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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당트자본주의에서의 프롤레타리아투쟁Submitted by ICC on Mon, 2007-02-05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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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2007년 현재 재인쇄하는 이 글은 원래 1980년에 작성된 것이어서, 확실히 25년이 넘은 지금이라면 우리가 다른식으로 설명했을 만한 그런 점들이 몇가지 있다. 특히 2가지 점들이 정정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새로이 산업화하는 국가들의 출현 가능성에 관한 것이다. 1980년에 우리는, 데카당스 자본주의의 조건 하에서 새로이 산업화된 국가들이 출현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함에 있어서 의심의 여지없이 너무 범주적이었다. 한국-다른 나라들중에서도-의 예는 이것이 사실상 맞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1997년에 작성된 글(„아시아의 용들의 기운이 다하고 있다“, 인터네셔널리뷰 제89호)에서 우리가 지적했듯이, 제 2차 세계대전에 뒤이은 한국, 대만 및 일본의 확장은, 소련지대의 확장에 대항한 완충지대를 만들려던 미국 제국주의의 필요와 경제적 개입에의 의해 대부분 결정되었다. 이글에서 매우 도식적으로 남아 있는 또 다른 측면은, 데카당스의 경제적인 메커니즘에 대한 설명, 특히 제 1차 세계대전이래 존재하는 위기, 전쟁 및 재건시기들 사이의 관계들이다. 특히, 전쟁에 의해 야기된 파괴의 역할이 전후 재건붐을 가능하게 만드는데 매우 결정적인 것으로서 제시한 바로 그러한 도식적인 방식은 확실히 정정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 글의 나머지부분과 관련하여 우리는, 그것이 전적으로 유효하며,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에 대한 그것의 결론들에서 그리고 자본주의의 상승기와 데카당스기에서 노동자 투쟁의 방법들에 있어서의 차이들에 있어서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에 포함된 분석은 이것이 씌여진 이래 노동자투쟁들의 구체적인 경험에 의해 더욱 강화되어오고 있다. ICC, 28/01/2007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마치 꿈 속의 악마처럼, 살아 있는 세대들의 머리를 짖누른다. 그리고 살아 있는 세대들이 자기 자신과 사물을 변혁하고 지금껏 존재한 적이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데 몰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때, 바로 그러한 혁명적 위기의 시기에 그들은 노심초사하며 과거의 망령들을 주문으로 불러내어 자신에게 봉사케하고, 그들에게서 이름과 전투 구호와 의상을 빌린다…“ (맑스, 루이 보나빠르뜨의 브뤼메르 18일, 1852,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제 2권, 287쪽, 박종철출판사) 계급투쟁이 되살아나고 있는 현 시기에, 프롤레타리아계급은, 부르조아계급이 고의적으로 직접적이고 공공연하게 만들내는 이데올로기의 무게 뿐만 아니라, 그 자체의 과거 경험에서 오는 전통의 무게에 직면해 있다. 노동자계급이 스스로의 해방을 위해서 이러한 경험들을 소화 흡수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것은 자본주의에 종지부를 찍게 될 결정적인 대결에 요긴한 무기들을 준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하지만, 노동자계급이 과거의 경험과 죽은 전통들을 혼동할 위험도 있기에, 살아 남은 것을, 즉 과거 투쟁들에서 영구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전적으로 과거에 속하는 상황적이고 일시적인 그러한 측면들로부터 구별해내는데 실패할 지도 모른다. 마르크스가 종종 강조했듯이, 이러한 위험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인 19세기의 노동자계급에게도 있었다. 급속한 진화를 겪고 있던 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계급에게는, 장인회( journeyman’s society)의, 바뵈프시대의 그리고 부르조아계급과 함께 봉건제에 대항한 그 자신들의 투쟁의 자취들과 같이 그 발생 초기의 낡은 전통들이 오랫동안 짐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1848년 이전 시기의 종파적, 음모적 및 공화적 전통들의 무게가 1864년에 창립된 제 1 인터네셔널에서도 여전히 감지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세기는, 급속하게 진행된 변화들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일대기로 볼때 한 시기, 즉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상승기에 위치하고 있었다. 