투쟁 중에 겪는 격렬하고 거친 삶으로부터 이론적인 힘을 끌어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 한 적이 결코 없었다.

프롤레타리아트의 목표, 이론 활동과 실천은 분리될 수 없다.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화는 이론적이면서 동시에 실천적인 과정이다. 이론과 실천은 같은 토양에 뿌리는 내리고 있으며, 같은 원천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이론도, 실천과 마찬가지로 투쟁 속에서 성취되는 것이지, 외부의 중간자, 중간 매개물이나 ‘중재(mediation)’로부터 성취되지 않는다. 혁명적 이론은, 공산주의자들이 가장 명확하게 공식화시킨 것으로서, 프롤레타리아트 고유의 것이며, 그 집단적 실천과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결코 관념적인 학문(abstract science)이나, 세계에 대한 단순한 지식이나, 철학의 일종으로서 간주될 수 없다. 단순히 세계를 해석하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그것은 또한 세계의 변혁을 돕는다.

 

이제 이 모든 것들이 혁명가와 그들 계급의 관계에 대해 갖는 귀결들을 검토해보자.

 

1. 첫 번째 귀결은, 다음과 같이 완전히 직접적이다: 만약 혁명 이론이 학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계급의식이 이데올로기가 아니라면, 혁명가들은 학자나 이데올로그들과 어떤 유사점도 없다! 과거의 부르주아지와 혁명적 계급들에게는, 경제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의 분리, 사회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분리, 분업의 존재가 사상과 정치의 전문가들의 존재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회 변혁에 계급 구성원들 다수가 적극적이고 의식적인 참여가 필요 없었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경제적 하부구조의 수준에서 대격변이 발생했기 때문에, 과거의 혁명적 계급들은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의 방어를 좀 더 명확한 안목을 가진 정치가나 지식인들 소수에게 완벽하게 위임할 수 있었다. 정치 활동과 이데올로기적 반영의 전문화는 이러한 착취계급의 존재에 필수적이다.

 

지배계급의 소수가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사회의 절대 다수에 대해 갖는 이 계급의 권력을 표현할 뿐이다. 이러한 대리주의는 부르주아지에게는 필수불가결한 것이다. 왜냐하면 극단적인 분업과 기능분화에 기초하는 사회에서, 오직 정치 전문가들 소수만이 전반적인 이해관계에 대해 충분하게 의식적인 관점을 채택하여 그것과 모순되는 이해관계나 다양한 분파들에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하도록 요구되기 때문이다.”(‘조직에 관한 결의문(Resolution sur l'Organisation)’, 『국제혁명(Revolution Internationale), 17, 19758)

 

반대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는, “소수의 의식은, 그 소수가 얼마나 잘 알고 있든 간에 그 책무를 해내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책무는 모든 시기에 계급의 끊임없는 참가와 창조적인 활동을 필요로 한다.”(ICC의 강령)

프롤레타리아트가 의식적이고 자치적으로 조직해야 할 필요성은 그 책무에서 어떤 식의 배타성과 전문성도 당연히 배제되도록 만든다. 그러나 혁명적 소수들이, 프롤레타리아트가 그 목적에 관한 명확한 의식을 가지고 투쟁을 지속할 수 없음의 한 표현으로서 그리고, 이 상황을 극복할 필수불가결한 도구로서 출현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러한 소수들이 고유의 특권적인 기능이나 책무를 갖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정치나 사상의 전문가들도 아니고, 계급과 그 단위 기관들의 ‘두뇌들’도 아니다. 그들은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라는 옷을 걸치지도 않는다.

프롤레타리아트는 사회에 경제적 토대가 없기 때문에, 역할의 극단적인 분리, 즉 지적 노동과 육체 노동 사이에서 고유의 분리를 만들어낼 수가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체의 활동과 투쟁에서 분리된 전문가 집단을 만들어낼 수 없다. 더욱이 이러한 ‘무능력’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최종적인 이해관계와 그 전반적인 역사적 능력에 완벽하게 부응한다.

