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Conline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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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남한 지배계급

민주주의라는 베일을 벗어던지는 남한 지배계급

우리가 한국으로부터 받은 소식에 따르면 사회주의노동자 연합 (사노련)“ 투쟁가8명이 남한의 악명높은 국가보안법 따라 체포 ,구형되었다고 한다. 판결은 1 27일에 이뤄질 예정이다.

이것이 정치재판이자, 지배계급이 정의라고 부르기 좋아하는 그것에 대한 희화화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점을 다음과 같은 3가지 사실들이 증언다

첫째, 남한 법정 자체가, 체포된 이들에 대한 경찰의 구속신청을 2차례에 걸쳐 기각했었다는 사실.

둘째, 투쟁가들이 이적 (,북한)단체구성혐의를 받았다는 사실. 그런데, 그들 오세철과 남궁원은 2006, „전쟁위협에 대항한 한국으로부터의 국제주의자선언 서명한 사람들에 속한다. 선언은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특히, „북한 자본주의국가(…) 노동자 계급이나 공산주의와 전혀 무관하며, 군사주의적 야만주의를 향하는 쇠퇴 자본주의의 일반적 경향의 가장 극단적이고 기괴한 형태의 하나에 불과하다라고 언명했다.

셋째, 오세철의 진술은 그가 북한국가자본주의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자본주의에 반대함을 분명히 한다는 사실

투쟁가들은 오직 사회주의자라는 사상범죄 때문에 피소된 것이다. 바꿔 말하자면, 그들은 노동자들에게 그들 자신, 가족들 그리고 생존조건을 방어하라 선동했다고, 자본주의의 진정한 본질을 명백히 공공연하게 폭로했다는 이유로 피소되어 법정에 서있다. 검찰이 요구한 판결은 남한 지배계급이 그에 대항하는 자들에 대응해 시행한 억압 사례들 한가지를 더하는데 불과하다. 이러한 잔혹한 억압은 2008 촛불시위에 아이들을 데려와서 이후 법적 그리고 경찰의 괴롭힘을 당했던 유모차부대 젊은 엄마들을 이미 겨냥해 행해졌었다. 점거된 작업장에 침입한 진압경찰에 의해 구타당한 쌍용자동차노동자들을 겨냥하기도 했다.

무거운 징역형의 판결이 예상되는 가운데, 체포된 투쟁가들은 법정에서 모범적으로 위엄있게 행동했고 기회를 재판의 정치적 본질을 분명히 폭로하는 활용했다. 우리는 아래에 오세철의 법정최후진술을 싣는다

최후진술

 

2010. 12.

 

오세철

자본주의 역사에서 위기에 대한 입장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하나는 파국론입니다. 자본주의 모순이 극에 달해 어느 순간 나락으로 떨어져 새로운 천년왕국이 것이라는 묵시론이나 극단적인 무정부주의가 자본주의 억압과 착취 밑에서 신음하는 무산자들을 미몽에 빠뜨렸고, 그러한 비과학적 태도에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부르주아지가 항상 내뱉는 낙관론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스스로 모순을 극복할 있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고 투기를 근절시키면 실제 경제는 운영되고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위의 가지 입장보다 더욱 세련되고 지배적 입장은 자본주의의 위기를 순환적 위기로 규정하고 조용히 참고 기다리면 비바람이 그치고 순탄한 항해를 있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19세기 자본주의에서 일어났던 광경이며 20세기와 21세기 자본주의 위기에 이상 적용될 없는 논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는 상승기에 있고 무한히 확장되는 19세기 자본주의의 위기였고 맑스도 공산주의자 선언에서 위기를 과잉 생산의 전염병으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과잉 생산의 경향은 기아, 가난, 실업을 가져왔지만 그것은 상품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많은 상품, 너무 많은 산업, 너무 많은 자원 때문이었습니다. 하나의 자본주의 위기의 원인은 경쟁을 통해 무정부로 체제를 끌고 가는 자본주의의 기능인데, 새로운 임노동과 상품을 찾아 새로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자본주의의 생산관계를 확장하고 심화시킬 있었습니다. 따라서 19세기는 위기의 순간을 건강한 심장이 뛰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20세기에는 1 세계대전을 정점으로 이러한 상승기의 자본주의가 마감을 하고 지구가 임노동과 상품의 생산관계로 확장되었습니다. 시기의 자본주의를 1919 코민테른은 전쟁인가 혁명인가 시기로 규정하였습니다. 한편으로는 세계시장의 쟁탈과 통제를 위한 제국주의 전쟁으로 나아갔으며 다른 편으로 과잉 생산 경향은 19세기와 달리 세계경제를 불안정과 파괴의 반영구적인 위기로 종속시키는 만성적인 것이었습니다.

결국 이러한 모순은 2천만의 목숨을 앗아가고 20-30% 실업자를 만든 가지 역사적 사건인 1 세계대전과 1929 세계대공황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는 쪽에 경제의 국가화를 통한 국가 자본주의라는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 다른 쪽에 사적 부르주아지와 국가 관료주의가 결합한 자유주의국가들을 형성시켰습니다.

2 세계대전 이후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들 포함하는 세계자본주의는 25 동안 재건과 부채 증가에 힘입어 예외적인 번영을 했으며, 정부 관료, 노조 지도자, 경제학자, 자칭 맑스주의자들까지 자본주의가 결정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했다고 호언장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67 파운드화의 평가절하, 1931 달러위기, 1973 오일 쇼크, 1974-75년의 경기 후퇴, 1979 인플레이션 위기, 1982 부채 위기, 1987 월스트리트 위기, 1989 경기 후퇴, 1992-93 유럽 통화의 혼란, 1997 아시아의 호랑이 위기, 2001 미국의 신경제 위기, 2007 서브프라임 위기, 2008 리먼 브라더스 금융위기, 2009-2010 재정위기로 더욱 심화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연속되는 위기는 순환적위기, ‘주기적위기입니까? , 아닙니다. 이는 자본주의가 결코 치유할 없는 , 지불능력이 있는 시장의 부족 때문이며 이윤율 저하 때문입니다. 1929 세계대공황은 거대한 국가 개입을 통해 극단적인 상황을 모면할 있었지만, 요즈음의 금융위기, 재정위기처럼 국가의 구제금융이나 국가부채라는 단기 처방으로는 자본주의라는 체제는 이상 생존할 없고, 생산력의 확대가 불가능한 막다른 길목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는 막다른 골목에서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국가부채에 의존하는 것이며 과잉생산의 출구를 가공적인 시장의 창조에서 찾는 것입니다.

지난 40 동안 세계 자본주의는 엄청난 부채를 짊어짐으로써 재앙을 피해 왔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부채는 마약중독자에게 마약이나 다름없습니다. 모든 부채의 결과는 지불 가능한 시장을 찾지 못하고 결국 세계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또한 세계 노동자의 가난, 제국주의 전쟁 그리고 생태적 재앙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끝나가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갑작스런 파멸이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역사에서 서서히 끝나는 마지막 단계, 체제 몰락의 단계입니다. 우리는 100 전의 전쟁인가, 혁명인가 화두를 진지하게 꺼내들고 다시 야만인가, 사회주의인가 말하는 역사적 인식과 과학적 사회주의의 실천을 준비해야 합니다. 이는 혁명적 맑스주의 원칙에 올바르게 사회주의자들의 단결과 통일을 요구합니다. 화폐, 상품, 시장, 임노동, 교환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를 넘어서서 자유로운 개인의 연합이 살아 숨쉬는 노동해방 사회의 건설을 위해서 말입니다.

잉여가치의 생산과 실현에서 이윤율 하락과 시장 포화로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총체적 위기가 임계점에 다다랐음은 이미 자본주의에 대한 맑스주의 분석으로 확인된 것이지만, 지금은 야만으로서의 자본주의와 문명으로서의 사회주의, 공산주의의 선택의 기로에 있음을 우리는 목도하고 있습니다.

, 자본주의 체제는 임금노예도 먹여 살릴 없는 체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매일 굶주림으로 10 명이 죽어가고 있고 10 미만 어린이는 5초마다 죽습니다. 8 4 2백만 명이 만성적인 영양실조로 고통 받고 있으며 60 인구 20억이 식품비 인상으로 매일매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하고 있습니다.

,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는 경제번영의 환상을 유지할 없는 체제입니다. 인도와 중국의 경제 기적은 환상임이 드러났으며 중국에서는 2008 상반기에 2천만 명이 해고 되었고, 6 7천개의 회사가 파산했습니다.

, 생태적 재앙이 예상되고 있습니다. 지구의 온난화를 보면 지구의 평균 온도는 1896 이래 0.6% 증가했고, 20세기는 북반구에서 지난 동안 이전보다 가장 심각한 온난화를 보이고 있습니다. 덮인 지역은 1960 이래 10% 감소했으며 북극빙하의 두께는 40% 감소했습니다. 평균 해수면은 20세기 동안 10-20% 상승했는데, 이러한 해수면 상승은 지난 3천년 보다 10 증가한 것입니다. 또한 90 동안 지구에 대한 약탈은 남벌, 토양 침식, 오염(공기, 수질), 화학 방사능 물질의 살포, 동식물의 파괴, 전염병의 폭발 등으로 나타나 생태적 재앙은 종합적이고 지구적 형태로 구성되어 앞으로 얼마나 심각해질지 예측할 없습니다.

그러면 자본주의의 억압과 착취에 맞선 계급투쟁의 역사는 어떠했습니까? 계급투쟁은 항상적이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1인터내셔널은 상승기 자본주의의 능력 때문에, 2인터내셔널은 혁명주의의 포기와 민족주의 때문에, 그리고 코민테른은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스탈린주의의 반혁명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특히 1930년대 이후의 반혁명세력은 국가자본주의의 본질을 호도하면서 사회주의 참칭하였고, 결국 세계자본주의 체제를 유지시키는 역할을 했으며 진영의 대립을 위장하면서 세계노동자계급을 억압하고 착취해 왔습니다.

더구나 1989 동구블럭과 스탈린 체제의 몰락이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명백한 승리”, “계급투쟁의 종말”, 그리고 심지어 노동계급 자체의 종말이라고 떠드는 부르주아지의 캠페인은 노동계급을 의식과 전투성 수준에서 심각하게 후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1990년대 동안 노동계급은 투쟁을 전적으로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시기의 투쟁의 기관이었던 노동조합에 필적할 폭이나 그리고 능력을 지니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1989 이래 노동계급이 다시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에서의 연금에 대한 공격에 대한 반대투쟁이 전기가 되었습니다. 노동자의 투쟁은 대부분 중심 국가에 영향을 주었는데, 미국의 2005 보잉과 뉴욕 교통의 투쟁, 독일에서는 2004 다임러와 오펠 투쟁, 2006 의사 투쟁, 2007 독일 텔레콤 투쟁, 영국의 2005 8 런던 공항 투쟁, 프랑스의 2006 CPE 반대 투쟁이 있고, 주변부 국가들로는 두바이의 2006 건설 노동자 투쟁, 방글라데시의 2006 방직 노동자 투쟁, 이집트의 2007 방직 노동자 투쟁 등이 있습니다.