이 시기 전체는 노동자계급의 투쟁에 있어서 매우 특이적인 조건들을 부여했다. 번영하는 자본주의로부터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생활조건의 개선을 획득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 체계가 번창했기 때문에 그 것을 파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러한 틀의 통일성이 19세기 노동운동의 상이한 단계들에 연속성을 부여했다. 계급투쟁의 방법들과 도구들은 점진적으로, 특히 조직화에 있어서 노동조합이라는 형식으로 고안되고 개선되었다. 각각의 이 단계들에서는 이전 단계와의 유사성이 상이성보다 더 컸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통들의 무게는 그 당시 노동자세대들에게 있어서 그리 큰 짐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가 나아갈 길을 제시해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급격히 변했다. 노동자계급이 수십년에 걸쳐 창출해낸 도구들의 대부분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고, 심지어는 계급에게 등을 돌려 자본의 무기가 되어버렸다. 노동조합, 대중정당들, 선거참여 및 의회주의가 그것들이었다. 이는 자본주의가 그 진화에 있어서 완전히 상이한 시기, 즉 그것의 데카당스 시기에 돌입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이제 프롤레타리아투쟁의 문맥이 완전히 변형되었다. 이제부터는 이 사회 내부에서의 점진적이고 지속적인 개선들을 위한 투쟁이 무의미해졌다. 자본주의는 그 한계의 끝에서 어떤 것도 양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의 발작들은 프롤레타리아계급에 의해 과거에 이루어진 수 많은 획득물들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제 1차 세계대전은 자본주의의 생애에서 두 시기 사이의 이러한 단절의 신호탄이었다. 혁명가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을 혁명가들로 만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은 체계가 그 쇠퇴의 시기로 돌입했음을 인식했다. 공산주의 인터네셔널은 1919년의 강령에서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새로운 세기가, 자본주의의 해체의, 그것의 내부적인 분해의 세기가 탄생했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의 공산주의혁명의 세기가.“ 그런데, 대다수의 혁명가들은 여전히 과거의 전통의 심각한 영향하에 있었다. 그 지대한 공헌에도 불구하고, 제 3 인터네셔널은 그 자체에 의해 이뤄진 분석이 갖는 함의들로부터 논리적인 결론을 끌어낼 수가 없었다. 노동조합의 배반에 직면하여 그것은 노동조합의 파괴 대신에 그것의 새로운 재건설을 제안했다. „의회주의적 개혁들은 노동대중에게 있어서 그 모든 실천적인 중요성을 상실했음“을 그리고 „정치적 삶의 무게중심이 완전히 그리고 결정적으로 의회로부터 이동해 버렸음“(제 2차대회의 테제)을 제 3인터네셔널은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제도에의 참여를 옹호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1852년의 말들은 명중으로 하지만 비극적으로 확인되었다. 1914년 제국주의전쟁이 발발하자 프롤레타리아계급을 혼란에 빠뜨렸던 과거의 무게는, 1917년에 시작된 혁명물결의 실패에 대해서도 그리고 그 다음 반세기동안 뒤따르게 되는 무서운 반혁명에 대해서도 대부분의 책임이 있다. 이미 이전 투쟁에서 장해물이었던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우리의 세기에서는 훨씬 더 무서운 적이다. 프롤레타리아계급이 종국에 승리하게 될 것인가는, 그것이 과거의 낡은 옷을 벗고서 그것의 투쟁에 대해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기“가 부과하는 요구들에 알맞게 스스로를 무장하느냐에 달려있다. 자본의 일생과 관련하여 그리고 프롤레타리아계급 자신의 투쟁의 목적과 방법과 관련하여, 자본주의의 상승기를 그 데카당스시기로부터 구분하는 차이들을 명확히 이해해야 한다. 다음의 글은 이러한 이해에 공헌하기 위한 것이다. 이글이 약간 평범하지 않은 방식으로 제시된 것은, 두 시기들 각각의 내부에 존재하는 통일성 그리고 이 두시기들의 표현들 사이에 종종 간주되는 차이들 양자 모두를 강조하기 위해서는 이 두시기들의 특징들을 나란히 제시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상승기의 특징들은 각 페이지의 왼쪽난에 데카당스기의 특징들은 오른쪽 난에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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