 

2. 또 하나의 중요한 귀결은, 혁명가들이 노동자계급을 혁명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당이 존재함으로써 혁명적 노동자계급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혁명가들이 존재하는 것은 바로 혁명적 계급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 계급의 전체 사회 운동의 원인이 아니다. 비록 혁명가들이 능동적이고 단호하게 참여한다고 해도, 그들은 하나의 동력에 대한 ‘최초의 동인(first mover)’이 아니라 그 산물이다.

 

존재가 의식적으로 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가장 의식적인 것들의 조직화가 이뤄지는 것이지, 조직된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존재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당과 계급투쟁을 연결하는 변증법적인 관계들 중 하나를 무시하고, 그들이 서로 동시에 반응하는 방법을 고려하지 않는 것은, 문제에 대한 부분적이고 그릇된 관점이 될 수밖에 없다.”(R.빅터, ‘자발주의와 혼란 (Volontarisme et Confusion)’, 『국제혁명(Revolution Internationale), 7, 19724)

 

이 잘못된 관점은 능동적인 정신을 활력 없는 물질에 대립시킴으로써 끝난다.

 

“‘정신과 물질’ 관계는 숨겨진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역사에 대한 헤겔주의적 사고의 문제적이고 희화적인 완성에 불과하다.(헤겔에게는, 관념이 현실에 선행하며, 현실 속에서 물질화된다. - 글쓴이의 주). 영혼과 육체, 신과 세계의 대립이라는 기독교적 도그마의 사변적 표현일 뿐이다. 이러한 대립은 사실상 역사적으로, 인류 자체 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 극소수의 선택받은 개인들은 능동적인 영혼으로서, 영혼 없는 대중, 즉 물질로서 간주되는 나머지 인류에 대립된다.”

(맑스,『신성 가족(The Holy Family), 1845)

 

그래서 바로 부르주아지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는, 생명이 없는 물질을 움직이기 위하여 외부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정신이 필요하다는 믿음을 만드는 경향이 있고, ‘능동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스스로는 움직일 수 없는 저능한 대중들’에 대립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부르주아지와 종교이데올로기는 또한 그래서 중개물, 매개물, 장해물을 계급과 실천 사이, 그리고 실천과 이론 사이에 두려고 애쓰며, 오직 영웅적 소수만이 사건들에 대해 행동하고 ‘대중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만들려고 애쓴다. 파업과 혁명이 소수의 ‘전문적 선동자’의 인위적 산물일 뿐이라는 생각을 퍼뜨리려고 온 힘을 다하는 것은 바로 부르주아지다.

 

독일의 계급 의식적 노동자들은 모든 근대 노동운동이 한 줌의 무절제한 ‘민심선동자들과 교사자들’이 만들어낸 인위적이고 자의적인 산물이라는 이러한 경찰 이론의 우스꽝스러운 측면을 이미 벌써부터 간파했다.(…) 만약 대대적인 파업이 혁명적 낭만주의자들의 격정적인 ‘선전’이나 당 지도부의 은밀하거나 공개적인 결정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러시아에서 진정한 대대적 파업은 아직껏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로자 룩셈부르크, 『대대적 파업, 당 그리고 노동조합(Massenstreik, Partei und Gewerkschaften))

 

그러므로, 혁명가들은 계급투쟁을 ‘만들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계급의 혁명적 운동을 창조해내지 않는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다음과 같이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러시아 혁명이 가르쳐주는 교훈은, 무엇보다도, 대대적 파업은 결코 인위적으로 ‘만들어지’거나 그냥 공허하게 ‘결정되고’, ‘선전되는’ 그런 어떤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은 특정 순간에 역사적 필요성으로 인해 그 사회적 관계들로부터 비롯되는 역사적 현상이라는 점이다.”(앞의 책)

 

이 생각은 트로츠키의 19172월 혁명의 분석에 의해 확인된다.