2006 이후 2008년까지 벌어진 세계의 노동자 계급의 투쟁은 이집트, 두바이, 알제리, 베네주엘라, 페루, 터키, 그리스, 핀란드, 불가리아, 헝가리,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독일, 프랑스, 미국, 중국 세계로 확대되고 있으며 2009년부터 심화되는 대공황과 자본주의의 위기에 맞선 노동계급의 투쟁은 최근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에 대한 반대투쟁에서 보듯이 점점 치열한 공세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위와 같은 세계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쇠퇴의 마지막 경향과 위기의 노동자계급에 대한 전가는 예외 없이 세계노동자들의 필연적인 투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동물과 같은 야만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는 존엄성으로 행복하게 것인가의 기로에서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가 안고 있는 모순의 깊이와 폭은 이른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수준보다 더욱 심각하고 이미 노동자들의 투쟁의 성과를 쌓아온 유럽의 국가들의 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참상보다 훨씬 크다고 있습니다. 이는 G20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라는 허장성세나 총량적인 경제 지표로 말할 없는 계급적인 인간의 삶의 문제입니다.

자본은 본래부터 세계적이었고 민족 자본끼리의 경쟁과 다툼은 있었지만 항상 자본주의 체제의 유지를 위해 손잡고 위기를 은폐하고 노동자인 인간을 공격해 왔습니다. 노동자는 자본가와 싸우는 것이 아니라 이윤극대화와 무한경쟁의 법칙으로만 움직이고 유지되는 자본주의 체제와 싸웁니다.

역사적으로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맑스주의자는 이와 같은 인류사회의 역사법칙과 사회체제의 법칙의 본질을 파헤치고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한 방향을 제시하며 이를 가로막는 비인간적인 체제와 법칙을 비판하고 역사의 주인인 노동자계급과 함께 싸워왔습니다.

그를 위해 당이라는 조직을 만들고 투쟁적 실천을 왔습니다. 적어도 2 세계대전 이후부터 이러한 맑스주의자들의 실천이 법적인 제재를 받은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이들의 사상과 실천이 인류사회의 진보에 공헌했음을 높이 평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버금가게 맑스의 자본론이나 공산주의자 선언 저작들이 폭넓게 읽히고 있습니다.

이번의 사노련 사건은 한국사회가 얼마나 야만적인 사상 탄압을 하는 사회인지를 세계에 드러내는 역사적 사건이며 세계의 사회주의 재판 역사에서 오점으로 남을 것입니다. 앞으로 보다 공개적이고 대중적인 사회주의 운동, 맑스주의 운동이 세계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 폭넓게, 그리고 힘차게 펼쳐질 것입니다. 사법기구가 조직사건은 다룰지 모르지만, 사회주의 운동, 맑스주의 운동은 억압할 없을 것입이다. 이는 인류와 노동자가 존재하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주의 운동과 실현이 법의 죄의 대상이 없습니다. 오히려 존경과 신뢰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마무리하겠습니다.

- 사상의 자유, 학문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을 철폐하라!

- 역사의 주체, 생산의 주체, 권력의 주체로 나아가려는 모든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자본과 권력의 탄압을 중단하라!

-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자유로운 개인들의 연합을 만들기 위해 세계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경제불황, 전쟁, 사회적 붕괴- 계급투쟁만이 출구를 제공한다.

올 여름 경제위기의 극적인 첨예화는 자본주의 체제가 그 한계에 다달았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부채위기“는 문자그대로 은행의 파산일뿐만 아니라 전체 국가들의 파산을 백일하에 드러냈고, 게다가 그리스나 포르투갈과 같이 경제가 허약한 나라들 뿐만 아니라 유로지역의 주요국가들, 특히 세계경제최강대국 미국도 포함된다.

그리고 이 위기는 전세계적일 뿐만 아니라 역사적이기도 하다. 지난 몇년간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빚더미는 1960년대말 1970년대초에 이미 나타난 경제위기를 자본주의가 연체하거나 은폐하려한 시도들의 결과일 뿐이다. 또한 오늘의 “침체”가 진정한 불황으로서의 본 모습을 드러내면서, 우리는 이것이 실상, 1930년대에 생산 마비시켰고 그당시 세계를 제국주의전쟁으로, 즉 제 2차세계대전으로 몰아갔던 위기과 같은 심각한 위기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 위기는 자본주의 체제가 역사적으로 진부해졌음을 보여준다.

오늘의 불황과 1930년대의 불황사이의 차이는 오늘의 자본주의는 어떤 수단도 갖고 있지 않다는데 있다. 1930년대에 지배계급은 그 위기에 대항한 그들 자체의 야만적인 해법, 즉 제국주의 전쟁에 전 사회를 동원하고 세계를 새롭게 분활하는 것을 관철시킬 수 있었다. 재조직화는 2차 세계대전 후,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있었던 재건의 기적의 토대를 만들어냈다. 그 당시 이러한 가능성이 존재했던 것은 부분적으로, 세계대전이 자동적으로 자본주의의 자기파괴를 의미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전후에 새로운 제국주의 종주국의 출현 여지가 여전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의 옵션이었는데, 이는 그 이전에 노동자계급이 1차 세계대전에 뒤이어 혁명을 시도했었고 그러면서 스탈린주의, 파시즘 그리고 민주주의로 인해 그 역사상 가장 심각한 배패를 경험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계대전은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의미에서만 하나의 옵션이다. 사실상 전세계적인 제국주의전쟁으로의 길은 자본주의가 옛 양대 블록 구도의 붕괴 후 그 어떤 안정적인 제국주의적 연합도 이뤄낼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막혀있다. 그 길은 또한 자본주의 주요국가들에서 착취당하는 사람들 대다수를 이 체제는 그 수호를 위해 투쟁하고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설득하고 단합시킬 수 있는 이데올로기가 존재하기 않는다는 점에 의해서도 마찬가지로 가로막혀 있다. 이 두가지 요소들은 더 심층적인 어떤 것과 연결되어있는데, 노동자계급은 오늘날 패배당하지 않았고 여전히 자본주의에 대항해 그들 자신의 이해를 위해 투쟁에 나설 수 있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계급이 직면한 위험


이는 혁명으로의 그 어떤 자동적 현상이 존재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노동자계급의 혁명은 도대체가 결코 “자동적 현상”이 될 수 없는데, 이 혁명은 과거의 그어떤 혁명보다도 더 높은 의식수준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이 처음으로 연대원칙이 중심에 서 있는 그러한 한 사회에서 그들 자신의 생산과 분배에 대한 콘트롤을 넘겨받는 바로 그 순간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이 혁명은 점점 더 대대적으로 되어가는 일련의 투쟁들에 의해서만 준비될 수 있고, 그러한 투쟁은 다시 더 깊고 더 넓은 계급의식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1960년대 말 위기의 최근 시기가 시작된 이래, 노동자계급의 많은 주요한 투쟁들이 있었다. 685월 프랑스에서의 사건들이 유발했던 국제적인 투쟁물결에서부터 1980년 폴란드에서의 대중파업들과 1980년대 영국 광산노동자파업에 이르기까지. 비록1990년대에 계급투쟁의 오랜 역류가 있었지만, 지난 몇년동안에, 그들에게 그 어떤 미래도 제공할 능력이 없는 현 사회질서에 대해 적극적으로 “분노하는” (스페인어 개념대로 말하자면)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다. 튀니지, 이집트, 그리스, 스페인, 이스라엘 등등에서의 투쟁들에서 “혁명” 의 생각은 진지한 토론주제가 되었다. 1968년 파리, 1969년 밀라노의 거리들에서 그당시 그랬던 것처럼.

그러나 당장 이 생각은 아직 매우 혼란스럽고 막연하다. '혁명', 가장 분명하게는 튀니지와 이집트의 경우에서, 또 지금 리비아가 그런 것처럼 지배계급의 일부분으로부터 그 다른 한 부분으로의 권력의 단순한 이동정도로 이해되기 쉽다. 그리고 최근의 운동들에서, 지배체제에 대항한 투쟁은 계급투쟁임을, 즉 지배계급 전체에 대항한 노동자계급의 투쟁임을 분명히해야 함을파악한 것은 소수에 불과했다. 40여년간의 위기 이후 특히 자본주의의 주요국가 노동자계급은 1960년대말과 같은 모습을 더이상 띠지 않는다. 거대한 산업기지들과 강력한 계급투쟁의 집중지들은 사방으로 분산되었다. 전 세대가 지속적인 불안정과 실업의 원자화의 영향을 받았다. 노동자계급의 가장 절망적인 층들은 범죄와 허무주의 또는 종교적 근본주의에 빠져들 위험에 처해있다.

요컨대, 자본주의 사회의 길고 점점 더 첨예해지는 붕괴과정으로 인해, 노동자계급은 계급정체성을 재획득하고 사회의 지도력을 넘겨받아 그 사회를 새로운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을 형성하는 능력에 있어서 가장 심각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 착취에 대항해 투쟁하는 노동자계급의 모범이 없이는, 체제의 불평등하고 억압적이며 부패한 본질에 대항한 무수한 분노의 반응들이 있을 지언정, 그 자체만으로는 그 어떤 출구도 만들어낼 수 없다. 몇몇 반응들은 올여름 영국의 예에서처럼, 폭동, 봉기 및 수많은 약탈의 형태를 띨 지도 모른다... 세계의 다른 지역에서는 정당한 분노의 분출들이 지배계급에 의해 인도되어, 리비아에서 보여지듯이 제국주의의 한 진영에 대항해 다른 한 진영을 지지하는 용도로 투입될 수도 있다.

가장 비관적인 시나리오는, 피착취자들의 투쟁이 무의미하고 자기파괴적인 행동들로 분산되어버리고, 이때 노동자계급 전체가 너무 원자화되고 너무나 분열되어버려서 하나의 진정한 사회적 힘으로 출현할 수 없게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아무것도 자본주의가 우리 모두를 심연에 빠뜨리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는 세계전쟁의 전개가 없이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그 지점에 도달하지 않았다. 그와는 반대로, 새세대 노동자들은 경제적 붕괴, 제국주의적 충돌, 환경파괴라는 자본주의의 미래에 수동적으로 그리고 아무 저항없이 이용당할 용의가 전혀 없다는 많은 암시들이 존재하고, 이 새세대가 노동자계급의 더 나이든 세대들과, 자본주의로부터 생존의 위협을 받는 모든 이들을 자신들 주변으로 끌어모을 수 있다는 증후들이 존재한다.


세계혁명, 201191

 

 

부채위기는 어떻게 생겨났는가?

세계경제가 심연에 빠진듯 보인다. 대공황의 위기가 점점 가까와지고 있는데, 그것은 1929년의 대공황보다 심각할 것이다. 은행, 기초지방단체, 지방들, 심지어는 국가들도 오늘날 파산에 내몰리고 있다. 언론매체는 온통 부채위기灯에 대해 떠들어댄다.

부채장벽에 부딪힌 자본주의

다음의 그래픽은 1960년이래 오늘까지 전세계의 부채(1) 증가를 보여준다. 이러한 부채들은 전세계 국민총생산 대비 백분율로 표현되어진다.

그래픽을 통해, 1960 부채비율은 전세계 국민총생산의 100% 해당했지만 2008 이는 두배 반으로( 250%) 증가됨을 있다. 바꿔 말하자면, 1960 이래 전세계적으로 누적된 부채를 완전히 상환하자면 이는 전세계에서 일년 반동안 생산된 모든 생산물의 총합에 상응한다

소위 선진국灯의 이러한 극적인 경향은 또한 미국의 공채에 관한 다음의 그래픽을 통해 분명히 보여질 있다.

지난 몇년 동안 거대한 공채의 산더미가 생겨나서 증가가 거의 수직적으로 진행됨을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부채장벽灯이라 부른다. 그리고 자본주의는 지금 전력을 다해 부채장벽에 맞부딛혔다.

부채  자본주의 쇠퇴의 결과

세계경제가 이러한 부채장벽을 향해 치닫고 있음은 분명했다. 전세계의 정부들은좌우파를  막론하고, 극좌 극우를 막론하고, „자유방임지향 이건 국가개입灯지향이건을 막론하고 모두가 크레딧조건들을 점점 느슨하게 만들었는가, 결손이 점점 증가하게 내버려두었는가, 모든 짓을 다하면서 국가와 기업과 가계의 부채더미가 지난 50년간 증대되도록 방치하였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정부들이 그런식으로 대처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현재 빠져들고 있는 끔직한 침체가 이미 1960년대에 이미 시작되었을 것이다사실상 자본주의는 지난 몇십년이래 크레딧의 도움으로 살고, 생존해 있다 현상의 뿌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맑스가 현대사회의 크다란 비밀이라고 나타냈던것, 잉여가치의 창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우리는 여기서 간단하게 이론적인 서술을 필요가 있다.

자본주의는 처음부터 선천적 질병을 앓고 있다. 자신의 신체가 배설해낼 없는 많은 양의 , 과잉생산을 끊임없이 생산한다. 자본주의의 시장이 수용할 있는 것보다 많은 상품을 생산한다? 설명을 위해 순전히 단순화된 예로서, 콘베이어 벨트 노동자나 Pc작업을 하면서 매달100만원로정도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 생각해보자. 실상 그는 자신의  매달 임금총합에 해당하는100만원 가치의 상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200만원 가치의 상품을 생산한다. 그는 지불되지 않은 노동(잉여노동) 것이다. , 잉여가치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본가는 노동자로부터 훔친 (물론 그렇게 생산된 상품을 파는데 성공한다는 가정하에) 100만원으로 무엇을 하는가 돈의 일부를 자본가는 자신의   사적인 소비에 충당한다. 이를 대략 25만원이라고 치자. 나머지 75만원을 그는 자본금으로 자신의 회사에 투자한다, 대부분은 현대적인 새기계를 구입하는 등등의 형태로. 그러나 자본가를 이런식으로 행동하는가? 왜냐하면 그는 경제적으로 그렇게 할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자본주의는 경쟁에 기반한 체제다. 모든 자본가는  자신들의 상품을 동일한 상품을 생산하는 다른 자본가들에 비해서 싸게 팔아야 한다. 그래서 기업가는 생산비용, 임금을 낮추어야 뿐만 아니라, 점점 많은 부분의 미지불노동을 좋은 성능의 기계에 우선적으로 투자하는데자신의 생산성을 높이는데 사용해야 한다만약 그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현대화를 없고한편 이렇게 주의깊고 활동적인 경쟁자는  결국 싸게 생산하고 시장을 정복할 있게 된다.

자본주의 체제는 그래서 다음과 같은 모순이 특징적인데 노동자들이 사실상 생산한 것에 상응한 보상을 받지 못함으로써 자본주의에서는 자본가가 '분배' 있는 것보다 많은 가치가 발생한다는 점이다결코 자본가들과 노동자들 모두를 함쳐도 생산된 모든 상품들을 소비할 없다그래서 자본주의는 이러한 상품과잉을, 자신의 생산영역의 외부에 존재하는 아직 자본주의 생산관계에 의해 정복되지 않은 시장들에 팔아야 한다. 이는 자본주의외부의 시장들이라 불린다. 이것이 성공하지 못하면, 광잉생산위기가 초래된다. 이것이 바로 핵심에 있어서, '자본론'에서 맑스가  그리고 '자본축적론'에서 로자 룩샘부르크가 도달하게 결론들의 일부이다이를 좀더 분명하게 말하기 위해서 우리는 과잉생산이론을 몇몇 요점으로 요약해 보겠다.

 

  • 자본은 자신의 노동자들을 착취한다(달리 말해서, 그들의 임금은 그들이 생산한 실제 상품가치보다 낮다). 
  • 그렇게 해서 자본은 자신의 상품을 이윤과 함께, 임금과 잉여가치 그리고 생산수단의 비용들이 참작된 가격에 판매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는, 자본가들은 상품을 누구에게 팔것인가?
  • 당연히 노동자들이 상품들을 구매한다... 그들에게 지불된 임금의 한도 내에서그래서 아직도 판매되어야할 일부분이 여분으로 남게 되고 그것은 노동자들에게 지불되지 않은 부분에 해당된다. 왜냐하면 오직 부분- 잉여가치- 만이 자본으로 하여금 이윤을 얻게 하는 마술적인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자본가들도 물론 마찬가지로 소비를 한다...그리고 대부분 상당히 호화롭게 산다. 하지만 잉여노동을 통해 생산된 모든 상품을 그들 혼자서 구매할 수는 없다자본은 상품들을 스스로에게 판매함으로써는 이윤을 획득할 없다. 그것은 말하자면, 왼쪽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서 오른쪽 호주머니에 넣는 꼴이 것이다그런 식으로는 아무도 부유해질 수가 없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알고 있다...
  • 축적을 하기 위해서는, 성장을 위해서는 자본은 그래서 노동자와 자본가 이외의 다른 구매자를 찾아야 한다. 달리 말해서, 반드시 자신의 체제의 외부에 있는 구매자를 찾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에서 홍수를 이루는  판매될 없는 상품더미 위에 앉아 있을 밖에 없다. 그러면 과잉생산위기灯가 초래된다.

 

이러한 내적 모순”(내재된 과잉생산경향과 항상 외부의 시장을 찾아야한다는 강박) 체제가 출현이래 오늘날까지 갖고 있는 소위 믿을 없을 정도의 활력을 이루는 뿌리들중의 하나이다. 16세기에 자본주의가 출현한 이래 자본주의는 주변에 놓인 모든 경제영역들과  통상을 해야만 했다. 전세계의 낡은 지배계급들과, 농부들과 수공업자들과. 18세기와 19세기에 자본주의 강대세력들은 세계의 정복을 놓고 경쟁에 돌입했다. 그들은 차츰차츰 지구를 식민지들로 분할했고,. 그것을 서로 빼앗으며 진정한 제국을 건설했다. 가끔 두개의 세력들이 동일한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했다. 그러면 약자는 포기해야만 했고, 원주민에게 자신의 상품을 사도록 강제할 있을 지구의 다른 한조각을 찾아보아야 했다. 이렇게 자연경제들은 변화되고 차츰 차츰 자본주의 속으로 강제 편입되었다. 식민지들이 유럽과 미국에서 생산된 모든 상품들을 수용하는데 점점 실패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도 과잉생산이 발생했다.          

18세기와 19세기 자본의 이러한 활력, 과잉생산위기와 장기간의 복지와 확장시기의 반복 자본주의의 부단한 상승은 맑스와 엥겔스에 의해 매우 명확하게 서술되었다:

 

  • 공황시에는, 이전의 모든 시기에는 어불성설로 보였을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한다 과잉생산이라는 전염병이. 사회는 갑자기 순간적인 야만의 상태로 돌아간 것처럼 보인다; 기아와 전면적인 섬멸전이 사회로부터 모든 생활 수단들을 박탈해간 것처럼 보인다; 공업, 상업이 파괴된 듯이 보인다. 그런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 수단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공산당선언, 부르조아와 프롤레타리아, 1848, 칼맑스 프리드리히엥겔스저작선집, 박종철출판사, 1 406)
  • 자본주의가 아직 확장기에 있었고 당시 아직도 새로운 시장을 정복할 있었기에, 위기마다 새로운 재회복기가 뒤따를 있었다. „자신의 생산물의 판로를 부단히 확장하려는 욕구는 부르주아지를 지구상으로 내몬다. 부르주아지는 도처에서 뿌리를 내려야 하며, 도처에서 정착해야 하고, 도처에서 연계를 맺어야 한다. (…)  부르주아지의 상품의 가격은, 부르주아지가 모든 만리 장성을 쏘아 무너뜨리고, 외국인에 대한 야만인들의 완고하기 그지 없는 증오심을 굴복시키는 중포이다. 부르주아지는 모든 민족들에게 망하고 싶지 않거든 부르주아지의 생산 양식을 채용하라고 강요한다; 그들은 소위 문명을 도입하라고, 부르주아지가 되라고 강요한다. 한마디로 부르주아지는 자신의 모습대로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공산당선언, 같은 , 403 - 404) “
  • 그러나 이미 당시에 맑스와 엥겔스는 주기적인 위기의 뒤편에 있는 무언가를, 항상 많은 번영을  만들어낼 것같던 단순한 영원한 주기 이상의 무엇을 인식했다. 그들은 한층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심각한 모순들이 표현됨을 속에서 보았다. 새로운 시장들의 정복을 통해 부르주아지는 전면적이고 강력한 공황들을  준비하고 , „ 공황들을 예방할 수단들을 감소시킨다“(공산당선언, 같은 , 406).  또는, 공황들은 더욱더 빈번해지고 더욱더 격렬해지는데 까닭은 생산물들의 양이 많아지고 따라서 확대된 시장들에 대한 욕구가 커지는 것과 같은 정도로 세계시장은 축소되어 이용할 여지가 있는 새시장이 점점 적어진다...”(임금 노동과 자본, 1849, 같은 , 571)”

 

그런데 단지 작고 둥글뿐인 우리의 지구

20세기초, 모든 지역들이 정복되었다, 자본주의 강대국가들이 지구를 분할해 가졌다. 이후 그들은 어떤 새로운 지역도 정복할 없었고, 오히려  경쟁자들로부터 지역들을 무력으로 빼앗을 밖에 없었다. 이제 이상 아프리카나 아시아 |또는 남아메리카에서 식민지를 놓고 경쟁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자의 영향- 권력지대의 방어를 위한 치열한 전쟁이 현안이었다. 그래서 제국주의적 경쟁자들로부터 무력으로 지역들을 빼앗으려 시도할 밖에 없었다. 자본주의 국가들에게 있어서 그것은 진정 생존의 문제였다. 그래서,  아주 소수의 식민지만을 소유하고 있며 대영제국의 선의에 의존적(독일 부르주아지에게는 견딜수 없는 상황) 이던 독일이 통상을 해나갈 있기 위해 1914 1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독일은 강제적 상황때문에 공격적인 역할을 맡게되고, 역할을 히틀러는 나중에 2 세계대전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수출할 것이냐 아니면 죽을 것이냐“. 400년간의 확장후 자본주의는 쇠퇴하는 체제가 되었다. 이점에 대해 양대 세계대전의 악몽  그리고 1930년대의 대공황은 반론을 제기할 없는 극적인 증거를 제시한다.  그렇지만  그후 그때까지는 여전히 존재하던 자본주의외부 시장들이 완전히 고갈되는 1950년대에도 자본주의는 아직 치명적인 과잉생산위기에 빠져들지 않았다.