 

투간-바라노프스키(Tugan-Baranovsky)는 그가 2월 혁명은 노동자와 (병사로서의) 농민들에 의해 성취되었다고 이야기할 때 옳다. 그러나 아직 큰 의문이 남아있다. 누가 혁명을 이끌었는가? 누가 노동자들을 일어나게 했는가? 누가 군인들을 거리로 나오게 했는가? 승리 이후에, 이 의문들은 당 갈등의 주제가 되었다. 그것들은 보편적인 공식에 의해 간단히 해결되었다 : 아무도 혁명을 지도하지 않았다. 그것은 스스로 일어났다. (…) 마지막 순간까지, 이러한 지도자들은 혁명적 선언의 문제로, 많은 것들 중에서도 특히 혁명적 선언의 문제로 생각했지, 무장 봉기 문제로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비보르크(Vyborg) 지부의 지도자 중 하나인, 우리의 친구 카이우로프(Kayurov)는 명확히 단언한다. ’절대로 당 중앙으로부터의 어떤 주도권도 느껴지지 않았다. (…) 페트로그라드 위원회는 체포되어 있었고, 중앙 위원회의 대표, 슬리아프니코프(Shliapnikov) 동지는 다가오는 (혁명의) 날에 대해 어떤 지시도 내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날, 누구도 기대하고 있지 않았던 혁명이 펼쳐졌고, 위에서 보기에 운동이 이미 쓰려져 죽어 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 그 때, 돌연히 부활하여, 강한 격변으로써 승리를 쟁취했다.”(트로츠키, 『러시아 혁명사』 1)

 

3. 혁명가들은, 프롤레타리아 의식의 발전을 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순수한 의지의 힘으로써 실제 운동을 예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역할을 완수하기 위해 그들 계급의 집단적인 활동을 필요로 한다. 어떤 자발주의도 프롤레타리아트가 의식적이 되는 과정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한 소수는 비판적 의식 대신에 교조적 개념으로, 유물론적 개념 대신에 관념론적 개념으로 대체한다. 실제 상황 대신에, 단순한 의지가 혁명의 동기적 힘이 된다. 우리가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은 현존하는 상황을 바꾸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당신 자신들을 바꾸고 당신 자신들을 정치적 권력에 적응하게 하기 위해, 15, 20, 50년의 내전과 국제적 투쟁을 겪어야만 한다’라고 이야기하는 동안, 당신은 반대로 그들에게 ‘우리가 즉시 권력을 쟁취하든, 침대로 돌아가 잠을 자든지 둘 중 하나다’라고 이야기한다.”(소수 빌리히-샤퍼(Willich-Schapper) 경향과의 분리를 완성한 <공산주의 연맹 중앙 위원회>1850년 회기에서 맑스 말, 우리의 강조)

 

이러한 프롤레타리아트의 집단적 활동 동안에 노동자계급은 권력 쟁취와 사회 변혁을 위해 스스로를 준비하는 필수불가결한 체험수련을 하기 때문에, 그러한 활동은 대체될 수 없다. 어떤 소수 행동도 이 행동을 대체할 수 없다.

 

계급의 일부로서 혁명가들은 자본주의 안에서 계급투쟁 속에서는 물론이고, 자본주의의 전복과 정치적 권력의 행사시에는 더욱 더, 그 어느 때에도 계급을 대체할 수 없다.”(ICC의 강령)

 

혁명과 노동자 독재는 “계급의 일이어야 하지, 계급의 이름으로 지시하는 소수의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것은 노동자 대중들의 참여가 충실하고 진보적으로 발산된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항상 그들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어야 한다.(…)”(룩셈부르크, 『러시아 혁명』, 1906)

 

지배권을 획득한 이전의 모든 계급들은 사회 전체를 자신들의 전유 조건들 아래에 복속시킴으로써, 그들이 이미 획득한 생활상의 지위를 보전하고자 했다. 프롤레타리아들은 자기 자신의 지금까지의 전유 양식을, 그래서 또한 지금까지의 전유 양식 전체를 철폐함으로써만 사회적 생산력들의 주인이 될 수 있다. 프롤레타리아들에게는 지키고 강화해야할 자신의 소유라고는 없다. 그들은 지금까지 사적 소유를 보호하고 보장한 것들을 파괴해야만 한다.