100년이상 서서히 진행된 단말마의 고통뒤에도 체제는 여전히 살아있다; 발부둥치면서, 비참한 상황에 놓여있긴 하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체제는 어떻게 생존해 있는가?   이체제의 몸은 과잉생산이라는 독에 의해 아직도 완전히 마비되지 않았는가? 해답은, 빚이라는 수단을 활용했다는 것이다. 세계경제는 점점더 대대적으로 채무를 짐으로써 극적인 붕괴를 피할 있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은 일종의 인위적인 시장이 창출될 있었다. 지난 40년은 침체와 크레딧주입이라는 도움에 힘입은 재회복의 연속으로 표현될 있다.  그런식으로 사적인 가계의 소비를 국가적인 도움으로 회복하려 시도했던 것만은 아니다... 아니, 국가들 자체가 라이벌  나라들에 대한 경제 세계경쟁력을 인위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 기간산업프로젝트에 투자하고 은행들에 저금리로 돈을 대어주고 은행들은 다시 기업과 가계들에 돈을 대출함으로써...) 빚을 졌다.  크레딧의 수도꼭지가 도처에서 활짝  열려 돈이 흘렸고 한발 한발 모든 경제영역들이 과잉채무를 갖게 되었다. 기존의 빚을 갚기 위해 매일 새로운 빚을 얻어야만 했다. 이러한 메커니즘은 어쩔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를 밖에 없었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이러한 막다른 골목의 가장 낮은 지점에 빠져있다. 부채장벽을 코앞에  맞대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부채위기灯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과용량灯의 모르핀과 같다

비유를 하자면, 부채는 자본주의에게 있어서, 죽을 사람에 있어서 모르핀이 의미하는 것과 같은 것을 나타낸다. 모르핀을 투여함으로써 병자의 위기는 잠시 경감된다병자는 안정을 얻고 달래질 수가 있다. 그러나 매일 의존성이 증가되고 점점 높은 용량의 모르핀이 투여된다. 처음에는 경감하는 작용을 했던 수단이 나중에는 해롭게 되고 결국에는 과용량으로서 작용하게 된다.

전세계적인 부채의 산더미는 자본주의의 역사적 쇠퇴의 증상이다. 세계경제는 1960년대 이래 크레딧에 매달려 있지만, 부채는 도처에 스려있다. 몸의 모든 부위로 파고들어 그것을 장악해 버린다. 점점 많은 은행들, 회사들, 지방자치단체, 국가들이 지불불능이고 그렇게 것이며 그들의 채무를 이상 상환할 수도 없고 이자를 더이상 지불할 수도 없다.

2007 여름, 1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된 자본주의 쇠퇴의 역사에서 새로운 장이 열렸다. 위기의 리듬을 점점 대대적으로 되어가는 크레딧 투입을 통해 제지하는 지배계급의 능력이 점점 약해지고 없어져 간다. 이제 중간 중간에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경제의 회복기도 없이 점점 많은 충격들이 있을 것이다지배계급은 위기에 대한  실제적이고 지속적인 해답을 찾을 없을 것이다. 이는 그들이 갑자기 무능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해결될 없다는 단순한 이유때문이다. 자본주의의 위기는 자본주의 자체내에서는 해결될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글에서 보여주려 시도했던 것처럼, 문제가 자본주의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체제 전체에 있기 때문이다. 체제 전체가 파산상태이다파웰, 26.11.2011


(1) 전세계의 총부채, . 모든 나라들의 가계, 기업 국가들의 부채를 의미한다.

       

 

 

                 

북아프리카, 근동 및 중동에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북아프리카와 근동 및 중동의 사건에 관한 토론을 위한 참고점들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으로서, 결과들은 현재 분명한 예측이 어렵다. 그러나 사건들에  관한 토론은 중요하며 이를 통해 혁명가들은 일관성있는 분석틀을 발전시켜 나갈 있을 것이다. 다음 사항들은 결코 그러한 자체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상황의 상세한 서술도 아니며,  단지 논쟁을 고무자극하는 것을 목표로하는 기본적인 참고점들이다.

 

 

1. 1848년이나1917-1919 이후 우리는 그렇게 광범위하고 동시다발적인 반란의 물결을 보지 못했다. 움직임의 진원지는 북아프리카(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그리고 알제리와 모로코) 있었는데,  가자지구, 요르단, 이라크 이란 예맨, 바레인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한편, 일련의 다른 억압된 아랍국가들, 특히 시리아에서 높은 경보가 울리고 있다. 중국의 스탈린주의적 체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항의의 메아리는 수단, 탄자니아, 짐바브웨, 스와질란드등과 같이 아프리카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울려퍼진다. 이러한 반란들의 반향은 크로아티아에서 경제위기의 영향과 부패한 정부에 대항한 시위에서도, 영국 학생시위의 플랜카드와 슬로건에서도 그리고 위스콘신에서 노동자투쟁에서도 느껴질 있으며, 다른 여러나라들에서도 확실히 그러하다. 이것은 모든 움직임들이 아랍세계의 그것들과 똑같다라고 말하는 것이이 아니다. 내용면에서도 요구사항들의 측면에서도, 지배계급의 반응에 있어서도. 하지만 현상 전체를 놓고 이야기할 있는 그러한 일련의 공통점들이 분명 존재한다.

 

 

2. 이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는 역사적인 맥락은 다음과 같다:

 

-         깊고 참으로 자본주의 역사상 가장 심각한 경제위기, 이로 인해 아랍국가들의 취약한 경제는  특히 심하게 타격을 받았고, 이미 수백만이 비참한 가난 속으로 빠져들고 있으며,  상황이 악화되리라는 전망만이 앞에 놓여 있다. 많은 노쇠해가는중심부 국가들과는 반대로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젊은 층은 무수한 젊은 전문 비전문인력의 실업과 전망부재로 특히 심하게 타격을 받았다. 모든 경우에서 이러한 운동의 최전선에  젊은 층이 있다.

-         지역의 모든 정부들의 견딜 없이 부패하고 억압적인 본질. 비밀경찰과 군대의 잔인한 행동이 오랫동안 국민들을 파편화하고 강압할 있었던 반면,  국가의 바로 그러한 무기들, 원자화와 공포는  이제 함께 모여 공동으로 저항하려는 국민들의 의지를 일반화하는데 기여했다. 이는 예를 들어 특히 이집트에서 매우 분명했다. 무바라크가 진압군과 사복경찰들을 타흐리르광장을 점령한 사람들에게 테러를 가하도록 보냈을 ,  이러한 도발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결의를 더욱 강화시켜  훨씬 많은 사람들이 항의시위에 동참하도록 만들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매일 생존을 위해 안간힘을 쓰는 동안 엄청난 사적인 부를 축적한 집권층의 탐욕과 치솟는 부정부패는 국민들이 두려움을 떨쳐버리자마자 반항의 불꽃을 더욱 불붙혔다.

-         많은 시위참가자들이 언급하는 이러한 갑작스런 공포의 상실은 국지적 지역적인 수준에서 변화들의 산물일뿐만  아니라, 국제적 수준에서 증대하는 불만과 명백한 계급투쟁의 기후의 산물이기도 하다. 경제위기에 직면하여 모든 곳에서, 착취당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강요되는 희생을 제공하는 것을 점점 달갑게 여기고 있다. 여기서 다시, 새로운 세대의 역할이 결정적으로 되었고 이런 의미에서  2년전 그리스에서 있었던 젊은이들의 반항, 영국과 이태리에서의 학생투쟁, 프랑스에서의 연금개혁 반대투쟁등도 아랍세계에 영향을 남긴 것이다. 특히, 지배계급으로서는 기존 관계들에 대항한 투쟁들에 대해 지속적인 보도통제를 하기 힘든 패이스북과 트위터 시대에.

 

 

3. 이러한 운동들의 계급적 성격은  단일하지 않고 나라마다 그리고 단계에 따라서 상이하다. 하지만 대체로 비착취계급의 운동들로서, 국가에 대항한 사회반란으로서 규정될 있다.  노동자계급은 일반적으로 반란들을 이끌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상당한 존재성을 드러내고  영향력을 발휘했다. 이는 운동에 의해서 제시된 그리고, 알제리에서의 파업들그리고 특히 이집트에서의 주요 파업물결들과 같은 그런 경우들에서는,  노동자투쟁의 특정한 발전에 의해 제시된  조직화의 방법들과 형태들 모두에 의해서 확인될 있다.  한편 이집트에서의 파업들은 무바라크를 폐기한다는 결정에 핵심적인 요소의 하나였다(이점에 대해서는 우리 다른 기사들을 참조바람). 나라들의 대부분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유일한 피억압 계급은 아니다. 농민층과  훨씬 오래된 생산양식들로부터 유래한 다른 계층들은 비록 매우 파편화되고 수십년간의 자본주의의 쇠락을 통해 파괴되었을 지라도 여전히 나라에서 무게를 갖고 있다. 반면 반란들의 중심이 되고 있는 도시들에서는 노동자계급화의 길에 들어 있긴 하지만 여전히 자체의  특수성을 가진 다수의 중산층 그리고 일부는 노동자 일부는 소상인과  룸펜화된 인자들로 이뤄진 대다수  슬램거주자들과 나란히 노동자계급이 존재한다. 가장 집중되고 경험많은 노동자계급이 있는 이집트에서조차도, 타흐리르광장의 목격자들에 따르면, 시위는 체제 상위계층을 제외한 모든 계급들 결집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비노동자 계급들의 비중이 중심부 국가들의 주요 투쟁들에서보다 훨씬 높았다.

 

4. 이러한 반란들의 계급적 성격을 파악하려는 노력 속에서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대칭적인 오류들 두가지를 피해야만 한다. , 한편으로는 운동 속의 모든 대중들을 노동자계급과 무조건 동일시하는 (국제공산주의그룹 Groupe Communiste Internationaliste 가장 특징적인 입장)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폭동들에서 긍정적인 점들 분명하게 노동자 계급적이 아닌 모든 것을 거부하는 . 여기서 제기된 문제는 1970년대 이란의 사건과 같은 이전의 사건들을 되짚어보게 한다. 당시에 우리는 한동안 노동자계급이 선두적인 역할을 가정할 있었던 하지만  결국 이슬람주의자들에 의해 운동이 전복되는 것을  막기에는 불충분했던 그러한  대중반란을 목격했다. 역사적인 수준에서, 노동자계급과  일반적인 사회폭동들 사이의 관계 문제는 또한 과도기에서의 국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문제는 모든 비착취계급들의 운동에서 그렇지만 노동계급이 계급자치성을 유지할 필요성에 직면하여 생겨난다.

 

5. 러시아혁명에서 소비에트 형식은 노동자계급에 의해 생겨났지만 모든 피억압자들에게 조직화의 모델을 제공했다. 비례감각을 잃지 않고도 -  왜냐하면 우리는 여전히 노동자계급이 다른 계층들에게 분명한 정치적 지도력을 제공할 있는 혁명적인 상황과는 한참 멀리 떨어져 있기에 - 우리는 노동자계급의 투쟁방법들이 아랍세계의 사회반란들에 영향을 주었음을 있다:

 

-         자기조직화의 경향 속에서, 이는 국민들에 대항해 범죄갱단들을 풀어놓은  이집트정부의 전술에 대응해서 출현한 이웃보호위원회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 타흐리르광장에서의 몇몇 대중집회들의 파견위원구조 속에서. 그리고 집단적인 토론과 결정과정 전체에서;

-         대규모의 결집와 조직화의 중심점을 제공하기 위해서,  보통이라면 국가에 의해 통제되는 공간을 점거한 점에 있어서;

-         정부가 출동시킨 경찰과 깡패들에 대항해 대대적인 자위단의 필요성을 의식했지만 그와 동시에, 폭력과 파괴와 약탈 자체는 거부한 점에 있어서;

-         기독교도와 회교도사이,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 신앙인과 비신앙인 사이, 그리고 남자와 여자 사이의 분열등, 정부에 의해 냉소적으로 조작된 종파주의와 기타의 분열들을 극복하려는 신중한 노력들 속에서;

-         일반 병사들과의 우애를 이뤄내려는 수많은 노력들 속에서.               

 

이러한 경향들이 노동자계급의 오랜 투쟁전통을 지닌 이집트에서 가장 강력하게 발전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데,  이집트의 노동자계급은 운동의 결정적인 단계에서 하나의 독자적인 세력으로 출현하여, 2006-7년의 그것과 같이 미래의 대대적 파업의 맹아들로서 간주될 있는 일련의 투쟁들을 전개했다. 이때 대대적 파업의 가장 중요한 많은 특징들 갖고 있었다. , 부문에서 다른 부문들로의 파업과 요구사항들의 자연발생적인 확장, 어용노조에 대한 비타협적인 거부와 자기조직화의 특정 경향들,  경제적 요구와 정치적 요구를 함께 제기한 . 여기서, 억압받고 착취당하는 사람들의 옹호자로 앞에 나서 새로운 사회의 전망을 제시할 노동자 계급의 역량을 대략 있다.

 

6. 모든 경험들은 진정한 혁명의식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단계들이다. 그러나 방향으로의 길은 여전히 길고 수많은 명백한 환상들과 이념적 취약성들이 걸림돌로 놓여 있다:

 

-         특히 민주주의에 대한 환상들,  이러한 환상들은 군사독재와 부패한  군주들이 조합되어 지배하는 나라들에서 특히 강력한데, 이곳에서는 비밀경찰이 편재하고 반체제 인사들에 대한 체포, 고문 처형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한 환상들은 민주주의적 반대파  국가 관리를 위한 대안적인 팀으로 부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집트의 바라데이와 무슬림형제들, 튀니지의 과도기정부, 리비아의 국민회의등과 같이. 이집트에서는 군대를 국민의 이라고 여기는 환상들이 특히 강하데, 타흐리르광장의 시위대에 대한 군대의 최근의 진압행동들은 확실히 소수의 일부가 이점에 대해 반추하도록 만들것이다. 이집트에서 민주주의의 신화의 중요한 측면은 독립노동조합에 대한 요구인데, 확실히 이러한 조합들은 불신임당한 공식 노조들의 해체를 상당히 정당하게 요구하는 대부분의 전투적 노동자들의 다수를 포함한다;

-         민족주의와 애국주의의 환상들, 이는 이집트와 튀니지에서 혁명들 상징으로 국기를,  또는 리비아에서처럼, 가다피의 지배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의 상징으로서 왕국 깃발을  채택한 점에서 보여진다. 또한, 이집트에서 무수한 깃발들에서  무바라크를 시오니즘의 앞잡이로 낙인찍는 것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가 계급투쟁의 주의를 전환시켜  제국주의적 충돌로 향하게 하는 중요한 지렛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팔레스타인문제를 제기하려는 관심이 그리 느껴지지 않는데, 왜냐하면 지배계급은 지금까지 팔레스타인의 고통을 그들이 자기 국민들에게 부과한 고통들로부터 주의를 돌리는 방법으로 사용해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른 나라의 국기들이 나라의 폭동에 대한 연대의 표시로 흔들어졌던  것에서 확실히 어느 정도의 국제주의적인 요소가  있었다. ‚아랍세계와 너머를 가로지르는 폭동의 규모는 국제주의의 물질적인 현실성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애국주의 이데올로기는 매우 적응력있는 것으로서, 이러한 사건들에서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형식으로 변모할 있는지를 목격하고 있다.

-         종교에 대한 환상들, 이는 공개적인 기도를 빈번히 이용한 점과  반란의 조직화 장소로서 회교사원을 사용한 점에서 보여진다. 리비아에서는 훨씬 특별하게 이슬람주의 그룹들 (가다피가 주장하듯이 알카이다에 연결된 것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자생적인 그룹들) 반란에서 초기부터 중요한 역할을 것은 명백하다. 이는 부족적 충성심의 역할과 더불어 리비아 노동자계급의 상대적인 허약성과 나라 국가구조의 후진성을 반영한다. 그런데, 라든 변종의 과격 이슬람주의가 무슬림국가들에서 대중들의 비참에 대한 해답이라 자처하는 점을 ,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반란들과  심지어 리비아 그리고  예맨과 바레인과 같은 걸프 국가들에서의 반란들 조차도, 작은 테러리스트 세포들을 통한  실천과 유해한 종파적 이데올로기를 가진 지하드 그룹들은  운동들의 대대적인 성격과  종파주의적 분열들을 극복하려는 진정한 노력들에 의해 거의 전적으로 주변화되어버렸음을 보여준다. 

 

7.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의 현상황은 여전히 진행중의 상태에 있다.��������������������������������������������������������������������������������������������������������������������������������������������������������������������������������������������������������������������������������������������������������������������������������������������������������������������������������������������������������������������������������������������������������������������������������������������������������������������������������������������������������������������������������������������������������������������������������������������������������������������������������������������������������������������������������������������������������������������������������������������������������������������������������������������������������������������������������������������������������������������������������������������������������������������������������������������������������������������������������������������������������������������������������������������������������������������������������������������������������������������������������������������������������������������������������������������������������������������������������������������������������������������������������������������������������������������������������������������������������������������������������������������������������������������������������������������������������������������������������������������������������������������������������������������������������������������������������������������������������������������������������������������������������������������������������������������������������������������������������������������������������������������������������������������������������������������������������������������������������������������������������������������������������������������������������������������������������������������������������������������������������������������������������������������������������������������������������������������������������������������������������하게 선언했다. 가다피 세력이 다시 승세를 보이기 시작하자 비행금지지역을 설정하거나 직접적인 군사적 개입의 다른 형식들을 사용할 것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데 글을 쓰는 시점에는 EU NATO사이에 깊은 분열이 존재하는 것같은데, 영국과 프랑스는 매우 강력하게 군사적 행동을 선호하고 미국과 독일은 매우 주저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군사적 개입에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지만 아랍세계에서 벌써 다른 골치거리에 빠져들 위험에 노출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 부르조아지의 어떤 부분들은 대량 테러라는 가다피의 저주 지역 전역에서 이상의 다른 소요를 막는 방법일지 궁금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리비아의 사건들과  진정 지역의 전체 상황전개가  세계부르조아지의 기괴한 위선을 폭로했다는 사실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가다피의 리비아를 국제 테러리즘의 온상(이는 사실 맞는 말이었다)이라고 수년간 비난했으면서, 2006 가디파의 심경변화와  대량살상무기폐기 결심은 사담 후세인의 소위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그들의 자세를 정당화하기 위해 씨름하고 있던 미국과 영국같은 나라들의 지도자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토니 블레어는 특히 어제의 미친 테러리스트 리더 당장 껴안았다. 단지 몇년이 지난 지금 가다피는 다시 미친 테러리스트 리더이고 그를 지지했던 자들은 급히 다투어  자신들과 사이의 거리를 두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것은 같은 이야기의 다른 판본에 불과하다. 거의 모든 최근의 또는 현재의 아랍 독재자들 미국과 다른 열강들이라는 든든한 뒷배경을 즐겼고 나라들은  지금까지는  튀니지, 이집트, 바레인 또는 사우디 민중들의 민주적 열망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가격폭등과 생필품의 품귀에 의해 자극된, 그리고 어떤 경우들에서는 폭력적으로 진압된, 이라키 쿠르디스탄의 현지배자들을 포함해 미국이 내세운 이라크정부에 대항한 거리 시위들의 발생은 더욱이민주주의적 서방 의해 제조된 공허한 약속들을 드러낸다.

 

10. 크로아티아의 어떤 국제주의 아나키스트들 (자그래브와 기타지역에서 진행중인 시위에 참여하기 전까지는 적어도) libcom.org 개입해서, 아랍세계의 사건들은 마치 1989 동구에서의 사건들의 재연처럼 보이며, 당시에 모든 변화열망은 민주주의라는 용어로 탈선되었고 이는 노동자계급에게 결코 아무것도 가져다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번의 새로운 운동 내부에 존재하는 민주주의의 신비화들의 명백한 위력을 놓고 볼때 매우 정당한 걱정이지만   역사적 순간들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를 놓치고 있다. 무엇보다도 세계 규모에서 계급역량의 외형 수준에서. 동구권의 몰락당시 서방의 노동자 계급은 정치적 수준에서 발전할 없었던 투쟁기의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고, 공산주의의 죽음과 계급투쟁의 종말에 관한 부수적인 켐페인을 거느린 동구블록 붕괴 그리고 자신의 계급 지대 위에서 대응함에 있어 동구지역 노동자계급의 무능력은 그래서 노동자 계급이 국제적으로 장기간 후퇴에 빠지는 것을 도왔다. 그와 동시에, 비록 스탈린주의 체제들 자체가 사실상 세계경제위기의 희생자들일 지라도, 이는 당시 분명하지 않았고 서구 경제에게는 세계자본주의에게 밝은 미래가 열리고 있다는 인상을 제공하는 작전을 펴기에 충분한 여유공간이 있었다. 자본주의 위기의 진정으로 총체적인 성격이 지금처럼 명백히 드러난 적이 결코 없었는데, 이것은 모든 곳의 노동자들이  그들 모두가 본질적으로는 실업, 물가등귀, 세체하에서의 전망부재라는 동일한 문제들에 직면해 있다는 것을 쉽게 이해할 있게 만든다.  그리고 지난 7-8년에 걸쳐 우리는 전세계에서 노동자 투쟁의 느리지만 진정한 부활을 경험하고 있는데, 이러한 투쟁들은 80년대와 90년대의 후퇴로 인해 상처를 받은 프롤레타리아의 새세대에 의해 주도되며 이러한 부활로 인해 정치의식화된 증가되는 소수를 다시 전세계적 규모로 출현하고 있다. 이러한 심오한 차이들로 볼때, 아랍세계에서의 사건들이 중심부 국가들의 계급투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 보다는 오히려 미래의 발전을 강화시킬 실질적 가능성이 존재한다.

 

-         대대적이고 불법적인 거리행동의 힘을, 세계 지배자들의 평정을 뒤흔드는 능력을 재확인함으로써;

-         획일적이고 생각없는 광신도 무리로서의 아랍인 관한 부르조아의 선전을 파괴함으로써 그리고 이지역 대중들의 토론하고 반성하고 스스로 조직하는 능력을 보여줌으로써;

-         아랍세계를 향한  곡절을 통해 타산성과 무자비함이 돋보이기게 중심국가들의 리더들의 신빙성을 더욱 침식함으로써;

 

이들 기타의 다른 요소들은 처음에는 중심부 국가들의 노동자들 다수보다는 정치의식화된 소수에게 훨씬 명백할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국가와 대륙의 경계를 넘어선 계급투쟁의 진정한 단일화에 기여할 것이다. 하지만 어떤 것도, ‚민주주의 독립노동조합 기쁨들을 수년간 경험하고, 역사적 정치적 전통들이 넓지는 않을 지언정 깊이 뿌리내려 있으며,  세계제국주의체제의 심장부에 집중되어 있는 선진국 노동자계급의 책임을 경감시키지는 않는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에서 노동자계급이 민주주의의 환상들과 단절하고 무산자 민중을 위해 뚜렷한 길을 제시할 있는 능력은 여전히, 중심부 국가 노동자들이 자기조직화되고 정치화된 프롤레타리아 투쟁의 분명한 예를 제공할 있는 능력에 근본적으로 달려있다.  ICC, 2011 3 11.                                           

 

  

       

 

 

 

 

  

 

 

 

 

스테판 헤셀의 두 책, „분노하라!“와 참여하라“!”에 대하여

스테판 헤셀의 , „분노하라!“ 참여하라“!” 대하여

 분노하기, 그래  자본주의 착취에 대해서!