지금까지의 모든 운동들은 소수의 운동들이었거나 혹은 소수의 이익을 위한 운동들이었다. 프롤레타리아의 운동은 압도적 다수의 이익을 위한 압도적 다수의 자의식적이고 독립적인 운동이다.”(맑스, 『공산주의 선언』)

 

과거의 혁명 계급들과는 대조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는 그 권력과 독재의 행사를 어떤 종류의 소수나 분파에게도 위임하지 않는다. 노동자들의 해방은 노동자들 자신들의 일이어야만 한다.

혁명가들의 역할은 그러므로 노동자계급의 이름으로 권력을 차지하는 것도,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제 다음과 같이 반박할지도 모른다 : ‘당신의 말에 따라서 혁명가들이 단지 노동자계급의 일부에 불과하다면, 그들의 책무가 그들만의 고유한 어떤 것이 아니라면, 그리고 그들이 프롤레타리아를 대신해서 행동하지도 권력을 쥐지도 않는다면... 그렇다면 그들은 뭘 해야 하는가?’

그러나 이런 의문 뒤에 있는 추론은 그것 자체로 잘못된 것이다. 보르디가주의자들과 평의회주의자들에게는, 당은 권력을 차지하지 않으면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각각 다른 결론에 이른다. , 전자에게는, 당은 그러므로 반드시 권력을 차지해야 한다는 것으로, 후자에게는, 그러므로 당이 쓸모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이 추론하지 않는다. 만약 당이 권력을 잡지 않는다면, 이는 권력 장악이 당의 기능, 즉 존재 이유가 아니기 때문이다. 당의 실질적이고 필수불가결한 역할은 그러므로 다른 곳에 있다. 그리고 그렇다고 해서 당의 중요성이 감소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오직 프롤레타리아트의 의식적인 의지만이 역사의 방향과 혁명의 가능성을 결정할 수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혁명가들의 조직과 당의 필수불가결한 성격을 마찬가지로 내포하고 있다. 이는, 그것이 어떤 불가능한 특유의 기능을 찾는 게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프롤레타리아트는 모순적 상황에 있고, 혁명은 그 결과가 미리 정해지지 않은 힘의 균형에 의존한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사실상 프롤레타리아트가 생산 관계 속에서 갖는 바로 그 위치가, 자본에 저항하는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을 결정하고 그 계급의식의 발전을 결정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러한 상황은, 우리가 보았듯이, 프롤레타리아트로 하여금 지속적인 이데올로기적 압력, 국가의 권력 (…)등등과 같이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는 사회의 모든 세력들의 희생물이 되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오직 심오한 위기의 순간들에만, 부르주아 사회의 붕괴의 순간들에만 프롤레타리아트는 스스로를 의식적인 계급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때문에, 심지어 그러한 순간에 조차도, 혁명에 관한 어떤 것도 결코 숙명적이지도, 기계적이지도 않다. 혁명적 운동, 프롤레타리아트가 끝까지 싸우려는 결심, 계급의식 - 이것들은 균질적인 현상들이 아니다. 그들을 보편화하기 위해서는 의지의 노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언제나 전투에 있어서 단호하고 투쟁의 마지막 목적을 가장 빨리 보는 계급 인자들로부터 비롯된다.