     작가이자 서정시인 그리고 프랑스외교관인 스테판 헤셀의 글들, „분노하라!“ 참여하라“!” 진정한 베스트셀러들이다.  지금 벌써 글들은 세계의 불의에 대해 고민하는 모든 사람들의 참조점이 되었다. 최근에 스페인전역으로 멀리 퍼져나간 (그리고 그정도는 아니라도 다른 유럽나라들에서 있었던) 사회적 분노의 운동은 심지어 스스로를 분노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며 헤셀의 첫번째 책과 분명하게 관련지었다[1]. 

   분노하라!“ 대략 30쪽분량의 글이다. 여러 언어들로 번역되었고 되도록이면 많은 보급을 위한 터무니없이 값으로 전세계적으로 수백만부가 팔려나갔다. 책의 출판은 처음부터 매우 성공적이었다. 아주 당연한 이유로, 왜냐하면 책제목 자체가 이미 세계의 야만성에 대항한 절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억압당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확산되는, 그리고 점점 참을 없고 적대적으로 보여지는 세계 전역에서의 가난과 전쟁이 초래하는 공포가 촉발한 그러한 감정에 들어맞는다. 튀니지와 이집트에서의 아랍의 봄과 분노한 사람들운동이 이를 증명한다.

 

 

스테판 헤셀은 어떤 사회를 꿈꾸는가?

 

   현재 93살인 스페판 헤셀은 부정의한 세상에 대한 자신의 분노를 표현할 만한 정력을 여전히 갖고 있다.  이렇게 볼때는 오직 경의와 공감을 불러일으킬 밖에 없다. 하지만, 그의  시각으로 우리는 어떤 사회를 위해 투쟁해야 할것인가라는 문제가 논의될 필요가 있다.

   그의 초입부터 이미 스테판 헤셀은 2 세계대전 종결시 국민저항의회(CNR)[2] 경제강령작성의 계기가 원칙과 가치들을 옹호한다. 방침들이 아직도 여전히 현실성을 갖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헤셀은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당연히 지난 65년동안 사정이 달라졌다. 오늘날 우리는 레지스탕스 시대의 도전들과 똑같은 도전들 앞에 서있지 않다. 그당시 우리들이 제안한 강령은 오늘날 형태로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으며,  이점을 감아버려서도 안된다. 그러나 우리가 그당시 따랐던 가치들은 동일하고 우리는 그것들을 계속 존중해야한다. 그것은 바로 공화국과 민주주의의 가치이다. 각각의 정부들은 이러한 가치를 놓고 평가될 있다. 국민저항의회의 강령에서 특정한 비젼이 제시되었고 비젼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윤의 독재와 돈의 독재에 맞서는 , 한편에는 극도의 가난과 다른 한편에는 오만한 부가 나란히 존재하는 것에 분노하는 , 경제적으로 봉건적 상태를 탈피하는 ,  진정으로 독립적인 언론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 모든 형태의 사회적 안전을 보장하는  우리가 그당시 지향했던 일련의 가치들와 성취들, 모두가 오늘날 위협당하고 있다. 최근에 결정된 많은 대책들이 레지스탕스시대의 동지들을 경악시키는데, 그것들은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들을 겨냥하기 때문이다.  내생각에,  사람들은 특히 젊은이들이 분노해야 한다. 그리고 저항해야 한다!“[3].     그러나 누가 이러한 상황에 책임이 있는가? „이는 오직, 레지스탕스가 맞서 싸웠던 금권력이 지금 어느때보다 막대하고 불손하며 이기적이고 국가 최고위층까지 스며들어 자체의 이익옹호자들을 갖고 있기에 가능해 보인다. 사이 사유화된 은행들은 그들의 배당금과 매니저들의 넘쳐나는 수입만 생각하지 공익에는 관심이 없다. 빈부의 차이는 갈수록 커져가고 돈과 영향력을 향한 노력은 점점 많은 의미를 획득하고 있다.“[4] 헤셀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지도자들의 행동을 이끌어야 한다는데,  금융계나 은행가들의 이기주의와는 반대로 민주주의는 공중의 이해를 도모하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그들에게 말한다: '그것을 포착하고 분노하라!'라고. 정치, 경제의 책임자들, 지식인들 그리고 사회 전체는 양보해서는 안되며, 평호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현재 금융시장의 국제적 독재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5]  그러니까 이것이 공중의 극도로 성스러운 이해라는 것이다. 정치가, 경제지도자와 노동자, 실업자, 학생, 퇴직자, 비정규직을 결합하는 것이... 바꿔 말하자면, 스테판 헤셀의 민주주의는 하나의 신화이다. 그것은 착취자와 피착취자가 마치 기적처럼 같은 눈높이로 만나는 상태를 그럴듯하게 그려낸다, 그들이 소위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가지며 금융시장의 독재에 대항해 국민들로서 동일한 민주주의적 이해를 옹호하는 그런 상태를.  그러면 모든 것은 어디로 이끄는가?

   오늘날 고민하고, 글을 쓰고 민주적으로 정부들의 선거에 참가함으로써 우리는 사정을 현명하게 ...간단히 말해서 장기적인 시야를 가지고 이끌어가길 바랄 있다.“[6] 그러면 그의 견해에 따르면 우리는 어느 쪽을 지지해야 하는가? „나는 나자신을 여전히 사회주의자로, 내가 개념을 파악하는 바대로, 사회적 불평등을 의식하고 있는 사회주의자로  본다. 하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자극들을 받아야 한다. 용감한, 필요하다면 '건방진' 좌파가 나타나서 비중을 가지면서 국민의 자유라는 비젼을 주장하기를 나는 바란다. 녹색당이 의회에 진출해서 환경보호 사상이 진전을 이루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7] 결국 헤셀의 견해로 볼때 우리의 분노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는 구호, 우리는 투표하러 가야 한다를 받아들이는 것을 초래한다. 우리는 국민저항의회(CNR)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그리고, 극좌파, 반국제화주의자, 노동조합주의자들 등등, 자본의 전반적인 이해를 충심으로 옹호하는 당과 조직등 각양각색의 모든 사람들을 포괄하는 새로운 대안적인 강령( 다른 저작으로서 간행될) 찬성해야 한단다. 다행히도, 헤셀이 특히 대상으로 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수많은 젊은이들은 모든 좌파성향의 언설에 귀기울이지 않았고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서 사회주의적 정부들이 하는 짓을 있는 충분한 기회를 가졌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정당들이 어떤 혹심한 긴축정책들을 펼수 있는지를, 게다가 정책들이 완전히 민주주의적 방식으로 결정되는 것을 자신들의 눈으로 직접 경험할 있었다(이는 그리스에도 해당된다). 그리고 그들은 민주주의적 사회주의 사파테로정부의 민주적 경찰의 곤봉도 경험해보았다.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헤셀은 계속해서 정당들을 지지할 것을 주장하고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그로부터 젊은 세대들에게 있어서 어떤 임무들이 생겨나는가? 우리는 그들이 지배자들을 신임하거나 불신함에 있어서 기반하고 있는 가치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가치들이다. 이러한 가치들의 도움으로 결정권자들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있다.“[8]  어떤 영향력을 젊은 세대가 그들에게 그렇게 많은 비참을 강요하는 민주적 국가들에 행사할 수있는가?  아마 눈밖에 장관 한명쯤을 대체할 있을까, 그리고 그다음은? 그것을 통해 진정으로 무엇이 바뀌겠는가? 아무것도 아니다! 모든 나라에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집권하고 있는 것이 우파정부든 좌파정부든 (아니면 남아메리카에서처럼 극좌파정부든) 상관없이, 생존조건의 전반적 악화에 직면한 국민 대다수와 경제의 파산을 모면하기 위해 엄격한 긴축정책을 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국가기구사이의 골은 점점 깊어만 가고 있다. 어떤 다른 길도 없다. 국가의 민주주의적 가면뒤에 자본의 독재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를 손대지는 말것!

 

   나의 세대는 세계혁명이라는 생각에 대해 단단한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약간은, 우리가 그것과 함께 태어났기 때문이다. 나는 러시아혁명의 , 1917년에 태어났고, 해는 인격의 특징이다. 나는 우리가 폭력적 혁명적 행동들을 통해서는 기성제도권을 무너뜨릴 없다는, 그렇게는 역사를 추진할 없다는 느낌을, 부당할지도 모르지만,  갖게 되었다.“[9]  약간 나중에 헤셀은 계속해서, „ 모든 사회들 속에는 고삐풀린 나타날 있는 잠재된 폭력이 존재한다. 식민지해방투쟁때가 그러한 경우이다. 폭동들, 예를 들어 노동자폭동들은 아직도 가능함을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경제적 국제화의 진전을 놓고 가능성이 적다. 제르미날이라는 장르는 약간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10]

   그러니까 헤셀이 젊은 세대에게 하는 호소는 다음과 같다. 세계혁명이니 계급투쟁이니 하는생각을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모든 것은 과거사에 속한다. 오히려 체제의 기능방식을 개선하도록 노력하라. 어떻게? 여기서 헤셀은 천재적이고 혁신적인 제안, 모든 좌파정당들이 백년도 되는 동안 해온 제안을 내놓는다. , 세계의 강대국들이 함께 모인 경제회의 사회회의, 일종의 전세계조정위원회의 창립을 제안한다. 세계에서 전세계적 조정위원회가, 위기 방지를 위해 그리고 이윤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모든 거대 금융기관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서 경제규제를 목표로 추구할 것이라 한다. UN 전신인 국가연맹이 1차대전후 공식적으로 거의 동일한 설립이유로 창립되었음을 상기해 보자.  설립이유는 상이한 국가들의 이해를 서로 화해시키는 국제기구의 도움으로 전쟁재발을 방지하자는 것이었다. 결과는? 2 세계대전과  1950년이래 세계에서 14일간의 평화. 사실상 세계는 서로 경쟁하는 국가들로 조각나있고 그들은 서로간에 무자비한 통상전쟁을 끊임없이 그리고 필요시에는 무기를 들고 치르고 있다.   모든 조정하는 세계기구들”(세계통상기구, 국제통화기금, UN, NATO)  안에서 국가들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강탈적인 기구들일 뿐이다.  그러나 이점을 스테판 헤셀은 결코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하나의 새로운 체제의 필요성, 국제적인 혁명의 필요성을 시인해야만 할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이러한 착취체제 자체를 과격하게 문제시하게 되도록 이끌 출구를 제시하기 보다는 오히려 그들을 막다른 골목으로 보낸다.  대신에 그는 각국이 새로운 사회- 경제안전보장회의 내에서 새로운 정책을 펼치도록 각각의 국가에 압력을 행사하도록 젊은이들을 고무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국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대대적인 개입, 국민의 광범위한 동원이면 충분하단다. 이러한 참여는 젊은이들이 NGO들와 이런류의 다른 단체들에 대거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한다는데,  이는 많은 도전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치뤄야할 많은 투쟁들, 환경, 사회, 반인종차별, 평화 연대적인 경제를 위한 투쟁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한다.  실제로 헤셀은 우리에게 낡은 똑같은 개량주의적 뒤범벅을 제공한다. 직접 고른 재료들(국민의 시민참여, 지적인 선거참여 등등) 가지고 자본주의는 자신이기를 착취체제이기를 멈출 있고 인간적이고 사회적일 있다는 것이다.