파업이 발발했을 때 일반적으로 무엇이 일어나는지 보라. 임금이 다시 하락하고 작업 속도가 빨라짐으로써 공장 전체에는 잠재된 불만이 가득하게 된다. 어떤 노동자들은 그들의 불만을 이야기하고, 그들 끼리 토론한다. 파업에 대한 생각이 구체화된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여전히 망설이며, 모든 부분들이 동등하게 전투적이지는 않다. 가장 단호한 노동자들은 토론을 통해, 그리고 그들 자신의 결단의 보기를 통해 반드시 그들의 더 많은 말없는 동지들을 설득시키려 한다. 이후에, 파업이 발발하면, 이런 인자들은 총회에서 나머지 동지들을 계속 자극할 것이며, 그들의 위상이 점점 더 증대됨을 볼 것이다.

그러므로 좀 더 전투적인 전위는 프롤레타리아트 내에서 자생적으로 나타나며 그 결단과 의식을 최대로 자극하고 일반화시킨다. 이런 점에서, 러시아 혁명의 역사는 본보기가 될 만하다:

 

러시아 혁명의 역사는, 가장 뛰어난 끈기와 자기희생으로 싸우는 이들이 바로 전위, 임금 노동자의 엘리트란 것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공장이 거대하면 거대할수록, 파업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더 완강했고, 그 해 동안 더 자주 새로워졌다. 도시가 크면 클수록, 투쟁에서의 프롤레타리아트의 역할은 그 만큼 더 컸다. 페테스부르그, 리가(Riga), 바르샤바(Warsaw)에서는, 즉 노동자들이 가장 의식적이고 가장 많은 이 세 도시에서는 노동자들의 총 수에 비해 상대적으로 놓고 볼때, 모든 다른 도시들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파업자들이 있었다. (…) 러시아에서는 – 아마도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의 경우도 그러하듯이 - 공업기술 노동자들이 프롤레타리아트의 전위를 대표했다. 계급의 가장 뛰어난 인자들이 선두에서 전진했으며, 망설이는 자들을 끌어당기고, 잠에 빠진 자들을 깨우며, 약한 자들에게 활기를 불어넣었다.(레닌, 1905년의 보고서』, 1917122)

 

우리는 이 과정이 1917년 혁명기 동안 좀 더 강력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본다. 여기서, 노동자들의 전위는 전 지역을 걸쳐서 선동의 진정한 작업을 수행했다.

 

그러나 봉기 전의 마지막 시기 동안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효과적이었던 것은 이름 없는 노동자들, 선원들, 군인들에 의해 수행된 개별화된 선전이었다. 그것은 하나씩 하나씩 개종자로 만들어내고, 마지막 의심을 부숴버리며, 마지막 망설임을 극복했다. 몇 달간의 열광적인 정치적 삶은 낮은 지위의 수많은 간부들을 만들었고, 수십만의 거친 다이아몬드 원석을 교육시켰다. 이들은 위가 아니라 아래에서 보는 정치에 익숙했고,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 학구적인 유형의 연설가들에게는 볼 수 없는 예리함으로 사실과 사람들을 평가했다. 페트로그라드 노동자들이 선두에 섰다. 그들은 사상과 일, 행동에서 독립적이며, 특출난 혁명적 기질과 높은 정치적 문화를 갖춘 선전가와 조직가 혈통을 배출해 낸 세습 프롤레타리아들이었다. (…) 대중들은 더 이상 망설임, 의심, 중립의 중간적 입장을 참아내고자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휘어잡고, 매료시키고, 설득하고, 정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공장은 전선으로 대표를 보내어 부대와 합류했다.(트로츠키,『러시아 혁명사』 3, 우리의 강조)

 

그 혁명에 대한 이러한 생생한 이미지는, 당을 전지전능한 참모본부로 바꾸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수동적이고 복종적인 보병대 같은 대중으로 바꾸는 그러한 시대에 뒤떨어진 청사진과는 얼마나 거리가 먼가!

혁명과 봉기를 향한 진군은 일종의 생동적인 발효 과정이다. 그러한 과정의 가속화와 전면화가 가능한 것은 오직 그 거대한 숨겨진 힘이 아직 터져 나오길 망설이고 있는 잠재된 삶과 의식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혁명적 전투는 외부로부터 떨어진 슬로건이나 명령에 의해 집단화되지는 않는다. 전위의 일은 단지 프롤레타리아트로부터 분출하는 결단을 ‘깨우는’ 것이다.

혁명가들과 노동자 전위의 행동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의 전투성을 부정하거나 그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러한 전투성을 본질적으로 보증하는 것들 중의 하나이다. 그들의 활동은 결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생성을 대신하지도 그렇다고 프롤레타리아트를 수동적으로 추종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그 혁명적 경향들을 가속한다.

그러나 혁명가들이 혁명의 자발적 전위를 형성하는 수천 수백만 노동자들과는 구별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들은 노동자 전위와는 별도로 그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엄청난 전투성과 결단, 그들의 활동의 지속성으로 구별된다. 혁명가들은 사실 그들 계급의 일부지만, 그저 여느 일부분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비록 당이 존재하는 운동을 가속할 뿐이기 하지만, 이러한 가속화가 역사적 사건들의 진행 경로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그런 순간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투쟁 동안에 노동자 전위가 자발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것이 혁명가들의 정치활동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준비된 것일 때, 훨씬 더 비중이 크고 의미가 있다. 그러한 정치 활동은 투쟁에서 연속성을 유지하고 미래를 위한 무기를 제련할 수 있게 한다.

룩셈부르크는 러시아의 1905년 파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그러나 동시에, 사회민주당의 격렬한 선전과 그 정치적 리더십 덕분에, 도시의 프롤레타리아트는 1905년의 봄과 여름 경제 투쟁의 기간을 통해서 1월에 있은 서막 사건으로부터 교훈을 얻어내고 혁명을 위한 미래의 책무를 깨달을 수 있었다.”(우리의 강조)

투쟁에서 주도적이긴 하지만 일단 파업이 끝나면 일반적으로 사라지는 무수한 전투적인 노동자와는 대조적으로, 혁명가들은 지속적으로 조직된 채로 남아있으며 사회학적 기준이나 특정 환경이 아니라, 정치적 기준을 기반으로 존재 한다. 혁명가들은 자신들이 방어하는 정치적 강령으로써 프롤레타리아트의 투쟁에서 그 역사적 이해관계를 촉진할 수 있고,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 일상적으로 저항함에 있어서 완고하게 방어하며 운동의 마지막 목적을 가장 비타협적으로 담지 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개입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활동으로 본다.

그러므로 당을 프롤레타리아트의 생동하는 부분이게 하고, 혁명가와 그들의 계급 사이의 연결고리의 확실성을 보장하는 것은 노동자와의 ‘물리적인 접촉’도 아니며, 전면적인 행동주의도 아니다. 그것은 바로, 혁명적 조직이 프롤레타리아 투쟁에 의해 명확화된 정치적 입장을 흡수하는 능력이다. 이렇기 때문에 혁명가들은 그저 계급의 한 분파가 아니라 가장 전투적이고 결연하게 조직된 전위이다.

 

따라서 공산주의자들은 한편으로는 실천적으로 모든 나라의 노동자 정당들 중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단호한 부분, 모든 다른 부분들을 추동해 나가는 부분이다. 다른 한편 그들은 이론적으로 여타 프롤레타리아트 대중에 비해서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진로, 조건들 및 궁극적인 전반적 결과들을 명확히 이해한다는 이점을 가진다. (…) 공산주의자들은 노동자계급의 당면한 목적들의 성취와 당장의 이해관계들의 강화를 위해 투쟁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운동 속에서 운동의 미래를 대변하고 보살핀다.”(맑스, 『공산주의 선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