 

 

개량이냐 혁명이냐?

 

   역사는 이러한 도전의 댓가인 일련의 연이은 격렬한 요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회사는 전진하고 결국에, 인간이 완전한 자유를 획득한 , 우리는 완성된 민주국가에 도달한다라고 헤셀은 그의 , „분노하라!“에서 우리에게 말한다. 인류가 도전 앞에 서있다는 것은, 그래서 모든 문제들의 해답을 찾아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사라질 것이라는 말은 맞다. 문제의 중심에는 사회변혁의 필요성이 놓여있다. 하지만 어떤 변혁? 자본주의는 개량될 있는가? 아니면 새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파괴되어야 하는가?

   자본주의를 개량하려 하는 것은 헛된 일이다. 이를 행하려는 것은 자본주의의 규칙과 법칙들에, 인류를 비참함과 전쟁과 무질서와 야만에 빠져들게 하는 자본주의의 모순들에 굴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주의체제는 착취체제인데, 착취가 인간적으로 구성될 있는가? 수백만의 노동자들을 댓가로 이윤을 만들어냄으로써 계급에게 가능한한 많은 부의 축적을 가능케하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그러한 체제가 인간적으로 있는가? 그리고 자본가들 사이에 경쟁이 첨예화되면 노동자계급이 대대적인 실업,  비정규적고용상황의 확대, 노동현장에서의 무제한적인 착취, 임금인하와 같이 댓가를 치르게 되는 그러한 체제가. 동시에, 인간들이 기본요구를 충족시키고 계급없는, 불평등이 없는, 전쟁의 야만이 없는 사회를 민족국가들과 국경을 폐지함으로써 건설할 있을 모든 물질적 수단은 존재한다. 오직 노동자계급만이 그러한 사회의 전망을 실현할 수있다. 맹아는 물론 분노한 사람들운동 속에 이미 존재한다. ,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연대감과 헌신을 나타내고, 함께함으로써 즐거운 것등등. 스페인에서 관찰될 있는 인상적인 운동은 짚단의 불같은 일시적 흥분이 아니다. 그것은 전세계 도처에서 앞으로 일어날 투쟁들을 알린다. 노동자계급이 점점 대대적으로 나서서 다른 피압박 계층들을 함께 합류시킬 투쟁들을. 투쟁들은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체제에 대항해 점점 분명하게 나설 것이다. 그러한 투쟁들로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하다는 커다란 의식이 생겨날 것이다.

Antoine. 2011 7 2

 

    



[1]스테판 헤셀은 스페인에서 상당히 유명하다. 적어도 프랑스에서만큼 알려져 있다.  그는 스페인에 살고 있고 스페인의 작가이자 특히 지금 진정한 민주주의를의 창시자이기도 경제학자 호세 루이 삼페드로와 친구로 지낸다. 호세 루이 삼페드로는 헤셀의 캠페인에서 영감을 얻은 팜플렛을 간행했고 분노하라“!” 스페인어판에 서문을 썼다.

[2]CNR 스테판 헤셀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준거점이고 뒤따라야할 모범이다. 우리는 나중에 이점에 대해 언급하고 싶다.

[3]Indignez-Vous!(분노하라!) , 15

[4]같은 , 11

[5]같은 , 12

[6]Engagez-Vous(참여하라)!,  16

[7]위과 같은 43쪽과 44

[8]Engagez-Vous(참여하라)!, 22

[9]같은 , 20

[10]같은 , 21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과의 연대 – 미래는 노동자 계급에게 있다!

대중매체는 오바마의 '의기양양한' 유럽방문이나 성추행혐의로 구속된 IWF총재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 스캔들로 가득차 있는 반면 유럽을 강타하는 진정한 지진에 관해서는 우리에게 그리 많이 알려주지 않는다. 이 지진은 스페인에 중심을 두고 있지만 그리스에 직접적인 반향을 갖고 있으며 다른 나라들에서도 일어나려 위협한다.

 

 

스페인에서의 사건들은 실업, 사파테로정부의 긴축정책 및 정치가들의 부정부패등에 대해 반항하는 엄청난 수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마드리드의 푸에르따 델 솔(태양의 문) 광장을 점거하면서 515이래 전개되고 있다. 이 사회운동은 소셜네트워크(페이스북, 트위트...)와 유튜브에 올려진 비디오들을 활용해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그라나다, 세비아, 말라가, 네온과 같은 스페인의 대도시로 들불처럼 빠르게 번져나갔다. 그리고 이런 방식을 통해서 우리는 스페인밖에서 그 운동에 대해 정보를 얻는다. 왜냐하면 부르조아 매체들은 이 사건들에 대해 상당히 많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매체들이 오히려 오바마나 도미니크 스트라우스-칸이나 셔릴 콜의 여행으로 쪽으로 우리들의 관심을 돌리려 한다면, 그 이유는 스페인에서의 이러한 운동이 자본주의라는 막다른 골목에 직면한 세계노동자계급의 투쟁과 사회투쟁들의 발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한 단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운동의 전제들

 

스페인에서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연금개혁안에 대항해 일어난 2010929일의 총파업이래 무르익어왔다. 이 총파업은 노조가 정부와 협상하여 개혁안(40-50세의 현노동자들은 그들이 정년퇴직시 현재 연금수령자들보다 20% 낮은 연금을 받게되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패배로 끝났다. 이러한 패배는 노동자계급 내에 깊은 실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특히 노동자들의 피켓과 함께, 연대감을 표현함으로써 그 파업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했던 젊은이들 사이에서 심오한 분노를 유발했다.

 

2011년 초부터 그러한 분노는 대학들에서 날카로와지기 시작했다. 지난 3월 포르투갈에서는 '비정규직 젊은이들'이라는 그룹이 제안한 시위에 리스본에만 25만명이 모여들었다. 이 예는 스페인의 대학들에, 특히 마드리드에서 큰 영향을 미쳤다. 대다수의 학생들과 30대 미만의 젊은 이들은 시간제 일을하며 월 600유로로 살아야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백여명의 학생들이 '호베네스 신 푸투로' (미래없는 젊은이들)이라는 그룹을 형성하게 되었다. 주로 노동자계급출신인 이 가난한 학생들은 47일 시위를 소집했다. 5천명의 사람들이 함께 모여들었고, 이렇게 처음의 동원이 성공함으로써 호베네스 신 푸투로 그룹은 515일 시위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마드리드에서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진정한 민주주의를 지금)이라는 공동체가 출현했다. 그것의 강령은 실업과 “시장의 독재”를 비판하지만 좌파도 우파도 아닌 “비정치적”임을 주장한다.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 역시 다른 구역들에서 515일에 시위를 할 것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25만명의 시위대가 참가함으로써 거대한 성공을 이룬 것은 마드리드에서 였다. 처음의 의도는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 조용히 끝나는 평화적인 행진을 하는 것이었다.

 

민중 전체에게로 번진 '미래없는' 젊은이들의 분노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 공동체가 호소한 515일의 시위들은 굉장한 성공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불만을, 특히 졸업과 함께 실업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전반적인 불만을 표출했다. 모든 것은 그곳에서 끝나게 되어있었지만 마드리드와 그라나다에서의 시위들의 끝에는 작은 '블랙 블록' 그룹들에 의해 유발된 사건들이 발생해서, 경찰 개입으로 20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사람들은 경찰서에서 잔인하게 다뤄졌고 그 이후 이들은 경찰폭력을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성명서의 공개는 즉각적으로 분노의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공권력에 대항한 연대를 확산시켰다. 전혀 알려지지 않고 조직화되지도 않은 사람들 30명이 푸에르타 델 솔광장에 캠프를 치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발의는 즉시 사람들의 동감을 얻었고 이러한 예는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및 발렌시아로 확산되었다. 경찰의 제 2차 진압은 도화선에 불을 붙혔고 그이후 중앙광장들에 점점 더 증가된 대대적인 집회들이 70개 이상의 구역들에서 개최되었다.

517, 화요일 오후에 '515일 운동'의 조직자들은 조용한 시위나 다양한 극적 퍼포먼스들을 가질 계획이었지만, 광장들에 모여든 군중들은 집회를 갖자고 소리높혀 외치기 시작했다. 저녁 8시 집회들이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및 다른 도시들에서 개최되기 시작했다. 18일 수요일부터는 참으로 이러한 집회들이쇄도하게 되었다. 모든 곳에서 집회들은 공공장소에서의 공개적인 총회의 형식을 띠었다.

 

경찰의 진압에 직면하여 그리고 시 및 지방선거를 앞두고,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 공동체는 스페인의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테마를 둘러싼 논쟁을 시작했다. 그것은 프랑코체제의 붕괴이후 34년간의 “불완전한 민주주의”이후 “진정한 민주주의”를 외치며, 사회당(PSOE)과 우익 대중당에 의해 독점된 2당체제를 끝장내기 위한 선거개혁을 요구했다.

 

그러나 '분노한 자들'의 운동은 대부분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의 민주주의적 개혁주의적 강령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600유로세대”의 반란으로 제한되지 않았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말라가, 세비아등의 점거된 광장들과 시위들에서, 플랜카드와 기치들 위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자본없는 민주주의!”, “PSOEPP, 다같은 쓰레기!”, “너희들이 우리들의 꿈을 방해한다면, 우리는 너희들의 잠을 방해할 것이다!” , “모든 권력을 총회로!”, “문제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문제는 자본주의다!”, “일자리가 없다, 집이 없다, 두려움도 없다!”, “노동자들이여 깨어나라!”, “ 600유로, 지금 그것은 폭력이다!”

발렌시아에서 한 여성그룹은, “조부모들이 속임을 당했다, 그들의 자식들도 속임을 당했다, 그 손자손녀들도 속임을 당하게 해서는 않된다!”라고 외쳤다.

 

대중집회들은 “미래를 짊어진 무기”

 

부르조아 민주주의에서는, 선거공약을 결코 지키지 않고, 무자비하게 깊어만 가는 경제위기로 인해 요구되는 긴축계획을 그저 계속 실행하는 정치가들 사이에서 4년마다 “선택”하는 것으로 “정치 참여”는 축소된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면전에 스페인에서의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공개 총회라는 노동자계급의 투쟁무기를 자생적으로 재충당했다. 모든 곳에서 대대적인 도시 집회들이 출현해서, 모든 세대, 모든 비착취사회계층들을 아우르며 수만명의 사람들을 재조직했다. 이러한 집회들에서는 누구나 발언하고, 분노를 표출하고 상이한 문제들에 대해 논쟁하고 제안들을 제시할 수 있다. 전반적인 발효라는 이러한 대기 속에서 혀가 자유로와진다. 사회 생활의 모든 측면(정치적, 문화적, 경제적...)들이 점검된다. 광장들에서 연대와 상호존중의 기운 속에서 토론된 생각들의 거대한 집단적 물결이 넘쳐났다. 몇몇 구역들에서는 “아이디어 상자들”이 설치되었는데, 여기에는 누구나 종이에 그들의 생각들을 적어서 집어넣을 수 있다. 운동 자체가 매우 지혜롭게 스스로를 조직한다.

모든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 위원회들이 만들어졌고, 공권력과의 비조직화된 충돌을 방지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 총회 내에서의 폭력이 금지되고, 음주도 “라 레볼루시옹 노 에스 보테이온”(대충 번역하자면, “혁명은 곤드레 만드레 만취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기치로 금지된다. 매일 청소팀들이 조직된다. 공공매점들이 식사를 제공하고, 자원봉사자들이 어린이들을 위해 보육시설을 세운다. 도서관과 “타임 뱅크”가 세워져서, 여기서 과학, 문화, 예술, 정치 및 경제 등 모든 종류의 문제들에 대해 토론이 이뤄진다. “반성의 날”들이 계획되어 있다. 모든이가 그들의 지식과 기술을 함께 나눈다.

 

표면적으로는 이러한 사색의 폭발이 아무것도 초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구체적인 제안들이나 직접적으로 실현가능한한 요구들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일어나고 있는 것은 그 분명히 무엇보다도 가난에, 긴축안들에, 현사회질서에 대해 느끼는 거대한 염증이다. 그리고 동시에 사회적인 원자화를 돌파하려는, 그래서 함께 모여서 심사숙고하려는 집단적인 의지이다. 많은 환상들과 혼돈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말 속에서 그리고 플랜카드와 기치들 위에서 “혁명”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고 사람들은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집회들에서, 논쟁들은 다음과 같이 가장 근본적인 문제들을 제기했다:

·         민주주의의 퇴행”에 우리들을 제한해야만 하는가? 문제들의 근원이 개량될 수 없는 완전히 파괴되어야만 하는 체제인 자본주의 자체에 있지는 않는가?

·         이 운동은 선거후인 522일에 끝나야만 하는가 아니면 계속 진행되어 생존 조건들에 대한 공격, 실업, 비정규직화, 퇴출에 대항한 대대적인 투쟁으로 발전해야 하는가?

·         집회를 작업장으로, 이웃으로, 취업 사무실로, 고등학교로, 대학교로 확대해야 하지 않는가? 전반적인 투쟁을 끌어낼 역량을 가진 노동자들사이에 운동을 뿌리내려야 하지 않는가?

 

집회들에서의 논쟁들에서 두가지 경향들이 매우 분명하게 나타났다:

·         그중 하나는 비프롤레타리아 사회계층들에 의해 활성화된 보수적인 경향으로서, 자본주의 체제가 “민주주의적인 시민혁명”에 의해 개량될 수 있다는 환상을 씨뿌린다.

·         다른 하나는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으로서, 자본주의 철폐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선거당일인 522일 개최된 집회들은, “설혹 선거가 분출구라 할지언정, 그것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니다 ”라며 운동의 계속을 결정했다. 프롤레타리아적 경향은 실업, 비정규직화, 사회적 공격들에 대항한 요구들을 제시함으로써 “노동자계급을 향해 나아가는” 제안들 속에서 스스로를 분명히 했다.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서는 지역들에서 “대중집회”를 조직하는 것이 결정되었다. 작업장에서, 대학교에서, 취업 사무실에서 그와 같은 것을 하자는 제안들이 이뤄졌다. 말라가, 바르셀로나 및 발렌시아에서 집회들이 사회 임금감축에 대항한 시위를 조직하는 문제가 제기되어, 발언자들 중의 한명의 표현을 빌자면, “이번에는 진짜인 ” 새로운 총파업을 제안했다.

 

스페인의 산업적 수도인 바르셀로나에서, 카탈로니아 광장의 중앙집회는 가장 과격했고, 프롤레타리아 경향에 의해 가장 많은 영향을 받았으며, “민주주의의 퇴행”이라는 환상으로부터 가장 거리가 먼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텔리포니카의 노동자들, 병원노동자들, 소방관들, 사회적 삭감에 대해 싸우는 학생들이 바르셀로나 집회에 합류해서 그것에 다른 음색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525일 카탈로니아 광장집회는 병원노동자들의 파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결정한 반면,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 집회는 참여적이고 “수평적인” 민주주의를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이웃지역에서 “대중 집회들”을 이끌어냄으로써 운동을 탈중심화할 것을 결정했다. 발렌시아에서는 시위하는 버스노동자들이 학교예산 삭감에 대항한 지역 주민들의 시위에 함께 했다. 사라고사에서는 버스 운전사들이 마찬가지로 열광적으로 집회들에 합류했다.

바르셀로나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615일까지 캠프를 유지하고 카탈로니아광장의 점거를 계속할 것을 결정했다.

 

미래는 노동자계급의 젊은 세대들의 손안에

 

이 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든지, 그 결과가 어떠하든지, 실업(스페인에서 20-25세 인구중 45%가 실업상태)에 직면한 젊은 세대에 의해 시작된 이 반란이 확실히 노동자계급 투쟁의 일부임은 명백하다. 계급의 국제적 운동에 대한 그것의 기여는 부정할 수 없다.

 

그것은 모든 비착취 사회계층들, 그리고 노동자계급의 모든 세대들을 아우른 전면화된 운동이다. 비록 계급이 “대중적인” 분노의 물결의 일부였고, 대대적인 파업들과 특정한 경제적 요구들을 통해 스스로를 확언하지는 않았을 지라도, 이 운동은 여전히, 세계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계급인 프롤레타리아트 내부의 의식의 진정한 성숙을 표현한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점점 더 명백해지는 파산에 직면해 상당수의 사람들이 서유럽의 “민주주의” 나라들에서 떨쳐일어나기 시작해서 프로레타리아 투쟁의 정치화를 향해 길을 열어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운동은 그 절대다수가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실업자인 젊은이들이 노동자계급의 무기들, 즉 대대적이고 공개적인 총회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무기들을 통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연대를 확인하고 정치적 정당들과 노동조합의 외부에서 운동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었다.

 

비록 소수 중에서 일지라도, 그 운동 내부에서 출현한, “모든 권력을 집회들로”라는 슬로건은 러시아 혁명의 옛슬로건,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리메이크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옛 동구권의 스탈린주의 체제의 붕괴 이후 부르주아 캠페인의 무게 때문에) 여전히 “공산주의”라는 단어를 두려워할 지라도, 그와는 반대로 “혁명”이라는 단어는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운동은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 공동체가 주장하는 그러한 “스페인 혁명”이 결코 아니다. 착취당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실업, 비정규직화, 높은 생활비용 및 생활조건의 끊임없는 악화는 결코 스페인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서 실업이라는 어두운 얼굴은 마드리드에서와 마찬가지로 카이로에서, 파리뿐만 아니라 런던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에서도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이러한 하향 나선 속에서 모두 함께이다. 우리는 모두가 자본주의 사회의 부패에 직면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패는 가난과 실업에서뿐만 아니라 재앙과 전쟁의 증가 속에서도, 사회관계들의 혼란과 증대되는 도덕적 야만성(이는 무엇보다도, “3세계”와 “선진”국가들 모두에서 여성들에 대한 성적 공격과 폭행에서 표현됨)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낸다.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혁명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없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인류 전체에게 전망을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투쟁인, 세계 규모의 노동자계급투쟁의 발전에서 단지 하나의 새로운 단계이다.

푸에르타 델 솔의 독립공화국”에 관한 그 모든 환상들에도 불구하고, 이 운동은 새로운 사회의 지평이 낡은 사회의 내장 속에서 그 형상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스페인 지진”은, 잃을 것이 없는 노동자 계급의 신세대들이 역사라는 무대 위에서 이미 배우들로 되어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들은 인류의 해방의 길을 정화할 훨씬 더 거대한 폭풍들의 선봉들이다.

인터넷, 소셜네트워크 그리고 핸드폰의 활용을 통해 이 젊은 세대는, 부르주아지와 그 매체들의 침묵을 돌파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고, 국경을 넘어선 연대의 기초를 놓았다.

이 새로운 세대는 2003년부터 국제 사회의 무대에 등장했는데, 처음에는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에 대한 군사적 개입에 대항한 항의들(많은 나라들에서 젊은이들이 부시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음)에서 그런 다음은 프랑스 연금개혁에 대항한 최초의 시위들에서였다. 이는 2006년 같은 나라에서 CPE에 반대하는 대학생 및 고등학생들의 대대적인 운동과 더불어 재등장했다.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영국에서 수학중인 젊은이들은 자본주의가 그들에게 제공하는 절대빈곤과 실업이라는 미래에 대항하여 목소리를 높혔다.

이 “미래없는” 세대의 밀물결은 최근 튀니지와 이집트를 강타해서 벤 알리와 무바라크를 넘어뜨린 거대한 사회반란을 낳았다. 그러나 주요 “민주주의” 국가들에서 부르주아지(특히 바락 오바마)가 벤 알리와 무바라크를 버리도록 강제한 결정적인 요소는 노동자 파업들의 출현과 총파업운동의 위험이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 이후, 타흐리르 광장은 여러 나라들에서 프롤레타리아트의 젊은 세대들에게 하나의 상징이 되었고, 투쟁을 고무하는 것이 되었다. 이것을 모델로 삼아 스페인의 “분노한 사람들”은, 푸에르타 델 솔 광장에 캠프를 쳤고, 70여 구역들의 주요 광장들을 점거했으며, 모든 억압받은 사회 계층들을 집회들로 끌어들었다(바르셀로나에서는 “분노한 사람들”이 심지어 카탈로니아광장을 “플라사 타흐리르(타흐리르 광장)”으로 이름을 바꿔부르기도 했다).

스페인에서의 운동은, 사실,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서 결정화된 극적인 반란보다 훨씬 더 심오하다. 그것은 두 대륙을 잇는 다리인 이베리아 반도의 주요 국가에서 발생했다. 그 운동이 서유럽의 “민주주의”국가(게다가 “사회주의” 정부가 이끄는!)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은 튀니지에서의 “재스민 혁명”이래 매체들에 의해 전개되는 민주주의적 신비화들을 침식할 수 밖에 없다.

게다가, 데모크라시아 레알 야가 이 운동을 “스페인 혁명”이라 부를 지라도, 스페인 국기는 거의 나부끼지 않았던 반면, 타흐리르 광장은 국기가 물결쳤다.1

이 운동을 동반하는 불가피한 혼동들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오늘날 사회투쟁들의 사슬에서 하나의 매우 중요한 연결점이다. 자본주의의 세계적 위기의 악화와 더불어 이러한 사회운동들은 점점 더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과 만나게 되고 그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이 “분노한” 세대에 의한 용기와 결단과 깊은 연대감은 다른 세계가 가능함을, 세계 인류공동체의 통일인 공산주의가 가능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인류의 이 오랜 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사회의 모든 부의 본질적인 것들을 생산하는 계급인 노동자계급이 자본주의의 모든 공격들에 대항해 대대적인 투쟁들을 전개함으로써 그 계급 정체성을 재발견해야 한다.

분노한 사람들”의 운동은 다시 한번 혁명의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자본주의의 타도를 목표로, 운동에 분명한 계급적 방향을 부여함으로써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세계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달려있다. 상품생산과 이윤에 기반한 이 착취체제를 무너뜨린 그 폐허 위에서만 새로운 세대들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수 있고, 진정 보편적인 “민주주의”를 성취하고 인류에게 존엄성을 회복시킬 수 있다.

Sofiane, 2011527

 

 

1반면에, 우리는 “세계 혁명”을 요구하며 국경을 넘은 운동의 “확대”를 주장하는 슬로건들도 보았다. 모든 집회들에서 “국제”위원회가 하나씩 만들어졌다. 유럽과 아메리카의 대도시들에서, 심지어 도쿄, 프롬펜과 하노이에서 연대 시위를 볼 수 있었다.